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두 개의 질문 - 생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제2장 동굴의 약속, 신의 탄생
4절. 동굴의 약속: 최초의 사회 계약
이야기를 마친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에는 단순한 피로 이상의 어떤 무게감, 마치 방금 신들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온 자의 조심스러움과도 같은, 어떤 의식(儀式)적인 장엄함이 어려 있었다. 모닥불의 빛이 희미하게 흔들리며 그의 길고 지친 그림자를 동굴 벽 위로 던졌다. 그는 타다 남은 차가운 숯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부족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그의 느린 발걸음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는 이제 단순한 사냥꾼이 아니었다. 그는 죽음의 세계를 엿보고 돌아와 신들의 언어를 인간에게 처음으로 전해준 예언자였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를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구현하려는 인류 최초의 예술가였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모닥불의 따뜻한 온기가 닿지 않는 동굴의 깊숙한 곳, 축축하고 서늘한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 구석이었다. 그곳의 벽면은 수만 년 동안 동굴 천장에서 스며 나온 석회수가 만들어낸 기묘한 종유석과, 시간만이 새길 수 있는 거친 질감으로 가득했다. 비바람과 세월의 흔적만이 새겨져 있던 차갑고 울퉁불퉁한 석회암 벽. 그는 잠시 벽면을 어루만지며 숨을 골랐다. 마치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선 화가처럼, 혹은 신성한 제단 앞에 선 사제처럼.
그리고 그는 손에 쥔 검은 숯으로, 축축하고 거친 벽면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은 서툴렀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가 그린 것은 어제 사냥했던 사실적인 들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확한 재현은 아직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살갗으로 ‘느껴지는 것’, 즉 자신이 방금 이야기로 풀어낸 세계의 보이지 않는 질서, 그 힘들의 관계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먼저 거대한 뿔과 날카로운 하얀 이빨을 가진,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 공포의 형상을 그렸다. 그가 눈보라 속에서 마주했던 죽음의 현현, ‘북쪽의 영혼’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괴물보다 훨씬 작고 연약하지만 서로 손을 맞잡고 둥글게 모여 앉아 모닥불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것은 바로 지금 동굴 안에 있는 그들 자신, ‘우리’였다. 그리고 사람들 위, 밤하늘을 상징하는 공간에는 그를 지켜보았던 할머니의 얼굴이자 길잡이였던 큰곰 별자리를 서툴지만 알아볼 수 있게 새겨 넣었다.
이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세계관 설계도’였다. 혼돈스럽고 예측 불가능해 보였던 세계에 처음으로 질서를 부여하고, 그 질서 속에서 인간의 자리를 규정하는 선언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피로 쓰이지 않았지만 그 어떤 법전보다도 강력하고 신성한,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 계약’이었다.
제1조: 세계의 질서. 세상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때로는 적대적인 힘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북쪽의 영혼’이라 부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지켜보고 보살피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더 크고 자비로운 힘 또한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조상님의 별’이라 부른다. 세상은 선과 악, 빛과 어둠, 질서와 혼돈, 추위와 온기가 영원히 투쟁하는 장이며, 우리는 그 한가운데 서 있다.
제2조: 인간의 조건. 우리는 이 거대한 투쟁 속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맹수의 날카로운 발톱도, 두꺼운 가죽도, 빠른 발도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우리에게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함께 모닥불을 지키며 추위와 어둠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의 진정한 힘은 개인의 근육이 아닌, 공동체의 유대에서 나온다.
제3조: 공동체의 의무. 따라서 우리는 ‘조상님의 별’이 우리에게 보여준 자비로운 시선처럼,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내가 느꼈던 그 간절한 연결처럼, 서로를 보살펴야 한다. 나의 사냥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내가 가져온 이 들소 고기는 나의 용맹함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나의 약속의 증표다. 공동체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이며, 공동체의 기쁨은 곧 나의 기쁨이다. 우리는 이 동굴 벽 앞에서, 이 꺼지지 않는 모닥불 앞에서, 그리고 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조상님들의 영혼 앞에서, 서로를 결코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이 동굴 벽화는 인류 최초의 ‘외부 기억 장치(External Memory Device)’였다. 목소리로 전해지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변형되고 왜곡되며, 때로는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잊힐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세계관과 약속은, 시간의 흐름에도, 세대의 교체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영속성을 얻었다. 개인의 살갗에 새겨졌던 고통과 감응의 기억은, 이제 동굴 벽이라는 공동체의 영원한 스크린 위에, 모두가 함께 보고 동의하며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불멸의 약속으로 기록되었다.
