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3일
2024년 10월 23일은 내 마음 속에 잊지 못할 장면을 남긴 날이다. 잊지도 못할 것 같고 잊지도 않았으며 잊혀지지도 않는 장면들.
우리 부부는 아이 담임선생님을 아동학대로 고소 전 어린이집 내에서 CCTV영상을 열람 요청을 하지 않았고,
고소 후 경찰청에서 수거해 간 어린이집 영상의 판독을 기다렸다.
그 시간은 내 생각보다 너무나 긴 두 달가량이었다.
그전 나는 내 눈으로 우리 아이를 괴롭힌 장면을 보지는 못했었고 물증이 있는 것이 아닌 부모의 심증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명확한 말들을 늘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 영상판독이 끝나기를 떠도는 우리 가정에 대한 헛소문과 함께 기다렸고, 최대한 원래의 일상을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8월 중순 고소를 했지만 9월에는 명절이 있었고 영상 판독은 계속 시간이 미뤄져 10월 중순경 끝이 났다.
담당 수사관님에게 영상 판독이 끝났으니 아버님과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드디어 기다렸던 영상을 확인하러 갈 수 있는 날이 왔는데,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 어린이집 CCTV 영상을 보아도 되고 보지 않아도 된다.
내가 보거나 또는 보지 않는다고 해서 경찰청에서 결정하는 수사결과가 바뀌지도 않는다.
하지만 보지도 않은 영상을 두고 그 영상 속에 우리 아이를 괴롭힌 장면이 있다면 그 장면은 나에게 평생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나의 확고한 심증과는 다르게 아이를 괴롭히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영상을 봐도 내가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수사관님의 전화를 받고는 궁금증이 폭발한 데다가 보지 알 수 없는 영상으로 나의 내적 갈등은 심각했다.
나와 남편이 같이 영상을 보는 것, 남편만 보는 것 두 가지의 선택이었다.
결국 내가 영상을 볼지, 안 볼지 결정하지 못한 채 우리 부부는 경찰청으로 출발했다.
수사관님과의 전화에서 확인을 하러 올 날짜와 시간을 정하는데 천천히 보면 2~3시간도 걸린다며 넉넉히 시간을 생각하고 와야 한다고 해서 오전 시간대로 약속을 정했다.
통화로는 어떤 내용도 말하기를 조심했던 수사관님 덕에 나는 더욱 상상의 날개만 펼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두 달 동안의 영상 속에 판독 후 요약된 학대의심장면만 보여줄 텐데 몇 시간이 걸린다니?
의아함과 동시에 그 시간이 용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듣고는 본래 당연히 확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생각이 조금 바뀌기도 했다.
사실 판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에 내 일상을 잘 보내려고 노력은 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그 불길한 생각은 나를 더 그러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현재 내 아이의 주양육자인 내가 어떤 충격적인 장면과 마주했을 때 나의 정신적으로 오는 총알은 상당할 것 같았고 그 영향은 아이에게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며 긴 고민은 이어졌다.
집에서 30분 거리인 경찰청.
나는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출발해서 도착하는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 부부는 차 안에서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몸은 경직되었고 마음은 긴장되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수사관님 얼굴을 마주했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이 함께 영상실로 향했고, 아직 이 선택에서 우유부단해져 있던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나를 음성이 들리지 않는 영상인데 충격받을 것이 뭐가 크게 있겠냐며 같이 봐도 괜찮지 않겠냐고 나를 회유했다. 그 말도 그 순간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담당 수사관님에게 조마조마한 눈과 목소리로 아주 어린아이 같이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
수사관님은 언제나 정답에 가까운 말을 해주었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마음이 나도 조금 그럴 것 같다며 아버님만 보고 어머님은 보지 않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조심스레 건넸다. 그런데도 남편은 눈으로 직접 보기 전이라 그런지 조금은 안일했다.
어린이집 CCTV는 음성도 들리지 않고 말하는 것도 알 수 없는데 보아도 뭐가 그렇게 얼마나 충격적이겠냐는 것이었다. 그 말은 큰 오산이었지만, 또 그 말을 듣고 짧은 시간 내에 결정해야 하는 나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영상실로 함께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남편이나 나나 우리 아이가 상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내용이라 하면 정서적 학대일 텐데 뭐가 그리 심각하겠냐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더욱이 뻗칠 수 없는 그친 상상만 한 것 같다.
