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기 위한 노력과 회복이 약점이 되는 순간

일상을 놓치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버텨온 1년

by 지안

원래는 재판 날짜가 해를 넘어간다고 들었다.

검찰에서 가정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가고, 그 후 재판 날짜가 정해지기까지 약 6개월.

그리고 재판일은 그로부터 다시 1~2개월 뒤 열린다는 설명뿐이었다.

평소 뭐든 빨리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이 기다림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처음에는 기다림에 내가 계속 무너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언젠가는 하겠지’ 막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었다.

그래도 가정법원 사이트만큼은 놓지 못했다. 사건번호를 검색하면 기일이 잡히는 순간이 뜨기 때문에 습관처럼, 아니 강박처럼 계속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기일이 잡혀 있었다.

해를 넘기지 않고, 연말이 다가오기 직전의 날짜였다.

그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심장이 다시 뜨거워졌다.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 건가 싶었다.

모든 게 끝나면 나는 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곧장 근무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재판 날짜 잡혔어. 드디어 이 여자 볼 수 있다. 그날 꼭 미리 쉬는 날로 잡아놔.”

그리고 다이어리에 바로 적었다. 기일과 시간, 법정 호실까지.

1년 넘게 기다린,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사실, 나는 보고 싶었다. 그 여자를.

퇴소 전후로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고 결국 재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여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CCTV 영상 속에서만 인정된 학대 정황이 13건.

그럼에도 그녀가 남긴 말은 “아쉬워서 어떡하냐” 단 한 문장이었다.

우리는 퇴소 후 기관을 옮겼다. 그 사이 그녀는 고소를 당하고도 두 달 가까이 근무를 이어갔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찾아가지 않았다.

찾아갈 수 없었다.

내 성질대로라면 여러 번이라도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엄마였다.

지켜야 할 사회적 선이 있었고, 그 선을 넘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퇴소 후 짐을 가지러 오라는 연락에도 나는 가지 않았다.

남편이 대신 다녀왔다. 그마저도 담임 교사의 직접 전달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을 통해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더 보고 싶었다.

어떤 얼굴인지,

어떤 표정인지,

어떤 모습으로 이 시간을 지냈는지.

이렇게 오랜 시간 사과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법원 재판을 앞두고서도 끝까지 조용한 그 여자의 안색이

나는 너무 궁금했다.


재판은 난생 처음이었다.

얼마나 걸리는지, 법정 분위기는 어떤지, 피해자의 보호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건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알고 보니 우리는 피고가 아니기에 출석하지 않아도 재판은 진행된다고 했다.

판사들은 이미 사건을 검토한 상태로 법정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리고 재판 시간은 고작 5분 내외라고 했다.

1년 넘게 기다려 온 이 시간이 단 5분이라니.

현실이 그렇다면 받아들여야 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생각할 여지 없이 그 재판장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그 여자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기일이 잡히고 나는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아이의 진단서, 심리 평가 보고서, 상담 기록, 치료 소견서.

부모인 우리 부부의 진단서도 있었지만 이 사건의 논점이 흐려질까 싶어 처음에는 제외했다.

한 번에 모든 서류를 제출했다.

이상하게도, 조금 후련했다.

그리고 그날 상대방 변호사가 낸 의견서를 열람 신청했다.

신분증을 들고 법원을 방문해 신청하고, 승인이 나면 며칠 뒤 다시 방문해 열람하는 방식이었다.

그 사이 또 하나의 의견서가 추가로 제출됐다.

결국 두 건을 한 번에 열람하게 되었다.

안내받은 대로 1층 은행에서 인지를 사고 다시 부서로 올라갔다.

또 이제는 네비게이션 없이도 법원을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고, 또 애석했다.


그리고 드디어 상대방의 의견서를 읽었다.

내용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피해가 없다”는 말이 반복돼 있었다.

그 교사는 반성을 위해 스스로 아동학대 교육을 들었다며 수료증을 열 장 가까이 첨부해 두었다.

그런 것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이 문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

“이 사건 아동은 사건 이후에도 국내 곳곳을 여행하고, 부모가 홍보하는 제품의 후기를 SNS에 게시하며

여느 아동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무너져야 했을까.

울기만 해야 했을까.

아이의 웃음을 멈추고 가족의 일상을 접어야만 했을까.

아니다.

나는 일상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동시에 이 사건 앞에서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피해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였고, 우리 가족이 이 일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에 갔고, 상담실로 향했고, 때로는 여행을 떠났다.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포기가 아니라 버팀이었다.


나도, 아이도, 남편도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졌다.

그래서 남편은 단 한 번도 써본 적 없던 육아휴직을 썼다.

우리는 여행을 다녔다.

숨을 돌리기 위해, 버티기 위해.

그 시간이 ‘피해가 없었다는 증거’로 쓰이다니

소름이 끼쳤다.


결국 우리는 반박진술서를 썼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내 SNS 활동은 4년 전부터 이어져 온 생계 기반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 부부의 진단서를 첨부했다.

아이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최종 마지막 서류를 제출했다.


재판 전날까지

나는 가정법원 사이트를 들여다봤다.

추가로 낸 자료는 없는지, 열람 신청은 했는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토록 기다려 온 재판이었으니까.

그제야 알았다.

재판은 정말 실전이라는 걸.

그리고 근거 없는 주장으로 상대가 우리 가정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도.


그래서 묻고 싶다.

정말로 묻고 싶다.

나 같은 일을 겪고서도 이렇게 일상을 붙잡고 살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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