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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나의 우아한 친구들

친구라는 이름의 새로운 정의에 대하여

by 머니페니

어느 날, 나는 문득 그간의 지나쳐온 나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해봤다. 그 중에는 잠시 스친 인연도 있었고 내 인생의 삼분지일을 함께 하고도 어이없는 말 한마디에 쉽게 버려진 인연도 있었다. 난 그걸 여태 우정이라 생각했고, 싫어도 좋은 척하는 나의 태도가 친구와의 관계에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하며 지낸 내 카톡 친구들은 처음에는 회사 동료라는 카테고리로 엮이면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필자가 느낀 것은 우리 모두는 껍데기에 의한 친구 맺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을 느꼈다.


일단 나 허세영 만 해도 남의 시선을 얼마나 신경써왔는지 모른다. 성형부터 다이어트 중독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겉치장과.허울 좋은 가면을 쓰고 살다 보니 어린 시절 애틋한 관계 맺음에 대한 향수가 그리워졌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따사로운 봄밤 술 한잔 기울이며 대화를 나눈 내 남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그날따라 나의 마음을 미세하게 움직였었다.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시골 조그마한 마을에서 자란 그는 놀거리라곤 동네 우물가나 개울 그리고 동네 뒷산이 다였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개구리도 잡으러 다녔다고 했다. 날이 좋은 봄이 오는 계절이면, 형형색색의 꽃들을 구경하며 동네 뒷산을 헤집고 다녔고 달달한 꽃봉오리를 재미 삼아 꿀을 빨듯 거의 자연 속에서만 많은 시간을 보냈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웬 토끼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하얗고 조그마한 눈이 빨간 내 조막만 한 손아귀 보단 조금 큰 이 녀석은 눈을 깜빡깜빡 거리며 애처롭게 손길을 원했다 했다. 그래서일까 , 9살의 그는 아침 잠도 마다하지 않고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갓 이슬을 머금은 깨끗한 씀바귀 풀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리고 보드라운 크로버도 열심히 뜯어, 매일매일 귀엽고 사랑스러운 토끼에게 가져다주었다.


사실, 그가 자란 그 시절만 해도 요즘처럼 반려동물 이란 개념이 없었다. 동물병원이 어디에 있었겠나, 사람 살리는 동네의원조차 귀하던 그 시절 그에게 있어 토끼는 아플까 봐 혹은 굶을까 봐 애지중지하는 소중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말 주변도 없고 그렇다고 자라온 환경이 그저 사내 애들 몇몇 이서하는 골목대장 놀이 외엔 별 다른 흥밋거리가 없었던 곳에서 소중한 토끼의 존재는 점점 그에게 있어 커져 가고 있었다.


남편이 그랬다. 자기는 왜 그렇게 열심히 풀을 뜯어주고 애지중지했었는지 모르겠다고 , 토끼에게 애교를 바라고 키운 것도 아니고 그저 풀을 구해주고 싶고 춥게 자지 않길 바라는 그 마음이 그냥 그를 그렇게 토끼에게 정성을 다하게 한 원동력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날 토끼가 있어야 할 곳에 토끼는 보이지 않았고 동네 어르신들이 죄다 집에 와서 만두를 드시고 있었다. 고기가 귀하던 그 시절, 토끼고기로 만두를 만들었던 거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시절 그곳의 우리들 모두는 배고픔에 살던 시절이었다. 도시에서는 어떨는지 몰라도 늘 쌀이 없었고 고기는 매우 귀했다. 반려동물 이 아닌 당시의 동물은 가축으로 식용으로 혹은 집안의 일꾼으로 소용되던 시절이었다.


그 어린 사내아이는 9년 인생 처음으로 상실감이라는 걸 느꼈다. 분노인지 울분인지 알 수 없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그는 매우 슬퍼했다고..


그리고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그에게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찾아왔다. 포메라니안 종으로 맨날 아르르 아르르 굴어도 그렇게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며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며 눈치를 살피는 게 너무 이뻐 매일매일 놀아주었다고, 무뚝뚝한 그의 어머니조차도 얼마나 귀여워했는지 집안에서 도 집 밖에서 도 애지중지 그 어느덧 그의 집안의 막둥이가 되어 있었다.


뽀비, 자그마한 몸집에 귀여운 얼굴 꼬리는 프로펠러 맨날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키운 뽀삐는 그가 직장을 들어간 첫해 여름까지 뽀삐는 건강하고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가 아주 오랜만에 시골 본가를 들르겠다고 했던 그날, 뽀삐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새벽부터 뽀삐는 전날부터 주인이 온다는 소식에 이제나 저제나 옛 주인을 기다리느라 오매불망 집 앞과 도로에서 꼬리를 흔들며 여느 때처럼 부동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했다. 당시 어머니도 그냥 늘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였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 그때 동네 골목어귀를 빠르게 달려 지나가는 트럭을 뽀삐가 그가 온 줄 알고 반가워 뛰쳐 나간 것이였다.


오빠는 십수 년만 에 다시 찾아온 큰 상실감을 느꼈고, 온 가족이 매우 큰 슬픔에 빠졌다 했다. 어머니는 그 충격에 한 동안 식음도 전폐했다고 했다.




다시 또 세월은 흘러,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에게 있어 처음 교감을 가진 뽀삐 그리고 첫 싱실감을 준 토끼는 그에게 있어 그의 마음의 평생 반려자가 되었다 했다. 애잔한 마음, 측은지심 그 어딘가에..오빠가 처음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도 나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했었다. 아둥바둥 살려고 하는 내 모습이 어쩌면 그에게 는 토끼이자 뽀삐 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친구라는 것은, 그가 가진 추억을 평생토록 감정을 공유하고 교감하고 보듬을 수 있는 한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나는 찾진 못했지만 우리 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자기는 찾은 거 같다고 했었다.


지금 따뜻한 봄밤, 조용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나를 보드랍게 감싸는 그 느낌처럼 여러분에게도 소중한 인연이 찾아오길....

어짜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토끼와 뽀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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