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무너진 날, 나는 끝까지 기록했다.
법정에 들어서자, 나는 내가 생각보다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 여자를 보자, 표정부터 먼저 무너졌다.
준비하지 못한 건 말이 아니라 얼굴이었다.
오직 재판장님 방향만을 직시하고 앉아 있는 그 여자와 달리, 나는 흐트러지지 않으려 애쓰고 왔음에도
시선을 그 여자에게서 떼어낼 수 없었다.
우리 가정을 이렇게까지 뒤흔들고 이 문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
아이의 부모와 아이를 돌보는 교사라는 관계로만 존재해왔고, 이렇게 법원에 오기까지 단 한 번의 사과도 없었던 사람.
나는 그 여자를 사건의 당사자로만 알고 있었다.
사과하지 않은 사람, 침묵한 사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여자는 아동을 학대했고, 그 이후에도 모른 척할 수 있었으며, 여러 기관을 거쳐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
그 대상이 내 아이였다는 사실만으로 이 여자는 나에게 천하의 재앙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 여자를 유심히 보았다.
깔끔한 옷차림, 감정이 지워진 얼굴.
아무것도 없는 표정.
아마도 관리된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공허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재판장님은 사건명과 사건번호를 확인한 뒤 사건의 개요를 설명했다.
제출된 서류와 피해가정의 탄원서, 그리고 다른 부모들의 엄벌 탄원서까지 모두 읽어보았다고 말했다.
‘다른 부모들의 엄벌 탄원서’라는 말은 나에게 이상할 만큼 큰 위로가 되었다.
수사 단계에서 그 여자는 평소 성실하고 따뜻한 교사였다는 이유로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받았다.
반면 우리 가정은 피해가정임에도 오랫동안 오해 속에 홀로 서 있었다.
그래서 재판부가 언급한 몇몇 부모들의 엄벌 탄원서는 시간이 지나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후 그 여자의 변호인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나는 그의 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의견서를 통해 수없이 읽었던 문장들이 그대로 다시 흘러나왔다.
무혐의, 혹은 가장 낮은 처분.
제 발로 찾아가 교육을 이수했고, 어느 기관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판장에서까지 말해야 할 만큼,
정말 말할 것이 이것뿐인 걸까.
사건에 대한 인식이나 피해에 대한 이해, 혹은 단 한 마디의 사과 대신 반복되는 건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뿐이었다. 교육기관의 이름을 나열하는 일이 반성의 증거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이어 그 여자의 발언이 시작됐다.
“처음엔 몰랐지만 이제야 아동이 상처받았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이 조금 전 말한 문장을 그대로 따라 읽는 수준이었다.
표정의 동요는 없었고, 여전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반성이라는 말은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보고 피해를 준 대상에게 사과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말일 텐데,
그 모든 과정 없이 어떻게 저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제 우리 부부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나는 짧게 말했다.
“저희가 드릴 말씀은 이미 제출한 서류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사실 왜곡 없이 공정한 처분을 부탁드립니다.”
판사님은 이어 말했다.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은 보았습니다.”
“그러나 피해아동에게는 강압적이고 교육의 범위를 넘어선 행동이 있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교육을 넘은 행동이었습니다.”
“아이가 매우 어린 점을 고려하면 이 경험은 아이의 뇌리에 깊이 남을 수 있고, 성장 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피해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피고인에게 물었다.
“피해아동이 다른 아이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였습니까?”
그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런 적은 없다고 답했다.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날, 사건 후 1년이 지나서야 나는 법정에서 그 여자의 입으로 ‘반성’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그것은 사과가 아니었다.
이 자리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판사님을 보며 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판사님은 기회를 주었고, 나는 말했다.
“상대방은 반성과 상처를 말하지만 저희는 문자 한 통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출된 의견서를 보고 저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아이에게 상처가 없다고 단언한 그 문장들은 저희 가정에 또 다른 상처였습니다.
아이의 회복은 올해 여름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그 점을 꼭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판사님은 최종 판단을 말했다.
“오늘보니 피고는 여전히 반성이 충분하지 않고 상황에 대한 인지가 부족해 보입니다.”
“다만 성실히 근무한 점은 참작하겠습니다.”
“아동학대 예방 교육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합니다.”
재판은 그렇게 끝났다.
그 여자는 가장 먼저 일어나 법정을 나섰다.
나는 뒤따라 일어나 그 여자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악마 같은 사람.”
그 말과 함께 그 여자는 사라졌다.
우리는 점심을 먹었고, 아이의 하교를 맞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오후를 보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
나는 노트북을 열어 ‘기억에 따른 재판 진술서’라는 제목으로 그날의 장면을 기록했고, 이내 닫았다.
뒤늦게 알았다.
그 여자는 결국 가정법원의 4호 보호처분을 받았다.
변호인은 더 중한 사건조차 4호에서 5호 처분에 그쳤다며 무혐의나 가장 낮은 처분을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변호가 향했던 끝 역시 4호 처분이었다.
우리 아이는 눈에 보이는 상해를 입지 않았지만,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아이에게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 나는 지켜보았다.
이 판결이 충분한 위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아이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다.
말했고, 움직였고, 기다렸다.
그리고 끝까지 판단의 자리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