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산(遺産)', 그리고 '유서(遺書)' - 브런치 10주년
처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글을 쓰고 싶었을 뿐. 어둡고 긴 우울의 터널을 통과하기 위한, 나 자신을 향한 필사적인 몸짓이었다. 브런치 작가 선정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기쁨보다 신기함이 앞섰다.
'어, 내가 되네?'
다른 누가 내 글을 읽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초창기 글들은 지금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다.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감정들. 하지만, 바로 그 서툰 진심 덕분이었을까. 어느 날부터, 내 글에 마음을 나눠주는 분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라?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있네.’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신이 났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다양한 삶과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방대한 지식의 보물 창고, 그곳에서 보석 같은 글들을 찾아 읽어가는 재미도 컸다. 그렇게 브런치에서 글쓰기는 더 이상 외로운 방황이 아니라, 세상과 나누는 따뜻한 소통이 되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기회가 된다면,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보고 싶다는 꿈. 첫 책은 시집으로, 두 번째는 에세이집으로, 세 번째는 나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로.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내 삶이 끝나기 전에 이 세 권의 책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버킷리스트가 생겨버렸다.
그러나 내 꿈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내 아이들과 후손에게 전해질 책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먼 훗날 나의 아이들이,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책장에 꽂힌 나의 책을 꺼내 읽었으면 좋겠다.
"아빠, 할머니 책 읽어줘."
"아빠 어린 시절엔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우리 할머니, 생각보다 따뜻한 분이셨네. “
나의 자손들이 내 책을 보며 이런 대화를 나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행복할 것 같다.
엄마가,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그녀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봐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위인은 아닐지라도 보통 사람으로서 선하고 따뜻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숙제가 생겼다. 뭐 어떠랴?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면 되는 것을.
브런치 10주년, 얼마 전부터 나 역시 이곳에서 작가라는 꿈을 키워왔다. 앞으로도 함께 더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다.
나의 글이, 내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진솔한 '유산(遺産)'이자, 가장 따뜻한 '유서(遺書)'가 되기를. 브런치를 통해, 나는 바로 그 꿈을 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