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전선(戰線)

(장마 전선(前線) 아니고 전선(戰線))

by 김성수

하늘에 구멍이 난 듯

회색 비가 도시를 삼켜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우산으론 막을 수 없는 전투.

장화, 레인코트,

거대한 방패 같은 우산.

각자의 전투복을 갖춰 입고

버스에, 지하철에, 위태로운 자차에 몸을 싣는다.


묵묵히 전장으로 향하는

이름 없는 무리들.


해마다 이 계절이 오면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한다.

속보 자막, 단신 기사로

그들의 마지막 출근길이 박제된다.


러시안룰렛.

“나만 아니기를” 되뇌는

침묵의 기도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일터의 문을 연다.


전문가들은 연일 인재(人災)라 말하고

책임자들은 불가항력이라 변명한다.


회의는 길어지고

대책은 쌓이지만

내년 달력에도

오늘과 같은 비는 내릴 것이다.


죽은 자들의 이름 위로

무심히 다시 쏟아지는 폭우.


이것은 자연재해인가,

아니면 잊기로 합의한

사회적 살인인가.



매년 장마철이 되면,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연극을 되풀이하는 배우들처럼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진다. 앵커는 비통한 표정으로 사상자 수를 전달하고, 전문가는 스튜디오에 나와 ‘예견된 인재(人災)’였다며 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한다. 책임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시민들은 잠시 안타까워하다 이내 자신의 젖은 신발을 걱정한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어김없이 전투복을 챙겨 입고 일터로 향한다. 마치 어제의 비극이 나와는 상관없는, TV 속 세상의 이야기인 것처럼.


이 시는 그 씁쓸한 현실에 대한 나의 작은 분노에서 시작되었다.
‘목숨을 건 출근’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된 비유가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 사회. 재난이 일상이 되고, 죽음이 숫자로 환원되며, 우리의 무감각이 그 비극의 가장 단단한 공범이 되어가는 세상.


어쩌면 진짜 재난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가 아니라, 그 빗속에서 서로의 안위를 묻지 않게 된 우리의 마모된 마음일지도 모른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침묵의 기도가 쌓여, 결국 모두가 위험해지는 이 아이러니를 우리는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이 시가 그저 한 철의 분노로 흩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년의 달력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릴 때,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이 그저 더 큰 우산만이 아님을, 한 번쯤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흠뻑 젖은 채 옆을 지나가는 익명의 타인에게, 아주 작은 연민의 눈길이라도 건넬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