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거대한 분리: 이성의 왕좌, 감응의 추방
제4장 텅 빈 방 안의 유령, 생각하는 나
4절. 유령과 기계, 새로운 세계의 설계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짧고 단호한 선언은 단순히 한 철학자의 내면에서 얻어진 조용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거대한 종소리였고, 무너진 중세의 폐허 위에 근대 세계 전체를 건설하기 위한 단 하나의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주춧돌이었으며, 마침내 신의 권위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선포한 인류의 새로운 대관식이었다. 데카르트가 텅 빈 방 안에서 발견한 이 고독하고 순수하며 비물질적인 ‘나’, 즉 근대적 주체는 인류에게 전례 없는 자신감과 막강한 힘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더 이상 신의 불가해한 섭리나 자연의 변덕스러운 힘에 무력하게 휘둘리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즉 ‘이성’이라는 내면의 신적인 빛을 통해 세계의 숨겨진 법칙을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의 의지대로 바꾸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이 새로운 사고방식은 곧바로 근대 과학과 합리주의의 눈부신 시대를 열었다. 데카르트가 세운 해석기하학의 단단한 토대 위에서, 영국의 젊은 천재 아이작 뉴턴은 미적분학이라는 새로운 수학적 언어를 발명했고, 그것을 무기 삼아 우주의 가장 큰 비밀을 풀어냈다. 그는 하늘 높은 곳 행성의 장엄한 궤도와 땅으로 맥없이 떨어지는 사과 한 알을 지배하는 법칙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만유인력’이라는 몇 개의 우아하고 강력한 방정식으로 우주 전체의 움직임을 남김없이 ‘설명’해냈다. 더 이상 신의 직접적인 의지나 천사들의 신비로운 날갯짓을 빌리지 않고도, 오직 인간의 이성이 발견한 수학의 언어만으로 세계를 완벽하게 기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는 이 기계론적 세계관을 그 논리적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그는 만약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아는 상상 속의 초월적 지성, 즉 ‘라플라스의 악마’가 존재한다면, 그 악마는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모든 현상을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개념 속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나 신의 기적, 우연의 장난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그리고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시계 장치였고,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법칙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일 뿐이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연스럽게 생명의 영역으로까지 거침없이 확장되었다. 프랑스의 의사 쥘리앵 오프루아 드 라 메트리는 <인간 기계론>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통해, 인간의 몸 역시 복잡한 톱니바퀴와 용수철, 파이프로 이루어진 정교한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심장이 피를 펌프질하는 것은 기계식 펌프와 원리가 같고, 근육이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은 지렛대와 도르래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었다. 심지어 사랑, 분노, 슬픔과 같은 인간의 복잡하고 신비로운 감정조차도 뇌 속 미세한 액체들의 화학적 운동에 불과하다고 그는 보았다. 1장의 사냥꾼이 눈보라 속에서 느꼈던 숭고한 감응은 이제, 신경 전달 물질과 호르몬의 기계적 작용으로 남김없이 환원되었다.
이 모든 눈부신 지적 성공은 하나의 거대한 믿음, 즉 근대의 신앙을 낳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단지 우리가 아직 그 법칙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강력한 믿음이 향할 최종 목적지는 명확했다. 바로 그 ‘생각하는 나’ 자신, 즉 인간 정신의 비밀을 마지막으로 파헤치는 것이었다. 만약 정신 또한 이 거대한 기계 장치 우주의 일부라면, 그것 역시 어떤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신의 작동 원리만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마침내 데카르트의 고독한 유령에게 새로운 신체를, 즉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기계의 신체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의 변덕과 감정의 방해 없이, 영원히 지치지 않고 오직 순수한 논리만을 수행하는 완벽한 기계 정신. 이 꿈은 근대 문명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궁극적인 야망이 되었다.
