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 원동력
갱년기 우울증이었는지, 아니면 일련의 사건들로 상처 입은 마음에서 비롯된 우울증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근 5년 동안 나는 우울감 속에서 살아왔다. 아마도 그 원인은 단순하지 않았을 터였다.
20대 초반 엄마가 돌아가시고 약 2년간 극심한 우울에 시달렸던 이후,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40대부터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우울은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원인을 돌이켜보면, 우선 자녀의 일이 컸던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엘리트 운동선수로 활동하던 아이가 대입을 앞두고 큰 부상으로 좌절했을 때, 그 아이의 좌절감이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직장 생활에도 변화가 있었고, 정신적인 위로가 되었던 신앙생활마저 회의감이 몰려왔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내 안의 슬픔이(슬픔)를 애써 외면하는 상태에 이르렀고, 그렇게 깊은 무기력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생각은 안갯속을 헤매는 듯했고, 감정은 꽁꽁 얼어붙었으며, 마음은 늘 폭풍 속인 듯한 시기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었다. 책을 읽어도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니 말하는 것조차 논리에서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듣게 된 지인의 일상 이야기가 내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 지인은 회사를 퇴사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브런치 작가라는 직함 덕분에 자신이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 했다. 스쳐 지나갈 법한 일상의 대화였지만, 유독 그 말만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거창한 욕심이 아니라, 그저 '글을 써봐야겠다'는 작은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복잡하게 얽힌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는 데 글쓰기가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와, 우울증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나는 그렇게 아무런 맥락도 형식도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그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글들이 하나둘 쌓이자, 문득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한동안은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고, 정말 운 좋게도 단번에 그 도전에 성공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해서 원대한 작가의 꿈을 꾸게 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그 정도의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꾸준히 글을 쓰고 다른 작가님의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복잡했던 생각과 감정들이 서서히 정리되고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브런치 작가’라는 작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우울과 마주하게 되었고
우울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우울을 극복하는 일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일상을 살아갈 소중한 추진력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