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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에피소드 3

'어르신, 참으로 애쓰셨습니다.'

by 김성수

요양원은 이상하리만큼 비가 오는 날이면 유난히 자잘한 사건 사고가 잦았다. 수녀님들이나 요양원 직원분들은 그런 날을 '날궂이 한다'라고 표현했다. 아무래도 습도가 높은 탓인지, 여기저기 관절 통증을 호소하시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또한, 비 때문에 마음이 울적해지셔서 그런지 슬퍼하시거나 까닭 없이 눈물을 보이시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처진 분위기를 띄우려 애썼다. 다 함께 간단한 레크리에이션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즐거운 활동으로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 드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비 오는 날의 에피소드는, 실내에 놓인 화분들을 죄다 엎고 다니시던 한 어르신에 대한 것이었다.

그 어르신은 늘 비 오는 날만 되면 온갖 화분을 뒤엎곤 했는데, 그 이유는 명료했다. "밭을 매셔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왜 하필 비 오는 날 그러시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무거운 화분을 들어 엎으려는 어르신을 말리며 내가 여쭈었다.


"어르신, 왜 무거운 화분을 엎으려고 하세요?"
"흙 퍼다 밭 메야 돼."
"비 오는데 밭은 왜 메세요?"
"일이 밀리면 힘들어. 제때 해야지."
"뭘 심으시려고 하는데요?"
"감자."
"와, 감자 맛있겠네요!"
"너도 같이 하자. 나중에 감자 캐면 좀 줄게."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르신의 젊은 시절은 틀림없이 부지런한 시골 아낙네의 삶이었을 것이고, 참으로 성실한 분이셨으리라는 짐작을 하곤 했다.

AI 이미지 - 밭 매는 여인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화분을 엎으며 밭을 매려 하시던 어르신을 생각난다.
그 몸에 밴 부지런함과 평생을 흙에 기대 사셨을 고단한 삶의 무게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았다.
그때, 어르신의 따뜻한 손을 꼭 잡고, 주름진 그 얼굴을 마주 보며 진심을 다해 말씀드렸어야 했다.

"어르신, 참으로 애쓰셨습니다."

이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지금이라도 이렇게 글로 마음을 남겼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덥거나 춥거나 한결같이 땅을 일구며 자식들을 키워내셨던 그 모든 세월이었다. 치매라는 병마 속에서도 잊히지 않고 몸이 기억하던 그 성실함 또한 그러했다. 당신의 삶은 고단했지만, 그만큼 숭고했다. 그 땀과 헌신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하기로 했다.


다시 한번,
'어르신, 참으로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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