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두 개의 질문 - 생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제1부: 두 개의 질문 - 생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제1장 하늘의 질문, 살갗의 대답
1절. 생각 이전의 세계: 침묵의 300만 년
수백만 년이라는, 우리의 시간 감각으로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아득한 세월 동안, 이 행성 위를 걸었던 우리의 조상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세상의 이유를 묻고 존재의 의미를 파고드는 그런 방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현재였으며,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엄혹한 북소리에 맞춰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긴 행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60만 년 전의 어느 날, 오늘날 우리가 탄자니아라고 부르는 동아프리카의 라에톨리(Laetoli) 지역. 인근의 사디만 화산이 거대한 재채기처럼 땅의 분노를 터뜨리며 하늘 전체를 잿빛으로 물들였다. 태양은 그 힘을 잃고 희미한 원반으로 전락했고, 세상은 온통 숨 막히는 먼지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뜨겁고 미세한 화산재가 마치 불길한 눈처럼 쏟아져 내려 대지를 두껍게 뒤덮었고, 잠시 후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리자 세상은 온통 질척이는 회색 반죽, 갓 마르기 시작한 시멘트처럼 변해버렸다. 바로 그 위태로운 땅 위, 작은 발자국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성인 둘과 아이 하나, 세 명의 작은 존재가 불안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것이다.
훗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남쪽에서 온 유인원’이라는 학명을 얻게 될 이들은, 우리의 가장 먼 직계 조상 중 하나였다. 그들은 나무 위 생활에서 내려와, 최초로 허리를 비교적 꼿꼿이 세우고 두 발만으로 대지를 걷기 시작한 용감한 개척자들이었다. 그들이 남긴 발자국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 인류의 것과 닮아 있다. 깊게 파인 뒤꿈치 자국, 발바닥 중앙의 아치를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곡선, 그리고 마지막으로 땅을 박차고 나아가는 엄지발가락의 힘찬 흔적까지. 그들은 분명 우리처럼, 불안정하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며 걷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젖은 화산재 위를 걷는 그들의 눈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익숙한 걸음걸이 너머에 있는 깊고 아득한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눈빛은 불안과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었을지언정, 우리가 아는 종류의 ‘호기심’이나 ‘성찰’의 빛은 담겨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왜?’라는 질문이 없었다. 그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재를 보며 그것이 땅속 깊은 곳, 거대한 불의 신의 분노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상상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하필 지금 이곳에 쏟아지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화산재는 그저 눈을 따갑게 하고, 숨 쉬는 것을 고통스럽게 만들며, 익숙한 길을 지워버리는 즉각적인 위협, 피해야 할 재앙으로만 인식되었을 뿐이다. 그들은 잠시 멈춰 서서 자신들이 남긴 선명한 발자국을 돌아보며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와 같은 실존적인 질문으로 고뇌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발자국은 그저 몇 걸음 전에 자신이 서 있던 위치를 알려주는 물리적인 흔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가 그 발자국에 부여하는 ‘인류 최초의 직립보행 증거’라는 장엄한 의미는, 오직 수백만 년 뒤의 후손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의 세계는 온전히 즉각적인 현실, 즉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법칙이 지배하는, 과거도 미래도 희미한 영원한 현재였다. 창자를 쥐어짜는 듯한 굶주림의 고통, 메마른 풀숲에서 갑자기 번뜩이는 검치호(劍齒虎)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주는 공포, 비 온 뒤 맡을 수 있는 흙의 달콤한 냄새, 종족 번식을 향한 거부할 수 없는 원초적인 욕망, 무르익은 과일의 강렬한 색깔, 저 멀리서 들려오는 동족의 경고 소리, 계절풍이 실어오는 비의 냄새와 다가올 우기의 예감. 그들의 뇌는 이 모든 감각 정보를 처리하고 생존에 최적화된 반응을 내놓는 경이로운 생체 컴퓨터였지만, 그 연산의 목적은 단 하나, 시시각각 변하는 ‘지금 여기’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무사히 넘기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세상은 질문하고 탐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끊임없이 반응하고 적응해야 할,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한 자극의 연속일 뿐이었다. 수십만 년, 아니 그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그들은 그렇게 아프리카의 대지 위를 걷고, 먹고,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도망치고, 그리고 죽어갔다. 아무런 질문도, 아무런 이야기도 남기지 않은 채, 거대한 침묵 속에서 말이다.