종교와 신화, 그리고 법과 도덕의 기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육체적인 감응의 체험을,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고 따를 수 있는 영원한 약속으로 체계화하고 제도화하려는 위대한 시도였다. 이 벽화 앞에서, 부족 사람들은 더 이상 흩어져 각자의 생존만을 걱정하는 개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북쪽의 영혼’이라는 공동의 위협과 ‘조상님의 별’이라는 공동의 희망을 공유하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 즉 진정한 의미의 ‘우리’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이야기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허구적 실재(fictional reality)’의 힘이다. 돈, 국가, 법, 기업, 그리고 신. 이 모든 것은 동굴 벽에 그려진 ‘조상님의 별’처럼 물리적인 실체는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와 규칙을 함께 믿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그 어떤 바위나 강물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사냥꾼이 그려 넣은 저 단순하고 서툰 그림은, 그 본질에 있어서 수만 년 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려질 미켈란젤로의 장엄한 ‘천지창조’나, 프랑스 혁명의 격동 속에서 루브르 박물관에 걸리게 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고, 상상 속의 약속을 현실의 질서로 바꾸는 인간 고유의 능력, 즉 ‘세계 창조’의 능력이었다.
이 ‘동굴의 약속’은 부족에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생존의 무기가 되었다. 이제 그들은 단순한 혈연 집단이나 생존을 위한 임시 동맹이 아니었다. 그들은 공동의 세계관과 목적,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성한 의무를 가진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이 되었다. 그들은 더 효율적으로 협력하여 거대한 매머드를 사냥했고, 더 체계적으로 아이들에게 부족의 지혜와 규칙을 가르쳤으며, 더 굳건하게 외부 부족의 침입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위협에 맞섰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없는, 혹은 덜 강력한 이야기를 가진 다른 인간 집단, 예컨대 우리의 사촌 격인 네안데르탈인과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점차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네안데르탈인도 우리 호모 사피엔스만큼, 혹은 우리보다 더 큰 뇌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정교한 도구를 사용했고, 불을 다루었으며,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아픈 자를 돌보는 ‘감응’의 능력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그들에게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처럼 추상적인 상징과 복잡한 신화를 통해 수백 명 이상의 개체를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로 묶어내고 유연하게 협력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협력은 아마도 서로 얼굴을 알고 신뢰할 수 있는 수십 명 단위의 소규모 가족 집단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동굴 벽에는 사실적인 동물 그림은 남아있을지언정, ‘사회 계약’을 담은 복잡한 세계관의 설계도나 추상적인 상징 체계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약 3만 년 전, 지구상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지고 호모 사피엔스만이 유일한 인간 종으로 남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단순한 신체적 능력이나 지능의 차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의 힘, 즉 ‘정당화’를 공유하는 능력의 차이였을 것이다. 더 매력적이고, 더 설득력 있으며, 더 많은 낯선 사람들을 ‘우리’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이야기를 가진 종이 결국 살아남았다. 우리는 이야기하는 동물(Homo Narrans)이었기에, 마침내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발명품, 즉 ‘공유된 신화’와 ‘동굴의 약속’ 뒤에는, 우리가 앞으로 수만 년 동안 그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길고 어두운 그림자가 이미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 바로 그 힘이, 동시에 ‘우리’가 아닌 존재들을 배제하고 파괴하는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비극적인 역설이었다. 그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이제 모닥불의 따뜻한 온기에서 잠시 벗어나, 그 빛이 만들어내는 동굴 밖의 차갑고 잔인한 어둠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