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 씨의 만물상점 #9
어서 오세요, 성수 씨의 만물상점입니다.
오늘 꺼내놓을 물건은, 제가 방과 후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낡은 출석부 속에서 찾아낸 한 아이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날의 기억을 통해, 저는 아이의 문제 행동 너머에 있는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시선이야말로,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작지만 소중했던 깨달음의 순간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정훈이(가명),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였어요.
안경 너머의 눈빛은 똘똘했지만, 어딘가 잔뜩 경직되어 있었고 얼굴에는 늘 그늘진 불만이 가득했죠. 말은 안 했지만, 온몸으로 "나, 지금 건드리면 터져요"라고 외치고 있는 듯했답니다.
수업을 진행해 보니, 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어요. 정훈이는 영리했지만 쉽게 지루함을 느꼈고, 그 감정을 전혀 숨기지 못했죠.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하거나, 혼자 문제를 풀다 말고 연필을 집어던지며 화를 내는 일이 잦았습니다.
사건은 어느 날 터지고 말았어요. 조금 어려운 문제를 풀던 아이가, 갑자기 책상을 '쾅쾅' 내리치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으악! 모르겠어요! 짜증 나!"
다른 아이들은 모두 얼어붙었고, 저 역시 순간 당황했지만, 일단 아이를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저는 정훈이를 강의실 뒤편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화가 많이 났구나?"
"네! 풀어야 하는데, 안 풀리잖아요!"
아이는 씩씩거리며 억울한 듯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바로 그때, 제 눈에 한쪽에 쌓여있던 폐신문지 더미가 들어왔어요. 예전에 놀이치료 강의에서 들었던 말이 스치듯 떠올랐죠.
'분노를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아이에게, 종이를 찢게 하면 감정 해소에 도움이 된다.'
저는 곧장 신문지 뭉치를 가져와 아이 앞에 깔아주며 말했습니다.
"정훈아, 화가 다 풀릴 때까지 이 신문지를 마음껏 찢어보렴.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도 돼. 다 풀리면, 그때 선생님을 불러. 알았지?"
처음엔 망설이던 정훈이는, 곧 신문지를 집어 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분이 안 풀린 듯 거칠게 종이를 찢어발겼죠. '쫘악! 쫘악!' 강의실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날카로웠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손길은 조금씩 느려졌습니다. 산처럼 수북하게 쌓인 종이 조각들 앞에서, 정훈이의 거친 숨소리도 어느새 차분해지고 있었답니다. 마치 마음속 응어리가 종이와 함께 조각나 흩어지는 것처럼요.
수업이 끝날 무렵, 저는 창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정훈이 어머님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죠. 다른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자기 아들만 구석에서 신문지나 찢고 있었으니, 오해하시기 딱 좋은 상황이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어머님은 다른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 굳은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 혹시 아이에게 종이 찢는 것을... 선생님께서 시키신 건가요?"
그녀의 표정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어요.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놀란 것 같기도 한 묘한 얼굴이었죠. 저는 바짝 긴장한 채 사실대로 대답했습니다.
"네, 정훈이가 화를 많이 내서, 마음 좀 가라앉히라고 시켰습니다."
어머님은 별다른 말 없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셨고, 저는 그 찜찜하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주말을 보내야 했습니다. '혹시 항의 전화가 오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요.
그리고 다음 수업 날, 어머님께서 다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긴장한 저에게, 그녀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정훈이에 대한 깊은 속사정을 들려주셨습니다. 위로 대학생, 고등학생 누나 둘을 둔 늦둥이 막내아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아래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해 고집이 세고,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해 늘 걱정이 많았다고요.
그러다 다니던 성당의 수녀님께서 정훈이를 지켜보시다가 아이의 불안함을 알아채고, 상담을 권유해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교실 창문 너머로 신문지를 찢으며 감정을 푸는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죠.
어머님은 그 이야기를 수녀님께 전했고, 수녀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건 훌륭한 놀이치료 방법이에요. 이제 정훈이의 상담을 시작해 보세요."
그날, 정훈이 어머님은 제게 상담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제 손을 잡고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제 서툰 지식을 한번 실천해 보았을 뿐인데, 그것이 닫혀 있던 한 아이와 엄마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답니다.
그날 저는 배웠습니다.
아이의 '문제 행동' 너머에 있는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작은 노력 하나가,
때로는 가장 큰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