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은 왜 꽃사진을 프로필로 하는가?

어쩌면 꽃이 예쁜 게 아니라, 내가 그리운 것이었다

by 김성수

“우와 예쁘다.”

지인이 직접 찍어 보내준 꽃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고백하자면, 나는 한때 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봄이 오면 벚꽃 구경 한 번쯤 가줬고, 누군가 꽃다발을 건네면 "예쁘다" 한마디 하고 화병에 꽂아두는 정도였다. 꽃은 그냥 어여쁜 자연의 산물이었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신호 정도.


그런데 언제부턴가 길을 걷다 꽃을 보면 발걸음이 멈춘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각도를 바꿔가며 몇 장이고 찍는다. 그러고는 그 사진을 SNS에 올린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 중년이 됐구나.

(SNS에선 꽃사진을 많이 올리지만, 마지막 마지노선으로 아직 프로필 사진을 해보지는 않았다 ㅎㅎㅎ)


중년과 꽃 사진의 상관관계는 사실 통계적으로 입증 가능한 수준이다. SNS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2030의 피드엔 셀카와 음식 사진이 넘치는데, 4050의 피드엔 꽃이 가득하다. 복숭아꽃, 목련, 개나리, 철쭉, 수국, 코스모스… 계절 꽃 달력이라도 만들 기세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그때의 나는
꽃인 줄도 모르고 피어나
아쉬움 없이 빛나던 계절이었다."

by 김성수


그렇다. 젊을 때 우리는 스스로 꽃이었다. 그러니 꽃에 특별히 감탄할 이유가 없었다. 꽃이 꽃에게 감동받겠는가. 그냥 함께 피어 있을 뿐이지. 팔팔한 청년의 계절에게 봄은 배경이었고, 자신이 주인공이었다. 그 시절의 우리는 눈부셨고, 팽팽했고, 아무도 그게 특별하다고 알려주지 않아도 충분히 찬란했다.


그런데 중년이 되면 달라진다. 꽃을 바라보는 눈에 뭔가 다른 감정이 섞인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어떤 사무침 같은 것. 렌즈 속에 가두고 싶다는 조급함. 그건 꽃이 예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꽃이 지기 때문이다. 저 눈부신 게 며칠 안에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꽃 사진을 찍는 건, 어쩌면 꽃을 찍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지나간 계절을 붙잡으려는 몸짓.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눈부신 순간에 대한 애도. 혹은 경의.


"눈길 한 번 주지 않아도
나 자체가 봄이었고
충분히 찬란했던 날들."
by 김성수


그 시절의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아니, 알 필요가 없었겠지. 꽃은 자기가 예쁜 줄 모르고 핀다. 그게 꽃의 특권이다. 아름다움이란 의식하지 않을 때 가장 완전한 법이니까. 그리고 우리도 그랬다. 의식하지 않아도 충분히 빛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 지금 꽃 앞에서 멈추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을 알아볼 줄 아는 눈이 생겼다는 뜻이다. 청춘은 아름다움 속에 있고, 중년은 아름다움을 본다. 어느 쪽이 더 깊은 삶인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오늘도 길가에서 꽃을 보면 나는 멈출 것이다.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릴 것이다.


"참 예쁘다."


그 말이 꽃을 향한 것인지, 그 시절의 나를 향한 것인지는… 뭐, 알면 어때. 어차피 지금 이 봄도 지나가고, 지금의 나도 언젠가 그리워질 테니까. 지금 이 순간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꽃을 알아볼 수 있는 지금이 꽤 괜찮은 계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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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지인이 직접 찍어 보내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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