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여관집 사장님의 시간
목욕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감시자' 어르신이 계셨다. 자신의 목욕 순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욕실 앞에 나타나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셨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한 마디씩 툭툭 던지셨다.
"아줌마! 수돗물 좀 아껴 써! 그게 다 돈이 얼마인데 그래!"
"쯧쯧, 요새 젊은것들은 도통 아낄 줄을 몰라!"
"저기 봐, 물 뚝뚝 떨어지잖아! 얼른 안 닦고 뭐 해!"
그 모습은 평생을 알뜰하게 살아오신 분의 몸에 밴 습관처럼 보였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는 어르신께 조심스레 여쭈었다.
"어르신, 물 아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목욕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자 어르신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으셨다.
"아니, 목욕을 하려거든 당신네 집 가서 해야지, 왜 남의 집에서 들 이러는 거야?"
"어르신, 여긴 어르신 댁이 아니라 여러 어르신들이 함께 생활하는 요양원이에요.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사용하실 수 있는 거예요."
차분한 설명에도 어르신은 막무가내였다.
"무슨 소리야! 여기는 내가 운영하는 여관이잖아! 그러니까 우리 집이지! 싫으면 다들 나가!"
그때, 옆에 계시던 수녀님이 재치 있게 상황을 넘기셨다.
"아이고, 어르신 기억 안 나세요? 저희 다 돈 내고 어르신 여관에 묵는 손님들이잖아요. 숙박비도 다 냈는데." 그 말에 어르신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수긍하셨다.
"그래? 돈을 냈다고? 그래도 그렇지! 돈을 냈어도 물은 아껴 써야지! 요즘 사람들은 남의 물건 귀한 줄을 너무 몰라!"
대화를 통해 어르신의 과거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어르신은 손수 여관을 꾸려나가셨던 것이다. 현재의 요양원을 자신이 운영하던 여관으로 여기셨고,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목욕하는 모습에 치솟을 수도세가 먼저 걱정되셨던 게다. 어르신의 기억은 젊은 시절 치열하게 여관을 운영하던 어느 한 시절에 멈춰 있었다. 그 진심 어린 잔소리 덕분이었을까. 목욕 시간에 어르신이 지키고 서 계시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여 수돗물을 더욱 아껴 쓰게 되었다. 어쩌면 그 시절의 책임감과 자부심이,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작은 기둥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