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두 개의 질문 - 생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제1장 하늘의 질문, 살갗의 대답
3절. 살갗의 대답: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계절이 몇 번이나 제 색깔을 바꾸는 동안, 어김없이 찾아온 혹한은 이번엔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얼어붙은 땅에서는 며칠째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늘어날수록 동굴 안에는 무겁고 습한 침묵만이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다. 거대한 수컷 들소를 발견한 것은 그 혼자가 아니었다. 사냥에 나선 다섯 명의 무리가 동시에 녀석을 보았다. 놈은 굶주림에 지친 사냥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잡힐 듯 말 듯 거리를 유지하며 가파른 언덕 너머 미지의 협곡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첫 번째 경고가 내려왔다. 뺨을 스치는 바람의 방향이 급격히 바뀌고, 공기 중에 비릿한 눈 냄새가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아쉬움을 삼키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 그들의 뇌 속에 오랜 생존의 경험으로 각인된 ‘설명(Explanation)’의 목소리가 명확한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더 가면 위험하다. 해가 지고 있고, 폭풍이 온다. 저 언덕을 넘어가면 돌아올 길을 잃는다. 여기서 멈추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다."
동료 중 가장 연장자가 그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끌며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자는 신호였다. 그것은 반박할 수 없이 옳은 판단이었다. 빈손이라도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부족에게도 이익이라는 냉철한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눈에는 동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도망치는 들소의 검은 등 위로, 며칠째 젖이 나오지 않는 어미의 품에서 축 늘어져 가쁜 숨만 몰아쉬던 아이의 창백한 얼굴이 겹쳐졌다. 그 환영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아니, 이성보다 훨씬 더 뜨겁고 강력한 무언가를 깨웠다. 그는 동료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너희는 돌아가라. 나는 간다."
그것은 광기였다. 그는 뒤에서 들려오는 동료들의 다급한 외침을 차가운 입김처럼 흩어버리고, 홀로 언덕을 넘었다. 그를 움직인 것은 근육이 아니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감응(Affection)’이었다. 그는 미친 듯이 달렸다. 숨이 터질 듯 차오르고 허벅지가 비명을 질렀지만, 녀석을 놓치면 내 아이의 숨도 멎는다는 생각 하나가 그를 채찍질했다.
추격은 처절했다. 막다른 절벽 끝에서 녀석과 뒤엉켜 뒹굴었고, 날카로운 뿔이 그의 옆구리를 깊게 들이받았다. 늑골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비명 대신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마지막 힘을 다해 창을 꽂아 넣었다. 마침내 거대한 산 같던 짐승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졌을 때, 그는 승리의 환호성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돌칼을 꺼내 고기를 다듬기 시작했다. 가죽을 가르고 내장을 드러내자, 두꺼운 지방층 아래 숨어있던 짐승의 붉은 온기가 김을 뿜으며 확 끼쳐왔다. 그는 그 마지막 온기에 얼어붙은 손을 잠시 녹였다. '이거면 된다. 이 고기면 아이를 살릴 수 있다.' 안도감이 밀려오던 찰나였다.
세상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고기를 다듬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하늘은 자비 없는 심판을 내리기로 작정한 듯했다. 예고 없이 방향을 튼 돌풍이 그가 서 있던 협곡을 덮쳤고, 시야를 가리는 하얀 눈보라의 장막이 사방을 가로막았다. 조금 전까지 넘어왔던 언덕도, 돌아가야 할 길도, 하늘의 별도 모두 삼켜버린 완벽한 고립이었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동료들이 옳았음을. 자신은 이성적인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 속에서 온 세상은 단 하나의 감각, 즉 ‘고통’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두꺼운 회색 구름은 별과 달의 위치를 알려주던 밤의 지도를 지워버렸고, 땅 위에는 얕은 언덕과 바위의 윤곽마저 삼켜버리는 순백의 사막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고요한 사막이 아니었다. 수천 개의 칼날을 품고 울부짖는, 살아 움직이는 혼돈이었다.
얼어붙은 발가락의 감각이 사라진 지는 오래였다. 이제 발은 그냥 무겁게 끌려다니는 돌덩이일 뿐이었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은 겹겹이 껴입은 순록 가죽옷의 작은 틈새마저 집요하게 파고들어, 마른 살갗을 그대로 도려내는 듯한 통증을 일으켰다. 옆구리에 생긴 깊은 상처는 걸음을 뗄 때마다 욱신거리며 검붉은 피를 배어내고 있었다. 흘러나온 피는 젖은 옷과 함께 엉겨 붙어 상처 부위를 차가운 얼음 조각처럼 찔러댔지만, 그 생경한 통증만이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눈보라 속의 유령처럼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이제 끝이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들이마시는 공기는 폐부를 얼음 조각으로 할퀴는 듯 시렸다. 몸의 모든 세포가 비명을 지르며 활동을 멈추라고, 이 무의미한 저항을 끝내라고 아우성쳤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차갑고 깨끗한 얼음 지옥에 몸을 눕히고 싶은 강렬한 유혹이 온몸을 덮쳐왔다. 그것은 끔찍한 고통의 끝이자, 모든 책임과 의무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얼마나 달콤한가. 그냥 눈을 감고 잠들면 되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다시금 ‘왜?’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던졌던, 경이로움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낭만적인 질문이 아니었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처절하며, 피 냄새가 나는 물음이었다.
‘왜 이 고통을 견뎌야만 하는가? 왜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것을 끝내면 안 되는가?’
