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주기 힘든 이야기

본인(혹은 그의 자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야기

by 책하마

3월 첫 주. 특수학급 담임을 하다 보니 요즘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많이 한다.

학생들과 수업하는 시간은 한 교시 당 50분,

학부모님들과 상담하는 시간은 한 번 상담에 2-30분.

그런데 학생들과 수업 한교시 하는 것보다 학부모님과 상담 한 번 하는 게 몇 배는 진이 빠진다.


그렇다고 우리 학부모님들이 기가 센 분들이거나 소위 말하는 진상 학부모님들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밝고, 늘 나를 격려해 주시고 믿어주시는 좋은 분들이다. 그래서 상담은 늘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곤 한다.


그런데 왜이리 학부모 상담 한 번에 기가 쏙 빨릴까.

의외로 답을 금방 찾았다.

학부모상담은, 부모님들이 하는 내 자녀의 이야기만을 온전히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부족한 점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늘 그 안에는 은근한 자녀의 자랑이 포함돼 있다.

하긴..당연하다. 내 자녀는 결국 내 눈에 이쁘고, 사랑스러우니까. 남에게 이쁜 모습을 어필하고 싶지 않을까. 특히 내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님께는.


학부모상담에서는 당연히 학생의 이야기만을 온전히 주제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듣는 교사는 에너지 소모가 많다. 그런데 이건 교사가 여가 시간에 수다를 떠는 게 아니라 업무의 한 부분이므로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진상 말고 상식선의 학부모인 경우에 한하여).


하지만... 학부모 상담이 아니라, 그냥 여가시간에 만난 지인과의 대화가 이렇다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몇 년 전부터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된 A가 생각났다.


A는 나의 전 직장 동료였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을 겪었다. 서로의 자녀가 동갑이었고 육아휴직 기간에 자주 만났다. 아이들과 함께 가기 좋은 쇼핑몰, 키즈카페 등을 함께 다니며 많은 대화를 했다.


처음에는 즐거웠다. 비슷한 또래 엄마들이 모여 육아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듯 우리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반복될수록 A와 만나는 것이 버거워졌다. 처음에는 설레던 만남이 이제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A는 본인의, 본인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곤 했다.

본인이 이유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너무 제멋대로 만들었다고 푸념하다가 어느새 좋은 재료가 모두 들어갔으며 자기 아이가 얼마나 잘 먹는지 본인이 이유식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아보고 공부한 열정 엄마인지 한참 썰을 풀었다.

본인 자녀가 눈이 작다고 불평이다가 요즘에는 너무 이목구비가 큰 것보다는 김고은처럼 요목조목 작고 조화가 잘 된 이목구비의 얼굴이 대세라며(이목구비가 큰 편인 나와 내 딸 앞에서) 신이 나서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본인이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 수업시수와 업무가 너무 많았다고 불평하다가, 그 와중에도 자기가 수업을 잘 하고 업무를 꼼꼼하게 해서 교감선생님이 나중에 전화까지 주셨다고 길게길게 투정을 부렸다.

본인 자녀가 집을 너무 어지럽혀서 골치가 아프다고 하다가, 개월수에 비해 걸음도 빠르고 호기심도 많고 말도 빠르고 총명해서 문화센터에 가도 제일 활발하고 눈에 띄어서 부담스럽다며 엄살 아닌 엄살을 피웠다.

시어머니가 본인을 존중하지 않아서 속상하다고 하다가, 남편이 대기업에서 고연봉으로 외벌이를 하고 시어머니는 재산이 많아서 갑질을 한다며 짜증난다고 웃으면서 오래오래 이야기했다.


나도 처음에는 웃으며 듣다가, 어느새 점점 불편해졌다.

이야기가 장황하면 장황해질수록,

우리 딸은 입이 짧아 이유식이든 분유든 많이 못 먹는다는 걸 알면서, 걸음도 말도 느린 걸 알면서, 나는 외벌이로는 빠듯해서 기를 쓰고 맞벌이하는 것을 알면서, 은근히 그런 걸 콕 집어 비교하듯 이야기하는 느낌까지 들어서 기분이 좋질 않았다. 만날 때마다 기가 쫙 빨려 집에 왔다.


'아기가 내성적일수록 엄마 말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줘라'

라는 근거 없는 육아 조언을 그땐 왜 믿었는지. 그것 때문에 힘이 들어도 A를 꾸역꾸역 만났는데,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됐고 그것을 계기로 A와의 잦은 만남은 뚝 끊겼다.

A와의 만남이 끊기자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는 내 자신이 당혹스러우면서 A에게 미안한 감정마저 들었다.


나와 내 자녀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는,

나의 직계가족(남편, 우리 부모님. 내 자녀의 경우에는 시부모님까지 추가)이 아닌 이상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겠구나.. 30대 중반 이후에야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런 이야기는 길고 자세할수록, 일방적일수록 듣는 사람의 기를 쏙 빼 놓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나나 내 자녀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실제 오프라인 공간에서 그 욕구를 채우는 건 다소 민폐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게 아닐까. 네이버 블로그에, 카카오 브런치스토리에.

글보다 그래도 말하는게 좋은 사람들은... 유튜브 채널에.


나는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더 좋으므로

이렇게 브런치 스토리를 적극 활용해야겠다. 앞으로도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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