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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유니 Dec 22. 2023

삶은....고구마

인간의 삶과 고구마가 무슨 연관성이 있다고?

"야! 너 진짜 답답하다!"

"나는 입사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그 좋은 기회를 니 발로 차고 나오냐?"


23살때 쯤, 나보다 5살 많은 첫째오빠가 나한테 한 말 이다. 그렇다. 나는 은행권에 입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1년만에 그만두고 당당히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1금융권은 아니었다. 지역 농.축협 이었다. 그때만 해도 고졸생 들에겐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니었다. 당연히 은행 업무 부터 배우고 시작할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고졸생인 나에게 그런 기회를 바로 줄리가 없었다. 어렵게 입사했던 농.축협에서 나의 첫번째 직무는 마트 계산원이었다. 좋게 말하면 농.축협 마트 유통 직원이었다.


숫자와 분수만 보아도 울렁증이 생기는 나에게 배정된 직무가 마트 계산원일줄은 미처 몰랐다. 고구마를 먹고 언친 것 같은 답답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내가 미련한 탓이라고 자책을 했다.

애초에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직업임을 뻔히 알고도 은행원이 되어서 근무할 생각을 했다. 은행원이 입는 말끔한 유니폼에 대한 환상만 가득했지, 실리를 전혀 따지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같이 입사 했던 동기 언니는 대졸생이었다. 당연히 언니는 배정된 직무가 은행권 이었다.

말끔한 유니폼을 입고 칼칼이 뻗은 돈을 관리하며 멎지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던 그 자리를 언니가 꾀차고 앉았다. 어찌보면 꾀 차고 앉았다는 말도 틀린말이다. 당시 사회적 관행으론 고졸생과 대졸생에게 주어진 업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 물정 몰랐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은 해보기로 했다. 정규직은 아니었다. 계약직이었다.

계약직도 보험과 저축 등 인사고가가 방연된다.

그리고 향 후 몇년 안에 운이 좋으면 정규직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마트계산원만 하는건 그런데로 할만했다. 하지만 실제 마트계산원이 하는 업무가 하나만은 아니었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정리하는 허드레 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지역 특성상 어르신들이 주 고객이었다.


"이쁜 처자 나 허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쌀가마 좀 실어줄 수 있겠나?

"네! 네..... 실어 들일게요."


몸을 사리지 않고 일했던 나는 퇴근 후 저녁도 먹지 않은채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눈떠보면 유니폼을 입은채로 아침을 맞이했던 적도 있었다.

은행권에서 일하면 빨간날.주말은 모두 맘 편히 쉬는 걸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유통쪽에 업무를 배정 받았던 나는 격주로 토요일은 나와서 근무를 했다.

휴가철, 명절에는 평소보다 2~3배 업무가 쌓였다. 연휴라고 쉴수도 없었다. 오히려 더 늦은 시간까지 근무를 해야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건, 계약직원까지 보험.저축 신규가입자 모집을 권유하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은행쪽에서 일하면 그래도 저축.보험 등 가입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고객님들도 계시기에 할당을 채우기가 훨씬 낳은 조건이다.

하지만 마트는 아니었다. 물건을 한푼이라도 아껴서 사려고 고르고 고르는 손님들이다.

쌈지돈을 꺼내는 어르신들에게 보험과 저축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1년만 버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입사 1년차에 당당히 걷어차고 나왔다.  




시원하고 후련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삶은 고구마를 잘못 먹으면 목이 턱턱 막히는 것처럼 답답했다. 당당하게 나왔다는 생각보다 포기했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시작은 잘했지만 포기가 빠른 나였다. 농.축협 입사가 처음은 아니었다. 고3때 하이닉스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내 이상과 현실은 괴리감이 컷다.

내가 기대했던 사회는 사정없이 매몰차고 차가웠다. 하이닉스 퇴사 후 큰 꿈은 안고 독립을 했다.

적성에 맞을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미용 분야에 도전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실패했다기 보단 내 스스로가 포기했다. 사회가 먼저 포기하라고 시킨것도 아니었다. 늘 내 자신을 자책했다.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주변환경만 원망했다.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도 늘 고민을 안고 살아야 했던 나의 20대 청춘은 고구마 같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게 잘익은 저 고구마. 한입 배어물면 너무 달콤 한데, 이내 목에 언친다. 숨이 턱턱 막혀 물없이는 도저히 버틸 수 가 없다. 나에게 20대 청춘은 물없이 고구마를 먹는 그런 시간이었다.


30대 때에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빴다.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시간은 느린듯 너무 빠르게도 흘렀다._ 그리고 맞이한 두번째 청춘 마흔. (아직 서른여덟살 이예요. 머 나이가 중요한가요. 두번재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시작인거죠^^)


이제는 시작도 포기도 두렵다. 내 인생에 끝이라는게 있긴 한걸까? 20대 때의 용감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20대때의 나의 실수를 만회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다. 느리더라도, 수없이 고민하고 고민할지라도 포기는 말아야지. 시간이 나에게 준 마지막 기회니까....






글을 쓰다가 문뜩 생각났다. 방치해둔 고구마 상자가 떠올랐다. 엄마가 시골에서 보내주신 고구마다. 한달동안 방치만 해두고 잘 꺼내먹지 않아서 섞었다.


'고구마도 관리를 않해주면 다 썩어버리는데....'

'하물며 사람의 몸,마음,꿈,재능도 똑같은거 아닌가?'

'고구마가 아무리 달콤한들 썩어 버리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버려야 하잖아!'


'잘익은 고구마를 먹다가 숨이 턱턱 막히면 답답하다고 가슴만 칠게 아니라. 적당히 유연하게 물을 마실줄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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