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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판사의 이야기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모로, 2023)를 읽고

by 쿰오기

어느 판사의 이야기

- 《어떤 양형 이유》(박주영, 모로, 2023.)를 읽고


《어떤 양형 이유》는 박주영 판사의 기록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이제는 법조인들의 글쓰기가 낯설지 않다. 그들은 읽고 쓰기를 보통 사람, 아니면 작가보다 더 많이 할지도 모른다. 사건을 개괄하고 해석하고 판단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여느 글쓰기보다 짜임새도 있다. 박주영 판사의 스토리텔링 기술이 너무 부럽다. 일하면서 자기 계발을 하고 있으니까. 물론 좋아하는 일도 돈벌이가 되면 버거울 수 있고, 더욱이 판결이라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에 간섭하는 일이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그래도 논리적이고도 감성적인 글로 독자를 감동케 하는 필력이 몹시 놀랍다.


이 책은 판사라는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 사는 삶의 태도를 들려준다. 판사는 판결문 마지막에 ‘양형 이유’를 쓴다. 양형 이유는 “형벌의 양을 정한 이유에 대해 기술”하는 것인데, 여기에 판사의 생각을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다. 박주영 판사는 “판결문은 영구히 보존되므로 그 사안을 항구적으로 알 수 있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라고 전한다. 저자의 판결문은 여러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에서 많이 인용되었다. 이 책은 2019년 출간되었다가 2023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는데, 이전 책의 부제는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판사의 기록”이었다.


저자는 책을 통하여 판사로서의 고단한 직업 세계를 알게 해 주고, ‘인간성’을 중요시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개인적 감정의 변화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기막힌 사연을 들려주면서 독자에게 연민을 가르친다. 다만 그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되지 않을까. 다양한 사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따듯하게 들려오지만, 타인을 동정한다는 것이 어느 만큼 가능한지 묻고 싶었다.


독서토론 모임의 지인이 “책은 좋고 잘 쓰였는데 왜 감동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굳이 답을 말해야 할 까닭은 없겠지만 만약 내게 이 책이 왜 감동을 주었는지 묻는다면……, 내게도 책 속의 삶이 스쳐 갔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에서 소개된 이야기 속의 아픔과 비슷한 어떤 상실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 가난, 학벌, 외모 등 이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왔다. 운이 좋아 결혼과 아이와 직업을 갖고 이제는 기득권자가 되었을 뿐이었다. 《어떤 양형 이유》를 통해 무난했지만 치열했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 안의 온화한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 양평군 도서관 문예지 제31호 <미지산>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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