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날, 우리는 법원으로 들어갔다.

그날의 공기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by 지안

재판날, 우리는 법원으로 들어갔다.


재판 날 아침은 생각보다 평범하게 시작됐다.


아이를 깨우고,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기고.


매일 반복하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이 ‘그냥 하루’가 아니라는 걸.


남편은 재판기일이 법원 사이트에 뜨자마자, 그날을 쉬는 날로 비워 두었다. 몇 달 전부터였다. 우리에게 그 날짜는 일정이 아니라, 오래 미뤄져 온 결론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그 사람이 법정 앞에 앉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처분을 기다리게 되는 날.


처음 사건이 가정법원으로 넘어갔을 때, 솔직히 우리는 크게 실망했다. ‘이 정도로는’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관련 사례들을 찾아보며 알게 됐다. 특히 신체적 상해가 동반되지 않은 정서적 아동학대는, 절차가 늘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가정법원에서의 판단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 앉아 심판을 기다리는 당사자에게도 그날이 ‘부담이 아닌 날’일 수는 없다는 것.


남편은 내게 말했다.

우리는 피해 가정이고, 처분을 받는 쪽이 아니라고.

그러니 너무 떨 이유는 없다고.


그 말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완전히 놓일 리도 없었다.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일상을 붙잡아가며 그 시간을 지나왔다. 어쩌면 그 차분함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선택한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11월 27일이 왔다.

다행히도 한 해가 넘어가기 전이었다.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제발, 이 재판이 별다른 변수 없이 한 번에 끝나기를.

더 지체되지 않기를.


그렇게 어렵게 되찾아 놓은 일상이, 또 한 번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정말, 기다림을 그만하고 싶었다.


재판날 생길 수 있는 변수를 나는 미리 머릿속에 그려두었다.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경우, 혹시 재판부가 사건을 다른 절차로 돌려버리는 경우까지. 좋을 가능성과 나쁠 가능성을 함께 떠올려보는 건, 내게는 늘 ‘준비’라는 이름을 단 불안이었다.


그러다 문득, 피해 가정인 우리에게도 혹시 질문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사자가 아닌데도 판사님이 우리에게 묻는 일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만약’이라는 가능성 앞에서는 쉽게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간단한 질문들을 적어보기도 했다.


사건 이후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현재 아이의 상태는 어떤가요.

이 절차를 통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혹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대답까지 머릿속에 잠깐 준비했다가, 곧 생각을 고쳤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서류로 정리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긴 말을 보태는 건 오히려 그날의 무게를 흐릴 수도 있었다. 결국 나는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서류에 적은 내용은 사실 그대로이며, 그 내용을 바탕으로 공정한 판단을 바란다.


우리에게 11월 27일은, 기일이 적힌 날부터 이미 약속처럼 마음속에 꽂혀 있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마침내 도착했다.


굳이 숫자로 말하자면 우리는 1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다. 고소 이후 수사기관에서의 조사, 변호사 선임, 수없이 드나든 병원, 재판을 대비해 준비한 서류들. 경찰에서 검찰로, 검찰에서 법원으로 넘어가는 동안 우리는 매번 몇 달씩 기다려야 했다. 예측해보려 해도 늘 어긋났고, 결과는 언제나 ‘예상한 때’가 아니라 ‘기다림이 한참 지난 뒤’에야 도착했다.


그 과정에서 검찰이 아동학대 정황을 인정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기쁨과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걸 느꼈다. 인정받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렇다면 우리 아이는 정말 누가 봐도 그 일을 겪은 것’이라는 사실이 더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 행위에 대해 법원이 판단하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해졌다. 그저 오늘을 살고, 오늘의 고민만 했다. 조금 여유가 남는 날에만 내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재판 당일 아침까지도, 나는 그렇게 ‘오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실, 우리 부부는 이 날을 얼마나 고대해왔던가. 수사 초기부터 주변에 “무죄다”라는 말이 떠돌아도, 우리는 입을 닫고 참았다. 그렇게 참고 또 참으며, 수사기관의 혐의 인정이 이어졌고, 마침내 재판까지 왔다. 거짓과 소문 뒤에 가려져 있던 시간의 끝에서, ‘결과’라는 형태가 드디어 맺히는 것 같았다. 홀가분함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남편 말대로라면 떨지 않아야 했지만, 나는 결국 떨렸다.

그래서 더 깔끔히 옷을 갖춰 입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렇게 기다린 날에 우리는 재판 시간에 늦었다. 법원 주차장은 전쟁이었다. ‘오늘은 우리 사건만 있겠지’라는 어설픈 생각을 했던 건, 법정이 처음인 우리에게서 나온 순진함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법정 호수 앞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오전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10시 10분 사건이 아직 진행 중이었다. 재판이 연달아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건 하나가 평균 5분 남짓이라고 해도, 매번 정확히 그 시간에 끝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의 사건은 아직 대기실로 불리지 않았다.


나는 서늘한 의자에 앉아, 우리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이 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눈을 크게 뜨고 좌우를 살폈다. 구석까지 시선을 훑었다.

보이지 않았다.


당사자 출석을 확인하듯 이름이 호명될 때에도, 그 사람은 없었다. ‘설마’ 하면서도 ‘정말 안 온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남편은 말했다. 오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더 유리한 것이라고.


그때 직원이 다른 사건을 호명했고, 사람들은 대기실에 앉았다.

그리고 곧, 우리 사건을 다시 한 번 호명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사람이 나타났다.


내가 그렇게까지 찾아도 보이지 않던 사람이, 법정 문이 열리려는 찰나에 갑자기 나타나 우리보다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에서 대기하고 있었는지, 나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 부부와의 대면을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정도의 추측만 남았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재판장님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비공개 재판이라 방청은 불가했고, 당사자들과 변호인만이 들어왔다. ‘5분이면 끝난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공기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 사람의 얼굴을, 그 사람의 변호사를, 재판장님의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재판장님의 말로 재판은 시작됐다.

사건명을 확인하고, 기록을 검토했으며, 각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시간들이,

지금 이 몇 분 안으로 모두 접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날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전 04화행복을 찾기 위한 노력과 회복이 약점이 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