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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를 외면했던 나에게

우울의 본질을 보다

by 김성수

언제부터였을까,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긍정적인 생각'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밝고 좋은 면만 바라보면, 이 고통스러운 현실도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상황이 계속해서 나를 짓누를 때, 애써 피워 올렸던 긍정의 불씨마저 속절없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결국 남는 것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척하는, 아니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린 '무감각'이었다.


요즘의 내 상태가 꼭 그랬다. 머릿속은 늘 안개가 낀 듯 멍했고, 문득문득 밀려오는 감정들이 과연 진짜 내 것인지조차 희미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텅 비게 만들었을까. 굳건하리라 믿었던 사람에게서 받은 배신감, 원치 않았던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 위안을 구하고자 했던 종교 안에서조차 결국 사람에게 상처받고 길을 잃었던 방황. 하고 싶은 일 대신,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을 꾸역꾸역 감당해 내는 하루하루. 그렇게 현실에 나를 내맡긴 채 무감각하게 떠밀려 다니다 보니, 어느새 내 안의 감정 센서가 완전히 고장 나 버린 것만 같았다.


분명 화를 내야 할 순간에도 입술만 달싹일 뿐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 없었고, 눈물이 터져 나와야 할 슬픔 앞에서도 눈시울은 메마른 채였다. 그저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감추려 의미 없는 너털웃음만 흘릴 뿐. 입으로는 습관처럼 '난 괜찮아'를 되뇌었지만, 사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괜찮다고 믿고 싶었을 뿐, 속은 이미 곪아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게 되었다.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그린 그 영화 속에서, 나는 뜻밖의 내 모습을 발견했다. 주인공 라일리의 마음속에서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던 '슬픔이'. 기쁨 이가 어떻게든 슬픔이를 배제하고 외면하려 애쓰던 그 모습이, 바로 힘겨운 현실 앞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애써 부정하고 밀어내려 했던 나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어쩌면 슬픔이의 부재가 아니라, 슬픔이를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내 모습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을 인정하고 충분히 느껴야만, 다른 감정들도 제자리를 찾고 다시 건강하게 기능할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마치 나에게 직접 건네는 위로처럼 다가왔다. 슬픔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텅 빈 것 같던 마음에도 다시 온기가 돌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보았다.


결론적으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참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조금 엉뚱한 마무리일지 모르지만, 잊고 있던 내 안의 슬픔이를 다시 마주하게 해 주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그 영화 덕분에, 나는 비로소 멈춰버린 내 감정의 시계를 다시 움직일 용기를 얻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슬픔이에게도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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