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나면, 한국인은 쓰레기봉투부터 산다

분리수거는 해야지!

by 김성수


전쟁이 나면 당신은 무엇부터 살 것 같은가.
쌀? 라면? 생수?


틀렸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정답은 ‘쓰레기봉투’다.


최근 중동 전쟁 여파로 전국 마트에서 쓰레기봉투가 동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라면도 아니고, 생수도 아니고, 쓰레기봉투라니. 전쟁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웃겼다.


대체 왜 우리는, 식재자 및 생활용품 아니라 쓰레기봉투를 사들이는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기묘한 선택에는 꽤 한국적인 이유들이 숨어 있다.


첫째, 우리는 생각보다 깨끗함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굶는 건 버틸 수 있어도, 집 안에 쓰레기가 쌓이는 건 못 견딘다. 음식이 없어도 하루는 버티겠지만, 음식물 쓰레기 냄새는 단 하루도 참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생존보다 위생을 더 우선순위에 두는 민족일지도 모른다. 피난 가방 속에 라면 대신 종량제 봉투를 넣는 장면이, 이상하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둘째, 우리는 이미 한 번 배운 적이 있다.
마스크 대란, 요소수 사태. 그때 우리는 똑똑하게 깨달았다. ‘정부가 관리하는 물건은, 있을 때 사둬야 한다’는 것. 라면은 대체할 수 있지만, 이 규격 봉투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쓰레기봉투는 단순한 비닐이 아니라, 시스템에 묶인 생존 도구가 된다.


셋째, 쓰레기봉투는 가장 저렴한 ‘안심’이다.
사람은 불안할수록 무언가를 쌓아둔다. 그것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와는 별개다. 중요한 건 “나는 대비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금이나 비상식량을 대량으로 사기엔 부담스럽지만, 몇 만 원이면 창고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물건. 이 작은 비닐 묶음은,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 값싼데 부피는 크고, 그래서 마음까지 채워주는 물건.


넷째, 우리는 혼자 불안해하지 않는다.
누군가 “마트에 봉투 품절이래”라고 말하는 순간, 그 정보는 순식간에 확신이 된다. 맘카페와 단톡방을 타고 퍼지는 속도는, 사실상 공포의 속도와 같다. 그리고 그 흐름에서 나만 빠지는 건 더 불안하다. 이것은 생존 본능이면서 동시에, 아주 한국적인 경쟁 심리다.


이 모든 걸 생각하고 나니, 조금 이상한 감정이 든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하면서도, 우리는 끝까지 ‘일상’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든 깨끗하게 살고 싶고, 평소처럼 버리고 정리하며 살아가고 싶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건, 물건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집 안을 한 번 둘러봤다.
그리고, 쓰레기봉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해 봤다.

다행히, 넉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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