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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의 추억

백화점 점원 사건

by 김성수


교복을 입던 고등학교 시절, 상하의 전부 회색인 교복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정말 싫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이 우리를 보고 '스님'이라고 놀렸는데, 그럴 만도 했다. 정말 절에서 나온 것 같았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스님, 시주 좀..."이라고 장난으로 말 걸어오는 애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얼굴은 교복보다 더 회색이 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교칙이 엄한 시절이었으니까. 교복을 조금이라도 변형하면 생활지도부 선생님들이 매의 눈으로 감시했다. 싫어도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좋은 점도 있었다. 아침에 '오늘 뭘 입을까?' 하는 고민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옷장을 열면 회색 교복, 회색 교복, 회색 교복...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 참 단순했던 시절이었다.


가끔 어른들이 "역시 학생은 교복을 입어야 예쁘지, 너무 부럽다"라고 하시면, 속으로 '뭘 부러워하시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교복 입은 학생들이 얼마나 예쁜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때는 몰랐지만, 청춘 자체가 가장 멋진 액세서리였던 것 같다.




교복과 관련해서 아직도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시험이 끝나고 친구와 함께 백화점 구경을 갔었다. 그날따라 우리 교복이 유독 단정해 보였나 보다. 여성복 매장에서 친구랑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 계신 중년 여성분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 옷 입어볼 수 있을까요?"


나는 해맑게 대답했다. "입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탈의실이 어디죠?"


"어? 탈의실... 아, 저기 있네요!"


손으로 가리키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분은 왜 나한테 물어보시지? 설마...'


그런데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아니, 점원이 왜 이렇게 불친절해요? 서비스 정신이 엉망이네!"


"네??? 저... 점원 아닌데요?"


"유니폼 입고 있으면서 점원이 아니라고요?"


이때 나와 친구는 서로를 바라보며 깨달았다. 우리 교복이 백화점 점원복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아... 저희 고등학생이에요. 이거 교복인데요..."


"앗! 미안해요!"


그 순간 아주머니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운 일을 당한 것처럼 황급히 도망가듯 사라졌다. 남겨진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만 당한 게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회사원으로 오해받았고, 또 다른 친구는 은행에서 신입 직원으로 착각받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회색 교복을 '만능 유니폼'이라고 불렀다. 스님부터 점원, 회사원, 은행 직원까지... 정말 다재다능한 옷이었다.


회색 교복이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옷과 함께한 시간들이 가장 순수하고 웃음 많았던 날들로 기억되고 있으니 참 신기하다. 어쩌면 그 투박한 회색 교복이야말로 우리 청춘의 진짜 색깔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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