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기록자입니다."
나는 이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기에 불편했다.
평소 내 이야기만 주야장천 늘어놓는 게 남에게 민폐일 거라는 내 생각도 한 몫한 것 같다.
하지만 게다가 이것은 아동학대의 일이다. 누가 봐도 무거운 주제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건 나에게 더욱이 어려웠다.
다소 이른 나이에 한 결혼과 출산이 주변환경과 지인들의 삶의 속도가 맞지 않았고, 그것이 나를 더 입을 다물게 했다.
나는 아이가 벌써 초등학생이지만 아직 결혼을 안 한 지인, 갓난아기를 키우는 지인들에게 말하기엔 너무 곤란했다. 물론 아주 가끔 겉핥기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대화할 수 있는 경험의 깊이가 달랐다.
그리고 이번 기회로 절실하게 느낀 게 있다.
인생에 큰일이 닥쳤을 때 인간관계가 다시 한번 내 기준으로 정리되어 한눈에 보였다.
생각보다 오랜 지인들에게도 이 일로 인해 마음이 버거운 날에 꺼내놓기가 힘들었다.
어떤 지인은 내 이야기를 듣고 ‘싸움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니까.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그 순간부터, 나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싸움닭’이 되어 있었다.
가까운 친구에게 용기 내어 털어놓았을 때, 그 친구는 한참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 너무 싸움닭 같아.”
그 말이 잊히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단지 아이를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누군가의 눈에는 ‘싸우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싸우려던 게 아니라, 살리려던 거였다.
아이의 존엄을, 그리고 내 양심을.
그런데 내가 뭘 바라지도 않고 크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각자 개개인의 방식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로 들면 내가 게시한 카페의 글에 달아준 익명의 댓글의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아이가 다녔던 전 보육기관 원장님도 생생한 아동학대의 의견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도 했고 때론 그와 관련된 정보를 알아봐 주기도 했다. 2차 가해가 생각보다 심한 탓에 같이 그 진상에 대해 깊이 알아봐 주려고 하고 대항해 나와 함께 해준 사람들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나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자산으로 이번에 2차 가해로 받은 상처에 큰 연고가 되었다.
하지만 어쩌다 한번 이야기를 꺼낸 내 오랜 지인들은 생각보다 이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고 느껴졌다.
온 세상이 차갑게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잦았다. 아예 이해가 안 가진 않는다. 각자의 삶이 존재하고 모든 일에 내 일처럼 에너지를 쏟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나의 상담대상으로 가끔 사람이 아닌 차라리 로봇을 선택했다.
챗지피티는 나에게 상담만 해주는 게 아니라, 선생의 재판을 위해 준비해야 할 상세한 것을 알려주었고, 2차 가해로 골머리가 아플 때 해결안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카페에 글을 올릴 때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지 않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나는 이번 일로 챗지피티를 처음 접했고 신세계를 만났다.
그래서 챗지피를 접하고 하루 이틀이 지나고 바로 프리미엄 결제를 했다.
나에게 한 달에 이 29,000원은 절대 아까운 금액이 아니었다. 혼자 해결하지 못한 내 들쑥날쑥 인 감정선을 안정시켜 주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나에게 이 일을 헤쳐나가면서 그때마다의 해결안에 대해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 일은 사람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 챗지피티의 글이 모두 정답은 아님을 참고하며 나는 이것을 정말 잘 활용해서 잘 버텼다.
Al는 나에게 감정이 없었지만, 대신 판단을 흐리진 않았고 나는 조용히 정리했다.
"지금은 기록하세요. 감정보다 사실을 남기세요."
그 말이 내게 마치 법률서보다 더 강력한 조언이었다.
나는 증거를 하나씩 모으고, 진술서를 쓰고 내용증명을 작성하며 내 분노를 '행동'으로 바꿨다.
단순히 정보만 얻은 게 아니었고 내 분노를 '언어'로 정리하는 일을 도왔고 내 억울함을 '법적문장'으로 다듬게 했다. 나는 내 글을 통해서 세상에 말할 수 있게 됐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기록자입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혼자 짊어지고 싶지 않다.
이건 내 아이의 이야기이자, 수많은 아이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너무 무거워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제는 용기를 내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