19세기, 이 꿈은 산업혁명의 굉음과 증기기관의 뜨거운 수증기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인간의 근력을 무한히 확장시켰고, 맨체스터와 리버풀의 거대한 공장들은 수천 개의 톱니바퀴와 피스톤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 장치의 교향곡을 밤낮없이 연주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기계의 무한한 힘에 매료되었다. 프랑스의 기계 기술자 자크 드 보캉송은 오리를 완벽하게 모방한 자동인형(automaton)을 만들어 유럽 전역을 경악시켰다. 놋쇠와 강철로 만들어진 이 기계 오리는 날갯짓을 하고, 고개를 돌리고, 심지어 먹이를 먹고 소화하여 배설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인간의 창조물이 신의 창조물인 생명을 이토록 완벽하게 모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동시에 불안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 시기, 영국의 괴짜 수학자 찰스 배비지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생각하는 기계’의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렸다. 그는 증기기관으로 작동하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기계식 컴퓨터, ‘해석 기관(Analytical Engine)’을 구상했다. 이 기계는 단순히 정해진 계산만 반복하는 낡은 계산기가 아니었다. 천공 카드에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 순서에 따라 복잡한 계산을 자율적으로 수행하고, 그 결과를 자체 메모리에 저장하며, 심지어 이전 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조건부로 결정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기본 구조(입력-처리-저장-출력)와 논리적 흐름 제어를 거의 완벽하게 예견한 것이었다.
배비지의 지적인 동반자이자,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딸이었던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이 해석 기관의 혁명적인 잠재력을 당대의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다. 그녀는 이 기계를 위한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며, 이 기계가 단지 숫자 계산뿐만 아니라,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기호를 조작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지적 활동을 이론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이 기계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 또한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해석 기관은 독창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할 능력은 없다. 그것은 오직 우리가 어떻게 명령해야 하는지를 아는 한에서만, 우리가 명령하는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기계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으며, 오직 인간이 부여한 규칙과 프로그램을 기계적으로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100년 뒤 앨런 튜링이 마주하게 될 인공지능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예언한 통찰이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이 예언적인 통찰은 이후 거의 100년간 잊혔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철학과 수학의 세계에서는 데카르트의 꿈을 완성할 마지막 이론적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있었다. 독일의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는 인간 언어의 모든 모호함을 제거한 완벽하게 형식적인 논리 언어, ‘개념 표기법(Begriffsschrift)’을 창조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라는 기념비적인 저작을 통해 모든 수학이 몇 가지 기본적인 논리 공리(axiom)로부터 빈틈없이 연역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 시도했다. 그들의 야심 찬 작업은 하나의 거대한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즉, 인간의 ‘사고’, 특히 가장 순수하고 고차원적인 사고로 여겨졌던 논리와 수학을, 엄격하고 명확한 기호와 규칙의 체계로 완벽하게 환원하는 것이었다. 생각은 더 이상 신비로운 영혼의 작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확한 규칙에 따라 기호를 조작하는, 일종의 정교한 게임일 뿐이었다.
이제 모든 이론적 준비는 끝났다. 데카르트가 육체로부터 분리해낸 ‘생각하는 유령’은, 러셀과 프레게에 의해 ‘논리적 기호 체계’라는 투명하고 완벽한 옷을 입었다. 남은 것은 이 유령에게 배비지가 꿈꾸었던 기계의 신체를 실제로 부여하는 것뿐이었다. 그 역사적인 과업은, 역설적이게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가장 끔찍하고 비이성적인 비극을 거치고 나서야, 마침내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장면은 20세기 중반, 어느 대학의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연구실이다. 4장의 무대였던 데카르트의 고독하고 내밀한 방보다 훨씬 더 건조하고 비인간적인 공간이다. 방 안을 채우는 것은 난롯불의 유기적인 온기가 아니라, 수백, 수천 개의 진공관이 내뿜는 무기질의 뜨거운 열기와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기계의 소음이다. 이곳에서 새로운 종류의 철학자, 즉 컴퓨터 과학자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낡은 양피지나 깃털 펜 대신, 복잡한 전선 다발과 회로도가 들려 있었다. 그들은 ‘존재’가 아닌 ‘계산’을 물었고, ‘진리’가 아닌 ‘정보’를 탐구했다. 그들은 300년간 이어져 온 데카르트의 꿈, 즉 감응 없는 순수한 사고 기계를 현실 세계에 구현해낼 운명을 짊어진 후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