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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에피소드 1

스님이나 수녀나, 그게 그거다!

by 김성수

수년 전, 내 삶의 한 페이지를 따스하게 채웠던 기억이 있다. 바로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서의 봉사활동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그곳 어르신들과 만나면서 나는 웃고, 울고, 가슴 찡한 순간들을 함께했다. 대부분 치매를 앓고 계셔서 일상적인 대화는 어려웠지만, 그분들의 말벗이 되어드리며 내 삶과 노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문득 떠오르는 그 시절의 에피소드 하나를 풀어본다.



내가 봉사했던 요양원은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당연히 수녀님들이 상주해 계셨다. 그렇다고 천주교 신자 어르신들만 계신 건 아니었다. 다양한 종교를 가진 분들이 함께 생활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어르신이 계셨는데,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이 어르신은 치매로 인해 같은 질문을 5분 간격으로 되풀이해서 주변 사람들을 당혹게 하거나 때로는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요양원 종사자분들이나 수녀님들은 단 한 번도 짜증 내는 법 없이, 마치 처음 듣는 질문인 양 정성껏 답해주곤 했다.


어느 날, 그 어르신이 복도를 지나가던 수녀님을 붙잡고 물었다.
"스님! 우리 아들 언제 와요?"
(사실 아드님은 거의 왕래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다.)

수녀님은 온화한 미소로 답했다.
"어르신, 세 밤만 주무시고 나면 올 거예요."

정확히 5분 뒤, 어르신은 또다시 수녀님께 다가가 물었다.
"스님, 우리 아들 언제 온다고요?"

수녀님은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지만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답했다.
"네, 세 밤만 자면 올 거예요. 아드님이 많이 바쁘시다네요. 그런데 어르신, 저는 스님이 아니고 수녀랍니다."

"네, 수녀님. 그래서 우리 아들 언제 온다고요?"
어르신은 '수녀님'이라는 호칭을 잠깐 사용하는가 싶더니, 금세 원래대로 돌아갔다.

또다시 5분이 흘렀을까.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님! 우리 아들 언제 온다고 했죠?"

이번에는 수녀님도 살짝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에고, 어르신! 저 스님 아니고 수녀라니까요! 종교를 그렇게 막 바꾸시면 안 돼요~ 호호."

그러자 어르신은 마치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혹은 정말 답답하다는 듯이 버럭 소리쳤다.
"거 참! 스님이나 수녀나 다 똑같이 회색 옷 입는데, 그게 그거지 뭘 그래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나와 수녀님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어르신께는 종교의 구분보다 눈에 보이는 '회색 옷'이 더 강력한 기준이었던 거다. 어쩌면 그 모습이 어르신의 순수함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 후로도 어르신은 여전히 수녀님을 '스님'이라 불렀고, 수녀님은 여전히 다정한 '스님'이 되어주었다. 회색 옷 아래 감춰진 따뜻한 마음은, 스님이든 수녀님이든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르신은 이미 알고 계셨던 건 아닐까. 그 요양원의 오후는, 그렇게 예상치 못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으로 채워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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