만약 그의 뇌가 순수한 ‘설명’의 기계였다면, 그가 2절에서 별들의 움직임을 분석하려 했던 그 차가운 이성의 부분만 작동했다면, 대답은 잔인할 정도로 명확했을 것이다. ‘살아서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몸은 망가졌고, 이 눈보라 속에서 구조될 희망은 없다. 고통을 줄이는 유일한 길은 모든 저항을 멈추는 것뿐이다.’ 그렇게 차가운 설명의 세계는 그에게 조용히, ‘품위 있는 죽음’을 권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 들려온 대답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늘의 별처럼 멀리 있지도, 빙하의 얼음처럼 차갑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의 찢어진 살갗 아래, 욱신거리는 상처 속에, 얼어붙기 직전의 심장 바로 옆에, 그의 존재 가장 깊숙한 곳, 바로 감응의 기억 속에 있었다.
그가 무거운 눈꺼풀을 감자, 시야를 가득 채웠던 눈보라의 흰 장막이 스크린처럼 변하며 그 너머로 다른 얼굴들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모닥불 앞에서 애타게 그를 기다리고 있을 늙은 어머니였다. 백내장으로 희미해진 눈으로 동굴 밖 눈보라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그녀의 모습. 시각뿐만이 아니었다. 냄새가 났다. 어머니의 품에서 나던, 오래된 나무껍질과 마른풀이 섞인 듯한 쿰쿰하고 따뜻한 냄새. 그리고 어릴 적 열병을 앓던 내 이마를 짚어주던 거친 손바닥의 서늘한 감촉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가슴을 후벼 파듯 떠오른 것은 어제 아침에 두고 온 아이의 얼굴이었다. 녀석은 보채지도, 울지도 않았다. 아직 젖도 떼지 못한 핏덩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본능적으로 어미의 마른 품을 파고드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며칠을 굶은 어미의 빈 젖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헛되이 젖을 빨다 지쳐, 힘없이 늘어진 아이의 그 고요함이 비명보다 더 끔찍하게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내가 이 고기를 가져가지 못하면, 어미는 젖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면 아이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갑자기 묵직한 책임감이 그를 짓눌렀다. 등 뒤에 묶어둔 들소 다리는 단순한 고깃덩어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의 입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생명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들소 고기를 기다리고 있을 동굴 안의 다른 사람들. 그들의 굶주린 눈빛과 조용히 가라앉은 동굴의 분위기. 그가 가져가야 할 것은 이 작은 공동체의 다음 며칠, 어쩌면 다음 몇 주의 생명이었다.
그 순간, 그는 절감했다. 자신의 고통이 단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추위가 자신만의 추위가 아님을. 그의 육신은 저 멀리 동굴에 있는 그들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어떤 밧줄보다도 질긴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의 허기는 곧 그의 허기이며, 어머니의 추위는 곧 그의 추위였다. 부족의 생존이 자신의 이 너덜너덜해진 육체에 달려 있다는 감각. 이 감각은 ‘책임’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발명되기 수만 년 전의, 가장 원초적이고 육체적인 형태의 책임감이었다.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 생생하고도 저릿한 ‘느낌’. 이것이 바로 ‘감응’이었다.
이것이 모든 윤리의 시작이자, 모든 의미의 원천이었다. 그의 고통스러운 사냥은 가족과 부족의 안녕이라는 ‘의미’와 깊이 공명하며 비로소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왜 사냥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라는 건조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가, 그들의 기다림이, 지금 나의 이 얼어붙은 몸을 이겨내게 한다”는, 온몸으로 체감하는 뜨거운 육신의 대답이었다. 이것이 바로 ‘정당화(Justification)’의 순간이었다.
‘설명’이 “나는 왜 죽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들을 차갑게 나열한다면, ‘정당화’는 “나는 왜 죽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뜨거운 이유를 내면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다. 설명이 뇌의 언어라면, 정당화는 심장의 언어다.
이 깨달음의 순간, 그의 몸에서 마지막 남은 에너지가, 마치 꺼져가는 장작불에 누군가 기름을 부은 듯이 활활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는 짐승 같은 신음을 내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찢어진 옆구리가 불에 타는 듯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미끄러져 내리려던 들소 다리를 어깨에 더 단단히 고쳐 멨다.
그는 더 이상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은 외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돌아가야 할 ‘집’이 있는 존재,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존재, 자신의 죽음이 자신만의 것이 아닌 존재였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이제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약속이었고, 사랑이었으며, 절망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처절한 행군이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훗날 이것을 ‘유전자의 이기적 전략’이나 ‘집단 선택의 필연적 결과’라고 깔끔하게 ‘설명’할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유대’나 ‘원시 공동체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분석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차갑고 정교한 분석도, 이 순간 사냥꾼의 얼어붙은 심장을 다시 뛰게 했던 그 뜨거운 울림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 그것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살아있는 육신으로만 겪어낼 수 있는 경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설명’의 세계는 우리에게 지도를 주지만, ‘정당화’의 세계는 우리에게 길을 떠나야 할 이유를 준다. 하늘의 별을 관찰하며 패턴을 읽어내는 능력은 우리를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눈보라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통을 견뎌내는 능력이야말로 우리를 비로소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 능력은 뇌의 차가운 계산 능력이 아닌, 심장의 뜨거운 공명 능력에서 나온다.
이것이 바로 ‘감응’이 가진 힘이다. 그것은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때로는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기까지 하다. 차가운 계산대로라면 그는 진작에 포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비합리성 속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심오한 비밀이 숨어 있다. 우리는 이익을 계산하기 때문에 서로를 돕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서로의 희망을 ‘느끼기’ 때문에 돕는다.
이 처절한 ‘살갗의 대답’은 그러나 한 개인의 고독한 내면의 승리로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또 다른 위대한 변환을 겪게 된다. 한 개인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어떻게 공동체 전체를 하나로 묶고 시간을 초월하는 불멸의 ‘신화’가 되는가? 그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마침내 귀환한 사냥꾼의 지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