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쓰기, 말하기
최근 들어 긴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버겁게 느껴진다. 마치 오랫동안 운동을 쉬면 몸의 근력이 빠지듯, 나의 '글력(筆力)'도 매일매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가장 큰 핑계이자 서글픈 이유는 역시나 '노안'이다. 예전에는 흔들리는 버스나 지하철 창가에 기대어 책 속에 파묻히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침침한 눈을 비비며 활자들 사이를 유영하던 그 몰입의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책을 펼치는 순간 글자들이 두 겹 세 겹으로 번지고, 이내 울렁거리는 멀미가 올라온다. 돋보기를 맞춰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순간이 잦아졌다. 전자책은 가독성이 떨어진다는(실은 적응하기 싫다는) 핑계로 외면한다. 그렇게 책을 손에서 놓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갔다.
'읽기'의 입력값이 줄어드니, '쓰기'의 출력값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적확한 단어들은 입안에서만 맴돌고, 문장은 자꾸만 길을 잃는다. 한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수십 번, 결국 하얀 커서만 깜빡이는 빈 화면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더 충격적인 건 '말하기'마저 어눌해졌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예전 같으면 다채로운 표현으로 맞장구쳤을 상황에 "그거 있잖아, 그거… 되게 좋은 거" 같은 빈약한 단어들만 나열하고 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그 풍부했던 어휘들은 다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
그제야 뼈저리게 깨닫는다. 읽기, 쓰기, 말하기. 이 세 가지는 결코 개별적인 영역이 아니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유기체였던 것이다. '읽기'라는 첫 번째 동력원이 멈추는 순간, 나의 모든 언어 세계가 서서히 녹슬며 멈춰 서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첫 문장을 읽어야겠다. 침침한 눈을 비비고 인상을 찌푸리더라도, 오늘부터 딱 한 페이지만이라도 읽어내야겠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다. 빠져나간 '글력'을 되찾기 위한 최소한의 재활 훈련이자 생존 운동이다.
멈춰버린 톱니바퀴에 기름을 치고 다시 힘겹게 돌리기 시작하면,
언젠가 다시 자유롭게 읽고 쓰고 말하던 그 시절의 감각이 돌아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