나는 수사관님 말을 들었어야 했나. 결과적으로 10건이 넘는 영상 중 한 건을 채 보지 못하고 영상실 밖으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영상실로 들어갈 때는 녹화가 금지라 휴대폰을 들고 갈 수가 없고 맨 몸으로 들어가야 하며,
여러 번도 볼 수 없어 딱 한 번만 확인가능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했다.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혹여나 미리 준비한 노트와 볼펜을 들고 같이 따라 들어가게 되었었다.
들어가자마자 영상을 틀 준비를 하고 곧바로 어린이집 내부 영상이 나왔다.
본격적으로 영상이 시작되기 전 수사관님의 마우스 소리 그 몇 초간에도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기억이 나는 전개를 더듬어보자면, 아이들의 점심시간부터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은 밥을 먹다 하나둘씩 급식을 끝내고자 선생님에게 잔반을 확인받고 있었다.
남은 잔반들을 보고 무난하게 선생님의 허락을 받은 아이들은 잔반수거통에 버리고 놀이를 시작했고
우리 아이가 선생님에게 잔반 처리를 위해 허락을 맡으러 가니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앉아서 손가락질을 하며 다시 먹고 오게 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다시 먹고 온 우리 아이는 또다시 혼나며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는 시간에도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아이만 앉혀 잔반에 손가락질을 하며 혼내고 있었고 우리 아이는 먹기 싫은 밥을 계속해서 재차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우리 아이는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수업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수업시간이라 둥그렇게 앉아있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우리 아이는 홀로 교실 한 구석에 서서 잔반을 들고 서있었다. 수업이 끝났는지 아이들의 움직임이 분산해진 시간까지도 잔반을 들고 있었고 그 선생님의 어떤 감정이 풀리지 않았는지 같은 반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더니 일제히 반 아이들 전체가 우리 아이를 둘러 감싸더니 교실 가운데에서 교실 문쪽까지 손과 팔목을 잡아당겼다.
타 아동들에 의해 끌려 온 우리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며 울며 고개를 저으며, 선생님에게 애원하듯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 아이를 선생님은 상황을 일단락시키기는커녕 계속해서 손가락질하며 아이를 혼내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고도 내가 혼자 최악의 장면을 유추했던 그 상황 이상이었고 아이가 오열하며 다른 아이들 손에 손과 팔목을 붙들려 끌려와 우는 것을 보고 내 심장이 멎는 듯해 더 이상 볼 수 없어 영상실을 급하게 뛰쳐나왔다.
같이 확인하자고 했던 남편도 나보고 빨리 여기를 나가라며 재촉했다.
이렇게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사각지대가 아닌 CCTV가 비추는 정면에서 일어난 일이라 우리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10건이 넘는 영상 중 단 한 건도 채 보지 않은 내용이다.
나머지는 정리된 범죄일람표를 통해 내용을 대략 확인하였고, 아이가 싫어하던 그 점심시간에 생각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며, 이 상황은 대체 뭔가?
결국 내 머릿속에 온 총알은 그냥 총알이 아니었다.
우리는 결국 집에 가는 길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고소 후 처음으로 그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우리 부부는 그 목적지에 대해 서로를 말릴 수가 없었고 한 마음이었다.
이 와중에도 다른 아이들이 들을까봐 원장을 어린이집 밖으로 나오라고 해서 대화요청을 했고
이 짓거리를 한 선생은 하필 그날 연차였다.
고소 후 2달 넘게 근무를 이어오던 선생은 연차를 당일만 사용해 다음 날은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우리가 다녀가고 소식을 듣고는 그다음 날부터 연차를 이어서 쓰며 결국 그렇게 서서히 출근을 종료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걸 눈으로 이제야 확인하였는데 이런 식으로 사라져 버린 선생을 우리 부부는 다시는 보지 못했다. 모든 것을 봐버린 우리는 이제는 가만히 삼키고만 있을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우리의 절실한 호소가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