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지는
직장인으로,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다시 누군가의 딸로,
나는 수많은 이름으로 살아간다.
수많은 역할의 무게 속에
'나'라는 이름 하나,
점점 더 흐려져 간다.
문득 불린 내 이름 석 자가
낯선 옷처럼 어색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했더라,
무엇을 하고 싶었더라,
가슴 뛰게 원하던 것은 또 무엇이었나.
기억의 지도 위, 나를 향한 길은
빗속의 분필선처럼 번져간다.
온전한 '나'로 살고 싶은데,
거울 속에는 내가 없다.
눈빛은 멀고,
웃음은 남의 것이다.
나는,
이름 없는 그림자처럼
천천히 지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