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화하라 (감응하는 마음으로, AI를 넘어)
[프롤로그] 바코드가 읽지 못하는 것들
_ : 사유의 여정을 시작하며
새벽 2시, 편의점 문에 달린 풍경(風磬)이 딸랑거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계산대 안쪽으로 들이닥친 건 날 선 새벽의 찬 공기와 진한 알코올 냄새였다.
허름한 점퍼를 걸친 할아버지 한 분이 비틀거리며 들어와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이내 그는 신중하게 소주 한 병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러나 몇 걸음 채 떼지 못해 낡은 운동화 끈이 발목을 잡았고, ‘와장창’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초록색 유리 조각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알싸한 소주 냄새가 순식간에 좁은 매장을 가득 채웠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내가 늙어서… 이 아까운 걸…” 연신 굽신거리는 쭈글쭈글한 손등 위로 당혹감과 미안함, 그리고 취기로도 가려지지 않는 삶의 짙은 고단함이 뚝뚝 묻어났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맨손으로 유리 조각을 치우려 했다. 나는 황급히 계산대 밖으로 나가 그를 말렸다.
나는 빗자루를 들고 나와 깨진 조각들을 쓸어 담았다. 내 뒤에 있는 POS기(판매 시점 정보 관리 시스템)는 이 상황을 아주 명쾌하고 건조하게 ‘설명(Explanation)’한다. [상품명: 소주, 가격: 1,900원], [폐기처리]
물론 이 낡은 기계는 최첨단 인공지능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본질은 같다. 아무리 고도화된 지능이라 해도, 찢어질 살갗이 없는, 타 자와 마주 할 육신이 없는 존재는 애초에 ‘감응(Affection)’을 흉내 낼지언정 진정으로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계에게 이 사건은 단지 재고의 마이너스이자, 처리해야 할 데이터일 뿐이다. 거기엔 슬픔도, 사연도, 노인의 떨리는 손에 대한 연민도 없다. 그 안에서 이 1,900원의 손실은 그저 제거되어야 할 ‘비효율’로 기록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1,900원짜리 소주 한 병이 깨졌을 때, 할아버지의 무너져 내린 어깨가 말하고 있는 침묵의 언어를. 어쩌면 오늘 그가 겪었을 모멸감, 혹은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차가운 방에서 홀로 삼켜야 했던 외로움의 무게를 말이다. 기계는 그것을 ‘손실’이라 기록하지만, 나는 그것을 ‘아픔’이라 읽는다. 그것은 계산할 수 없는 인간의 ‘정당화(Justification)’다.
아침 8시가 되면, 출근 전쟁이 시작되며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말끔한 정장을 입었지만, 며칠 야근이라도 한 듯 눈 밑이 퀭한 청년이 뛰어들어온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삼각김밥 하나와 캔커피를 집어 든다. 그는 계산이 끝나기도 전에 비닐 포장을 뜯으며 허겁지겁 차가운 밥알을 입에 넣는다. 씹는 둥 마는 둥 목구멍으로 넘기는 그 밥덩이는 식사라기보다는 연료 주입에 가깝다.
만약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완벽하게 분석하는 미래의 인공지능이 이 장면을 본다면 어떤 진단을 내릴까? 아마 이 청년의 행동은 ‘비효율의 극치’ 일 것이다. 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한 식사, 급격한 섭취로 인한 소화 불량, 과도한 스트레스. 육신 없는 지능은 즉시 경고할 것이다. “이것은 비합리적인 자기 파괴 행위입니다. 다른 효율적인 방법을 권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 행동이 효율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나는 그 청년의 뒷모습에서, 아주 먼 옛날 눈보라를 뚫고 며칠째 사냥감을 쫓는 어느 ‘사냥꾼’의 그림자를 본다. 가족을 위해, 혹은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피로와 배고픔이라는 육체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며 삶의 전쟁터로 뛰어드는 그 비합리적인 의지 말이다. 그가 삼각김밥을 씹어 삼키며 다짐하는 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무너지고 싶은 유혹을 견디며, “나는 이 고통을 통과해 내 삶을 증명하겠다”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좁은 카운터 안에 서서, 매일 인류의 역사를 다시 본다. 300만 년 전 빙하기의 동굴에서 시작된 인류의 사유(思惟)는, 고고한 철학자의 서재나 화려한 연구실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을 에는 눈보라 속에서, 깨진 소주병 앞에서, 그리고 바쁜 출근길 급하게 속으로 밀어 넣는 삼각김밥 속에서 치열하게 이어져 온 ‘생존의 드라마’였다.
지금 우리는 그 긴 여정의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 해 주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리는 과연 스스로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기계는 계산하고, 우리는 느낀다. 기계는 정해진 답을 내놓지만, 우리는 그 답을 끌어안고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이곳 편의점의 형광등 아래서 썼다. ‘설명’의 도구인 바코드를 찍으며, 동시에 ‘정당화’의 주체인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이것은 AI와의 대결이 아닌, 조화로운 공존을 향한 여정이다. 우리는 원시의 동굴과 미래의 초지능을 잇는 사유의 궤적을 되짚어볼 것이다. 기계의 ‘차가운 지도’에 의지하되 인간의 ‘뜨거운 나침반’을 놓지 않고 생각의 나선 계단을 오르는 법을 탐구한다. 그 끝에서 우리는 기계가 주는 정답 대신, 삶을 지탱해 줄 단 하나의 ‘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도 딸랑, 종소리가 울린다. 또 한 명의, 대체 불가능한 우주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