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온도
나는 올 3월경 우리 아이의 피해사실이 담긴 뉴스영상을 보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내겐 악플러 같은 동네 암마를 고소한 적이 있다. 같은 어린이집을 재원 했었지만 아이 나이도 달라 전혀 그 닉네임이 이 엄마라고 매치하지 못했고 처음 아동학대사건을 고소하고 점차 알게 되는 진실 속에도 겉으론 그분을 마주하면 나는 웃으며 인사했다. 지역맘카페에서 동네주민들과 설전까지 하며 과격하고 거침없이 우리 사건에 대해 쏟아붓는 댓글의 당사자가 그분일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처음 충격과 배신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분에 대한 마음이라기보다 사람에 대한 싫증,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나는 분명 동네사람인데 누가 이렇게 확신에 차서 사실이 아니라고 댓글을 다는지 누군지 너무 궁금하고 괘씸한 마음에 그분의 게시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본인이 아이의 사진을 올려둔 게시물을 보았고, 나는 그분의 아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알 수가 없었고 그다음엔 본인이 올려둔 게시물에서 집에서 찍은 놀이터사진이 있었다.
그 놀이터는 우리 집 앞 놀이터기도 했다. 아주 나와 가까이 사는 분이었다.
내가 뒤늦게 당사자라며 댓글에 대해 언급하며 대화를 보낸 적 있는데 직접 그렇게 아는 척하고 말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는 말을 나에게 해왔다.
이건 뻔뻔하기도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는가?
본인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면서 남의 아이의 피해뉴스에 알지도 못하면서 댓글을 무수히 써놓고는 그래서 우리 가정을 간접적으로 거짓말부모로 비치게 해 놓고는 그런 뻔뻔한 대답이라니!
그렇게 나는 처음엔 알지 못했던 그 아이의 사진으로 나중에서야 그 엄마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등골이 오싹했다.
그 무수한 댓글을 작성한 작성자가 실제 누군지 알게 되고 며칠 뒤였다.
아이와 걸어서 집을 가려면 아파트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놀이터를 지나가야 했고, 지나가는 길이었다.
나와 깊은 친분은 없지만 인사를 하고 지내던 사이였고,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눈 후로 처음 마주쳤다.
여전히 그 도발적인 상대방의 직접 아는 척 말할 수 있는지 지켜본다는 말을 난 기억하고 있었다.
보자마자 곧장 그분에게 다가가 "닉네임 xx 맞죠?"라며 거침없이 물었다.
자기를 스토킹 했냐며, 뜬금없는 소리를 하더니 손의 동작이 크게 보일만큼 손을 벌벌 떨며 어디엔가 갑자기 전화를 걸었다. 그분은 처음에 앉아서 이야기 좀 하자고도 했지만 이미 용기 내 목소리를 낸 피해가정의 인터뷰가 담긴 뉴스에 그렇게 당당하게 아니라고 무수한 댓글을 남긴 사람인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당연히 거절했다. 그리고 그 전화의 목적은 경찰에 나를 스토킹으로 신고하는 것이었다.
xx엄마가 닉네임 xx이란 거 알았으니까 됐다고 이제 간다는 나를 본인의 아이와 집 앞까지 따라왔다.
가지 말라며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나의 말에 그분은 이미 멘털이 나간 듯 비쳤고 내가 정신 차리라며 상대방의 손목부위를 가볍게 흔드는데 통화 상대방에게 지금 저를 폭행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가 차고 황당한 상황을 눈앞에 두고 그분의 아이, 내 아이가 있는 자리니 나는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토킹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역시나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 이후, 그분은 집으로 돌아가 배우자와 대화를 했는지 스토킹 신고를 취하한다며 갑자기 사과를 하려는 의향스를 비추며 온라인상으로 대화를 걸어왔다.
좁은 동네이고 같은 어린이집을 재원 했으니 마주치며 얼굴을 익혔고 고개인사만 하는 정도였으니, 서로 전화번호 같은 건 모르는 사이정도였다. 하지만 그 당시 치유되지 않고 아프기만 한 내 속에 불을 지핀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고 스토킹으로 그 자리에서 신고까지 하는 그분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또 그분의 맘카페 게시물을 보다 알게 된 사실인데,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카페활동을 하는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과 다른 일로도 설전을 자주 하며 다른 사람에게 고소장이 날아갈 것이니 기다려라는 말도 서슴지 않게 댓글로 남기는 사람이었다.
내 눈엔 상습적인 '키보드 워리어'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온라인상이라고 누군가에게 협박성 댓글을 남기고 그걸 당한 누군가는 또 겁에 질릴 수도 있지 않은가.
더욱 난 이 사람을 법적으로 반드시 처벌하고 싶었다.
나는 그분의 사과를 거절했다. 다만 둘러서하는 사과 말고 상처받았다면 정말 미안하다는 직설적이고 직선적인 말투로 나에게 사과의사를 비췄다면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동네에는 그분이 내가 댓글을 단건 맞지만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나와 좋게 대화해서 잘 풀었다는 소문이 나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맘카페에 진실을 알리고 많은 일이 있었다며 한 분은 고소할 예정이라고 알렸을 때 본인을 저격했다며 내가 만든 지옥에 여전히 갇혀있다고 나에게 메시지가 오곤 했다.
