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실이는 누구일까?
요양원 봉사가 제법 손에 익어갈 무렵, 나를 알아보고 반겨주시는 어르신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한 어르신은 나를 볼 때마다 '방실이'라고 정겹게 불러주시곤 했다.
"방실이 왔어?"
어르신의 부름에 나는 늘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하루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여쭈었다.
"어르신, 근데 왜 제가 방실이예요?"
"방실방실 잘 웃으니까 방실이지."
곱게 말씀하시는 어르신이라 그런지, 지어주신 애칭마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옆에 계시던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가수 방실이 씨를 닮았다고 농담처럼 놀리셨지만(농담이 아니었을 지도)
나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어르신께서 예쁘게 봐주시며 불러주시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를 '방실이'라 불러주시던 어르신의 목욕을 돕게 된 날이었다. 어르신께서 요양복을 벗고 목욕 의자에 앉으셨을 때, 나는 문득 어르신의 가슴께로 시선이 머물렀다. 한쪽 가슴이 없으셨다. 아마도 유방암으로 절제 수술을 받으신 듯했다. 배에도 세로로 길게 남은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어르신의 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수술의 흔적들이 남아, 그분이 걸어오신 지난한 삶의 무게를 짐작하게 했다. 그 처절했던 시간의 기록들을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목욕탕의 자욱한 습기 때문이었을까, 어느새 내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혀 드리며
"어르신, 개운하시죠?" 하고 여쭈었다.
어르신은 "응, 개운하고 기분도 좋네." 하시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그 순간, 나는 알 수가 있었다. 방실방실, 해맑게 웃음꽃을 피우시는 저 어르신이야말로 진정한 '방실이'였음을. 그 힘겨운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내고도 저토록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어르신이 방실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