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
첫 번째, 우연이 빚어낸 세 쌍둥이
햇살 좋은 오후, 요양원 공용 공간은 어르신들의 잔잔한 온기로 채워진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 곁에는 봉사자와 요양보호사, 그리고 수녀님들이 따스한 말벗이 되어 드리거나, 조용히 그분들의 안위를 살핀다. 그날도 소파에는 세 분의 어르신이 정답게 모여 앉아 계셨다.
문득 한 어르신이 옆자리 동료에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에는 해맑은 호기심이 묻어났다.
"어이, 아줌마. 지금 입고 있는 옷, 내 거랑 똑같네! 이거 어디서 샀수?" 그 말에는 어떤 의심도, 꾸밈도 없었다. 사실 그 옷은 요양원에서 어르신들께 지급한 단체 활동복이었기에 똑같은 것이 당연했지만, 어르신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질문을 받은 어르신 역시 천진난만한 미소로 답했다.
"이거? 이쁘지? 우리 집 앞 옷가게에서 샀지."
그 대답에 처음 질문을 던진 어르신은 "아, 그래? 나랑 같은 데서 샀나 보네?"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히 두 분의 대화를 듣고 있던 끝자리 어르신이 조용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머, 가만 보니 내 옷도 똑같네… 나는 이걸 어디서 샀는지 통 기억이 나질 않아."
세 분은 서로의 옷을 번갈아 보며 연신 "신기하다, 옷이 똑같아!"를 외치셨다. 그러다 한 분이 박수를 치며 외쳤다.
"하하하, 우리가 세 쌍둥이네, 세 쌍둥이야!"
그 순수한 착각이 만들어낸 소소한 웃음은 지켜보는 이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데웠다. 잠시나마 잊고 지냈던 유쾌함이 공간을 가득 채우며, 어르신들은 한바탕 즐거운 웃음꽃을 피웠다.
두 번째, 마음 주머니 속 보물들
유독 한 어르신의 행동은 조용한 관찰을 요했다. 그분은 양말이나 손수건, 혹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소소한 물건들을 자신의 옷 속에 연신 숨기곤 하셨다. 덕분에 어르신의 배는 늘 불룩했고, 걸음걸음마다 마치 비밀스러운 표식처럼 작은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지곤 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묵묵히 어르신의 뒤를 따르며 떨어진 물건들을 다시 주워 챙기셨다. 혹여 그 모습을 어르신께 들키기라도 하면, 평소의 온화함은 간데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그저 소유욕이 강하신 분인가 싶었다. 하지만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어르신은 평소 더없이 순하고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는 분이라 하셨다. 다만 자신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한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그 애착의 실체는 장난기 어린 질문 속에서 드러났다.
"어르신, 옷 속에 있는 거 뭐예요? 저 하나만 주시면 안 돼요?"
선생님의 물음에 어르신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돼! 이건 우리 아들, 딸 오면 줄 거야!"
다시 "얼마나 소중한 물건이길래 그러세요? 한번 보여주세요." 하고 조르면, 어르신은 품 안의 것을 더욱 꼭 껴안으며
"아주 귀한 거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어르신의 불룩한 옷 속에는 양말이나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가득했지만, 그 모든 것은 '아들, 딸 오면 줄 것'이라는 지극한 모정의 증표였다. 세월의 흐름 속에 많은 기억이 희미해져 갈지라도,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만큼은 그 어떤 것도 지울 수 없는 듯했다. 흐릿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자식을 향한 사랑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빛나고 있었다.
마무리하며
요양원 봉사활동 에피소드는 여기서 일단락 지으려 한다. 일 년 남짓, 주 2회 참여했던 봉사활동이지만 벌써 수년 전의 일들이라 기억은 흐릿한 조각들로만 남아있다.
물론 이 조각난 기억들을 엮어 글을 써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과연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내가 풀어낸 이야기들은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던, 쓰는 동안에도 마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웠던 순간들이다.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 중에는 씁쓸하거나 마음 아팠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내가 편의상 '요양원'이라 표현했지만, 봉사활동을 했던 곳은 정확히는 수녀회에서 운영하던 '양로원 겸 요양원'이다. 그래서인지 천주교 신자들이 봉사를 많이 왔고, 나는 신자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수녀님의 권유로 함께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곳이 문을 닫고 아마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가올 나의 노년에 대해 미리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또 다른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문득 떠오른다면, 그때 몇 편 더 이어가 볼 생각이다.
그동안 요양원 에피소드를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