다시 100만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같은 아프리카 대지 위에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등장했다. ‘손재주 좋은 사람’이라는 이름처럼,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이전의 조상들이 자연에 주어진 그대로의 돌멩이를 사용했다면, 하빌리스는 의도를 가지고 돌을 가공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강가에서 적당한 크기의 조약돌을 찾아 다른 단단한 돌로 여러 차례 힘껏 내리쳐, 한쪽 면에 날카로운 날을 가진 석기를 만들어냈다. 고고학자들이 올도완(Oldowan) 석기라고 부르는 이 원시적인 도구는, 비록 투박해 보일지언정, 인류가 자신의 연약한 신체적 한계를 넘어 자연을 적극적으로 변형시키고 환경에 개입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첫 번째 혁명적인 신호탄이었다.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돌멩이 하나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이 날카로운 날로 그들은 이전에는 결코 접근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식량 자원을 얻을 수 있었다. 사자나 하이에나가 먹다 남긴 동물의 두껍고 질긴 가죽을 찢고, 단단한 뼈를 부수어 그 안에 숨겨진, 영양가 높고 칼로리가 풍부한 골수를 꺼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귀중한 단백질과 지방이었다. 이 새로운 고에너지 식량은 그들의 뇌가 이전보다 더 커지고 복잡해지는 데 결정적인 연료를 제공했을 것이다.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기관이니까. 석기는 또한 그들을 더 강력한 방어자로 만들었다. 날카로운 돌멩이는 맹수에게 치명적인 무기는 되지 못했겠지만,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던져져 접근을 막는 데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혁신조차도 여전히 거대한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놀랍게도, 호모 하빌리스가 사용했던 이 단순한 형태의 석기는, 그들이 지구 상에 존재했던 약 100만 년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시간 동안 거의 아무런 변화도, 발전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더 얇고, 더 날카롭고, 더 효율적인 도구를 ‘상상’하거나 ‘설계’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어미에게서 딸에게로 수만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돌 깨는 방식을 거의 기계적으로 ‘반복’했을 뿐이다. 이는 결코 그들의 지능이 낮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그들의 석기는 그 환경에서 생존하기에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돌을 깨뜨려야 날카로운 날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실용적 지혜, 즉 ‘노하우(know-how)’는 가지고 있었지만, ‘왜’ 특정 각도로 내리쳐야 돌이 원하는 방식으로 쪼개지는지에 대한 추상적인 원리, 즉 ‘이론적 지식(know-that)’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지성은 눈앞의 문제 해결과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과제에 완벽하게 최적화되어 있었기에, 그 너머의 가능성을 탐구하거나 더 나은 방법을 질문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혁신’이 미덕이 아니었고, ‘전통’의 충실한 반복이야말로 생존을 보장하는 최고의 전략이었다.
다시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광활한 대지 위에 우뚝 섰다. ‘곧선 사람’이라는 이름처럼, 그들은 우리 현생 인류와 거의 흡사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더 커진 뇌, 길어진 다리, 완벽한 직립보행 능력.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종 중 하나였다. 그들은 자연 상태의 불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불을 의도적으로 ‘통제’하고 유지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류였을 가능성이 높다. 불은 추위와 어둠, 그리고 맹수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었고, 음식을 익혀 소화 효율을 높이고 영양 흡수를 극대화했으며, 무엇보다 어둠이 내린 저녁 시간을 공동체의 유대를 다지는 새로운 사회적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호모 에렉투스는 또한 아프리카라는 인류의 요람을 벗어나 아시아의 광활한 초원과 유럽의 울창한 숲으로 퍼져나간 최초의 탐험가들이었다.
그들은 이전 시대의 투박한 올도완 석기와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아슐리안(Acheulean) 주먹도끼를 만들어 사용했다. 돌의 양면을 모두 떼어내어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손에 쥐기 좋게 유려한 물방울 모양으로 다듬어진 이 석기는 단순한 기능성을 넘어, 어떤 추상적인 ‘설계도’나 ‘미적인 감각’이 그들의 머릿속에 존재했음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어떤 고고학자들은 이 주먹도끼가 사냥이나 도살 같은 실용적인 목적 외에도,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거나 짝짓기 의식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값비싼 시계나 자동차로 부와 능력을 과시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 놀라운 기술적, 어쩌면 미학적 진보의 속도 역시 우리의 시간 감각으로는 숨이 막힐 정도로 느렸다.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기본적인 디자인은, 그것이 처음 등장한 약 170만 년 전부터 사라지는 약 20만 년 전까지, 무려 150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만약 호모 에렉투스에게 특허 제도가 있었다면, 단 하나의 디자인으로 인류 역사 전체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독점적인 로열티를 누렸을 것이다. 이 경이로운 시간의 정체, 이 믿을 수 없는 보수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그들 역시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다른 시간 감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혁신은 여전히 목적이 아니었다.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고 전승하는 것, 즉 안정이 최고의 가치였다. 그들의 세계는 여전히 거대한 반복의 순환, 예측 가능한 질서 속에 안주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밤하늘을 보았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았다. 불은 그들에게 따뜻함과 안전, 그리고 이전 인류는 결코 갖지 못했던 ‘저녁 시간’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불빛이 맹수들의 접근을 막아주는 동안, 그들은 동족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몸짓과 어쩌면 초기 형태의 언어로 소통하며 사회적 유대를 다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밤하늘은 여전히 경이로움이나 낭만, 혹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어둠’을 의미했고, 어둠은 곧 위험과 미지의 공포를 의미했다. 별들은 그저 어둠 속에 박힌 희미한 빛이었고, 달은 밤의 사냥이나 이동 시에 숲의 지형을 간신히 분간하게 해주는 유용한 등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세계는 아름답거나 추하지 않았다. 그저 생존에 유용하거나, 혹은 위험할 뿐이었다. 그들의 세계에는 아직 사물의 본질을 묻거나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의미’가 탄생하지 않았다.
300만 년이라는,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의 조상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성공적인 생존 기계였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넘나드는 격렬한 기후 변화에 적응했고, 검치호와 동굴곰 같은 거대한 맹수들 사이에서 살아남았으며, 자신들의 유전자를 아프리카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곳곳으로 꾸준히 퍼뜨렸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거대한 침묵 속에, 영원히 반복되는 듯한 현재 속에 갇혀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직 세상을 ‘설명’하려는 지적인 욕망도, 자신의 고통스러운 존재를 ‘정당화’하려는 실존적인 고뇌도 없었다. 그들은 아직, 우리가 아는 의미에서의 ‘인간’이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의 ‘생각’은, 아직 저 먼 미래의 지평선 너머에서 새벽빛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