그분을 향한 나의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그리고 그 사람의 모자를 깊게 쓴다던지, 마스크를 항상 낀다던지 하는 모습도 온라인상에서만 남을 공격하는 그 모습과 이미지가 점점 겹쳐졌다.
결정적으로 남편과 동행하는 길에서 그분을 마주쳤는데 내가 남편에게 저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남편이 그분을 쳐다보았는데 그분이 남편에게 뭘 쳐다보냐고 말을 던진 것이다. 우리에게 이건 시비였다. 그 사람도 남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그런 사사로운 대화를 떠나서 이 분이 법적으로 위배되는 댓글이 있다면 나는 수사기관의 처벌을 원했다. 이 지독한 키보드 워리어에게 객관적인 증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도 내가 쓴 맘카페의 글을 보고는 인터넷상으로 공갈협박 그만하라며 이젠 서류상으로 시시비비를 가지자고 대화가 왔다. 사실 공갈협박이란 것은 폭행, 협박으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는 범죄인데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고 현실에서 나는 백 프로 오해만 받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닌걸 아니라고 도대체가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어디란 말인가! 당시 관할 구청에선 어떤 행동도 말도 못 하게 했고 수사기관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은 이 억울함과 피해사실을 제대로 알리기에도 정말 무리스러웠고, 지역사회에 알려야 할 알려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고민 끝에 올린 글인데, 그 글을 읽고선 그분이 다시 격분한 것 같았다.
내가 만든 지옥이란건 어디에도 없었지만 어차피 그분이 말한 서류상으로 시시비를 가리려고 그러려고 자료를 모아 준비 중이었다.
나는 경찰서로 가서 내가 모은 자료들과 본인이 닉네임 xx과 동일한 인물이며, 왜 연령도 다르고 같은 반 재원생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댓글을 달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담긴 녹취록 등 오랜 시간 혼자 모은 자료들을 제출했다. 그리곤 경찰에서는 닉네임 xx에 대해 4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검찰로 송치된 후에도 꽤 오랜 기다림이 있었으며, 그 사이 나는 '형사사법포털' 어플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해 진정서를 제출했다.
해당 어플로 들어가 로그인을 하고 사건을 클릭해 진정서를 휴대폰으로 바로 작성해 제출할 수 있다.
늦은 밤 나는 이미 이 사건으로 지역사회에서 2차 가해를 받고 있으며, 이 댓글로 인해 더 오해로 비치게 되었을 수도 있다며 이 분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 가정이 정말 억울할 것 같다고 진정서를 쓴 것 같다. 어디에 적어놓고 여러 번 수정한 게 아닌 한 번에 줄줄 써 내려간 진정서였다.
그래서 제출한 진정서의 내용을 다른 어디 남기지도 않았고, 그 내용이 지금은 상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검사님 성함이 있어 그 검사님 성함을 부르며 간절히 부탁한다고 마무리를 한 기억이 있다.
내 진심이 울부짖는 검사님 이름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분은 동네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검찰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밤이었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잠깐 누워 쉬고 있던 시간은 밤 9시경이었다.
지친 내가 무뚝뚝하고 감정 없이 받은 전화에 발신자는 '지방검찰청 xxx검사님'이었다.
이 시간에 어느 공무원이 피해가정에게 전화를 한다는 것인가.
일단 스팸전화인지 알고 짧은 "네"만 하며 끊으려고 했는데, 점차 들어보니 이 사건을 상세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 진정서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밤에 검찰에서 전화가 오면 기분이 안 좋겠지만 그럼에도 안 할 수가 없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검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진정서를 읽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직접 연락드렸습니다. 어머님이 사과받을 수 있도록 제가 중재하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멈췄다.
긴 시간 동안 나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싸워왔지만, 정작 마음속에서는 ‘이 싸움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검사님은 말했다.
“그냥 넘길 수도 있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도 딸을 키웁니다.”
나도 결국 상대방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한다면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며칠 뒤 검찰청에서 상대방에게 사과받을 시간이 잡혔고 사실은 완벽한 사과도, 완전한 해결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래, 이 사람도 이 상황의 무게를 느끼고 있구나.” 정도는 느껴졌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검사님의 용기가 나의 선처로 이어졌다.
선처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끝없이 되돌아보던 나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검사님은 이 길로 문을 나설 때는 이 일에서 조금 해방되었으면 좋겠다고 가정의 행복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처음엔 당연히 쉽지 않았다. 재판도 아직 열리지 않은 상황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돌 중에 하나는 비워진 일상을 살아가며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댓글 그 몇 글자가,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말장난이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매일을 버티기 어렵게 만드는 돌덩이였다. 그분의 사과가 진정한 사과인지 아닌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
검사님은 최소한 '내 진정서를 제대로 들여다봤구나.'라는 것은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무수한 사람들을 경멸하고선 검사님을 통해 '정의'의 온도를 느꼈다. 따뜻했다.
그 늦은 밤 한 검사님의 먼저 걸려 온 전화를 나는 평생을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