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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도 반려견을 키웠다.

검은색 강아지라 검순이라고 불렸다.

by 김성수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 한 마리의 작은 생명이 찾아왔다. 이름은 검순이.
아빠는 강아지를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고, 나와 동생은 그저 털북숭이 생명체가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엄마의 표정은 싸늘했다. "또 골칫거리 하나 늘었네." 엄마의 한숨 소리가 집 안을 맴돌았다.

그러나 운명은 참 아이러니했다. 결국 검순이의 모든 것을 챙기게 된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주고, 미지근한 물로 목욕을 시키고, 집 안팎을 청소하는 일까지. 당시에는 지금처럼 반려동물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터라, 검순이는 동네를 자유롭게 누비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이 녀석이 또 뭘 어지럽혔나 보자."
투덜거리며 검순이를 돌보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어느새 애정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검순이 역시 그 마음을 아는지 엄마만을 따랐다. 아빠와 우리가 아무리 불러도, 검순이의 시선은 언제나 엄마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검순이는 우리에게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대문 앞에서 배를 깔고 누워, 마치 문지기처럼 집을 지키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다가가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길을 터주었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으르렁거리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괜찮아, 아는 분이야." 우리 중 누군가가 말해주면 그제야 조심스럽게 몸을 비켜주었다. 한두 번 본 손님의 얼굴까지 기억해 내는 검순이를 보며, 우리는 감탄했다. "이 녀석, 정말 사람 아니야?"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장사를 시작하시면서 집안 상황이 바뀌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고된 일상 속에서 검순이를 돌볼 여유는 점점 사라졌다. 우리도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검순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야겠다."
부모님의 결정은 단호했다.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검순이는 우리 집에서 꽤 먼 곳으로 떠나보내졌다. 하교 후 집에 들어설 때마다 마주하는 텅 빈 마당의 적막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반갑게 달려와 꼬리를 흔들어주던 그 따뜻한 환영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런데 며칠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마당에서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꿈을 꾸는 건 아닐까?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분명했다. 검순이가 거기에 있었다. 털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발톱은 닳아 있었지만, 그 반짝이는 눈빛만은 여전했다.

"검순아!"
내 목소리에 검순이는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 달려왔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더러워진 검순이를 끌어안는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저녁에 돌아온 부모님은 검순이를 보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 먼 거리를 어떻게 혼자 찾아왔는지, 길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모든 것이 기적 같았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찾아온 아이를 어떻게 다시 보내겠니."
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검순이의 기적 같은 귀환을 축하했다.

검순이는 그 후로 숨을 거두는 날까지 우리 곁을 지켰다. 마치 "이번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라고 맹세하는 것처럼.

그러나 시간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검순이가 세상을 떠나던 날, 우리 가족은 모두 슬퍼했다.. 특히 엄마는 매우 힘들어하셨다. "내가 처음엔… 저 아이를 싫어했는데…." 엄마의 후회 섞인 한마디가 지금도 가슴을 아프게 파고든다.

그 이후로 우리 집에는 더 이상 개가 없다. 검순이만큼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검순이만큼 아픈 이별을 또다시 견딜 자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대문 앞을 지날 때면, 여전히 그곳에서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 짧았지만 뜨거웠던 사랑, 기적 같았던 만남과 이별. 검순이는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지, 무조건적인 사랑이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가르쳐준 소중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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