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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유니 Dec 29. 2023

인생의 진리는 집밥으로 논하리

집밥의 절대적 힘


나에게 집밥이란?

휴식.행복.건강 으로 가는 연결통로 같은 것이었다.

엄마가 정성들여 차려준 집밥. 집밥이 너무 그리워 20대때 인생의 중대한 계획들을 철회?했던 적이 있었다. 나약한 나의 의지력을 적당히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해줄 핑계로도 딱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핑계를 대고 있다. 따뜻한 집밥을 다시 먹을 수 있었노라면, 그때의 나는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지냈던 시간들이 많다. 비단 나뿐만 그러했던건 아니었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동년배들도 고등학교 때부터 도시로 유학?을 가는 일은 흔했다. 그러니까 나의 본격적인 독립은 20살때가 아니었다. 17살 때였다. 시에서 운영하는 기숙사 입소가 독립의 첫 시작이었다. 중학교 때까진 몰랐다. 등교 전 당연한듯 매일 먹었던 집밥 의 힘을.





서울에서 부모님의 고향으로 내려와 보금자리를 마련한 우리집의 가장은 엄마였다. 밭농사 논농사를 하며 소3마리를 키웠다. 엄마는 매일 새벽5시에 일어나 소의 안녕을 점검하고 여물을 챙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밥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차리셨다. 일주일에 3번 이상은 누릉지가 아침 밥상에 올랐다. 고생하시는 엄마가 안쓰러워 반찬 투정은 하지 않았다. 따끈하고 고소한 누릉지가 맛있기도 했지만 입에 물렸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느끼한 오일기름 가득한 노오란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다.'

하지만 아침부터 오무라이스를 내달라는 요구는 무리였다는걸 알았기에 군말없이 차려주신 대로 먹었다.


부족한 살림이었지만 엄마는 자식들 먹는것 만큼은 끔직히 챙기셨다.


"힘들수록 잘 먹어야 한다."


계란 넣은 밀가루 반죽을 동그랗게 말아 퐁당퐁당 기름으로 튀긴 도넛츠. 넓게핀 반죽에 케첩둘러 바르고 두꺼운 햄과 피망을 뚝뚝썰어 올린 엄마표 피자. 조각낸 라면을 구워 달달한 설탕뿌려 흔들어 먹는 라면땅. 김장독에 겨울내 파묻어 두었던 묵은 김치에 통통한 고등어살 넣어 조린 고등어 김치조림.



집밥은 나에게 홍삼이었고 면역강화제 였다.

중학교 때까지 나의 안녕을 책임졌던 집밥. 17살 기숙사 생활을 시작으로 홀로서기를 했던 내 고등시절을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의식주를 간접적으로 책임지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중학교 때까지 당연하게 먹었던 집밥은 나에게 홍삼이었고 면역 강화제 였다.


그 효능이 떨어져 갈때쯤은 23살 때 쯤 이였던거 같다. 세상에디에도 없는 엄마표 간식과 집밥생각에 눈시울이 아련했던 날들이 많았다.

'엄마가 따뜻하게 차려주신 집밥을 당장 먹을 수 만 있다면 다시 힘이 날텐데...'

세상이 내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20대 청춘. 용기와 배짱은 두둑했지만 뒷끝은 물에 물탄듯 흐릿했던 시절. 집밥의 효능이 바닥날때쯤, 엄마표 집밥을 못 먹어서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렸다.



하지만 더이상 집밥을 고스란히 받아 먹기란 힘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엄마는 농사를 그만 두셨다. 더이상 농사가 가정의 버팀목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약6년간 식당일을 다니셨다. 그리고 내가 18살이 되던해 식당을 차리셨다. 식당을 차리신 후로는 농사를 지었을 때보다 더 바쁘셨다. 빚으로 시작한 첫 사업이었다. 엄마가 지금의 내나이 정도 때다. 엄마는 모든걸 걸고 일생일대 중대한 변화를 시도하셨던 거다. 책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에너지를 쏟으셨다. 그리고 결국 성공하셨다.

엄마에게 어릴적 먹었던 집밥을 차려달라고 응석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 여유가 없어셨다.

"힘들수록 잘 먹어야 한다."  엄마의 신념은 이제 자식들에게만 향하고 있는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식당을 찾는 모든이의 집밥을 차리셔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어릴적 먹었던 엄마의 집밥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하지만 이제 집밥을 차리는건 엄마 차례가 아니다. 내 차례다. 어릴적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을 나도 아이들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들을 손수 만들어 주려 애를 많이 썻다.

'밥차리는 일만 아니면 아이들을 그럭적럭 잘 키울 수 있겠는데....'

집밥하나 차리는것 만으로도  힘들다고 징징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집밥은 헌신과 사랑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 전업주부라고 불리는 우리들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다는걸 안다. 내가 하는 집안일이 하찮은 일이 아님을 되뇌어 스스로 자긍심을 심는다. (아무도 알아주진 않치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찮은 집안일도 못하는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전업주부들의 손끝으로 탄생하는 가족의 역사는 아무나 이룰 수 있는 쉬운일이 아님을 안다.


전업주부(전업파파) 들이여!

우리들은 너무나도 중요한 책무를 맡고 있다는걸 지마시길....

그러니 좀 더 우아하게 자신감있게 살아가시길....

결국, 내가 나에게로 향하는 또다른 응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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