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오해, 그리고 덤으로 얻은 것

버블호떡은 맛있었다.

by 김성수

아들 녀석이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따라다니던 시절, 경기도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겨운 장터가 열리곤 했다. 그 수많은 먹거리 중에서도 내 발길을 멈추게 한 건 기름기 없이 담백하게 구워내던 '버블 호떡' 트럭이었다.


아이 간식으로 사줄 요량으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밝은 미소를 띠며 주인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호떡 두 개만 포장해 주세요."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랭했다. 아저씨는 나를 멀뚱멀뚱 바라볼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순간 당황스러움이 밀려왔고, 이내 불쾌한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내 말이 안 들리나? 왜 사람을 앞에 두고 무시하는 거지?'

뾰족한 마음이 돋아나려던 찰나, 뒤에 서 있던 손님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낮게 속삭였다.


"저 아저씨, 귀가 안 들리세요. 손짓으로 말씀하셔야 해요."

그 한마디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찰나의 순간, 내 멋대로 무례한 오해를 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서둘러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호떡을 받아 들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은 호떡 봉투보다 더 무겁게 짓눌려 있었다.


그 오래된 부끄러움이 문득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얼마 전 회사 근처에서 또 다른 버블 호떡 노점을 발견했을 때였다. 공교롭게도 그곳의 주인아주머니 역시 청각 장애를 가지고 계셨다. 이번에는 다행히 '귀가 들리지 않으니 손짓으로 도와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나는 동료들과 나눌 간식을 사기 위해 망설임 없이 다가갔다. 그리고 수년 전의 나보다 조금 더 넉넉해진 미소를 지으며 정성껏 손짓으로 주문을 건넸다. 소리 없는 대화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소통이었다.


호떡을 건네받는 순간, 아주머니는 봉투 안에 따끈한 호떡 하나를 슬그머니 더 넣어주셨다. 그러고는 눈가에 가득한 잔주름을 접으며 환하게 웃어주셨다. 그 웃음은 말보다 훨씬 더 크고 선명한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손에 든 호떡 봉투의 온기를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내가 덤으로 얻은 것은 단순히 호떡 한 개가 아니었다.


수년 전의 나는 누군가의 '침묵' 속에서 '무시'라는 날카로운 언어를 읽어냈다. 하지만 오늘, 나는 또 다른 침묵 속에서 '미소'라는 따뜻한 진심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간의 흐름은, 보이지 않는 것을 섣불리 오해하며 날을 세웠던 나를, 이제는 말 없는 표정 너머의 진실을 가만히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조금씩 빚어주었다.


몸의 배터리는 예전보다 빨리 닳을지언정, 타인의 마음을 읽는 렌즈의 해상도는 훨씬 선명해진 것이다.


그날의 시린 부끄러움이 잘 숙성되어, 오늘 나에게 이 따스한 '덤'을 선물해 준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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