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식구가 사는 24평, 매일 따라해야 하는 미니멀라이프
33평에 살면서 '세식구에게 불필요하게 큰 공간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24평에 이사해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입주해보니 생각보다 더 좁았다.
33평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최근에 지어진 반면, 이사간 집은 구축 아파트이기에 공간이 그만큼 잘 빠지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리라....33평에 있던 짐들을 모두 정리할 공간이 부족했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이전처럼 물건을 테트리스 하듯 켜켜히 쌓게 됐고.
여백을 많이 두고 배치하던 가구들은 따닥따닥 붙여 놓게 됐다.
집은 예전처럼 어수선해보였고, 내가 생각했던 그런 깔끔한 집이 아니라는 생각에 좌절했다.
아.. 너무 섣불리 결정한 것인가, 24평으로 충분하다고 큰소리쳤는데.
이대로 후회만 하기에는 쉽게 번복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부동산 중개비, 이사비용 등 돈도 많이 들었고 이사를 준비하며 들인 시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 33평에서 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비워야 한다.'
그 길로 50리터 종량제봉투 5장, 폐기물스티커 10장을 샀다.
이젠 비움의 강도를 높여 3개월 이상 쓰지 않은 물건은 모두 처분하기로 했다.
몇개월 후 필요해지면, 그땐 빌리거나 대체할 물건을 찾기로 다짐했다.
가장 먼저 정리한 곳은 옷 방이었다.
33평에 살 때는 옷방이 따로 없었다. 붙박이장이 안방과 아이방에 모두 있었기 때문에 안방에는 부부의 옷, 아이방에는 아이 옷을 따로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24평은 안방도, 아이방도 정말 좁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방은 그보다 훨씬 좁았다. 그래서 안방와 아이방을 최대한 넓게 쓰고, 가장 작은 나머지 방도 활용하기 위해서 가장 작은 방은 옷방으로 만들고 행거를 여러 개 설치했다.
커다란 붙박이장에 있을 땐 여유있게 걸던 옷들이 행거에 모두 모이자 빽빽하게 자리잡았다. 자칫하면 다른 옷에 밀려 떨어질 것 같이 위태로웠다. 그래서 그 옷 중에서도 1/3을 또 정리하거나 팔았다. 특히 나의 옷을 정리할땐 곤도마리에님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33평에서도 많이 정리했다고 생각했던 옷들도 그 원칙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니 정리할 것이 꽤 보였다. 조금이라도 싫증이 나거나 선뜻 잘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은 다시 비웠다. 아이의 옷들 중에서도 작아지거나 변색이 된 옷들을 정리했다. 남편은 조금 낡거나 유행이 지난 옷도 외출할 땐 입지도 않으면서 '집에서 편하게 걸치지 뭐'하고 가지고 있던 옷이 많았다. 그런 것들은 모두 정리했다. 33평 붙박이장에서 공간이 여유로울 때는 절대 옷을 버리지 않겠다던 남편도 이제 강제로 비움을 실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진짜로 필요한 옷만 남긴 옷 방이 됐다.
행거 5세트를 설치했다. 각 1세트씩 남편 옷, 내 옷, 아이 옷. 1세트는 밑부분에는 서랍을 달고 속옷이나 양말 등을 넣고, 윗부분에는 남편과 나의 운동복/실내복을 걸었다. 그리고 나머지 1세트는 맨 뒤에 가려져 있는데, 가방들과 아주 두꺼운 겨울 외투를 걸어두었다. 지인들이 우리 집에 놀러와 옷방을 보면, 특히 내 옷이 이렇게 적냐고 놀라워한다. 그리고 "평소에 옷을 예쁘게 잘 입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옷 가짓수는 적네?"라는 말을 많이 한다. 퍼스널컬러를 고려하고, 코디했을 때 내 몸에 핏도 색상도 찰떡인 옷들만 남겨서 그런 것 같다. 옷을 많이 자주 사지 않아도, 진짜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옷들만 가지고 소중하게 관리하며 약간씩 다르게만 코디해도 '옷을 잘 입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번 확신하게 됐다.
옷방 다음으로 정리가 시급한 곳은 부엌이였다.
33평 부엌은 수납장도 정말 많았고, 조리대도 넓은 데다가 아일랜드식탁까지 갖춰져 있었다. 그곳에서는 정리 후 여유공간이 넘쳤으나 구축 24평 아파트의 주방은 수납장 자체가 매우 작았다.
정말 매일 쓰는 조리도구와 식기들만 놓아두어야 했다.
많이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공간이 더 줄어드니 비울 것들이 보였다. 여유갯수만큼 더 있던 그릇, 유리용기, 플라스틱용기들을 전부 나눔했다. 조리도구와 수저들도 최소 수량만 남겨서 모두 한 서랍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비웠다.
주방 수납장에 최소수량만 수납하고 모두 비웠다. 그러자 주방이 조금 깔끔해졌다. 최소수량만 남기고 4개월된 현재, 이 때 비워서 후회하거나 다시 산 물건은 없다. 물건이 없는 대로 금방 적응해 내가 가진 도구들을 활용해 생활할 수 있었다.
주방이 좁아진 것이 처음엔 아쉬웠으나, 오히려 동선이 짧아져 간편해졌다. 나처럼 퇴근 이후 정신 없이 식사를 차리고 정리해야 하는 워킹맘에게는 넓고 쾌적해 보기 좋은 주방보다는 훨씬 실용적이다. 주방 청소도 매일 한다. 주방 청소에 5분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냉장고가 차지하는 공간이 꽤 컸다. 33평 주방에서는 그렇게 커 보이지 않던 냉장고였는데 24평 주방에서는 도드라져보였다. 냉장고 옆 부분이 차지하는 공간을 활용할 방안을 생각해 냈다.
냉장고 옆부분에 자석 화이트보드 시트지와 보드마카 수납칸을 부착했더니 아주 근사한 칠판이 됐다. 덕분에 아이가 유치원 때 샀던 작은 유아 칠판을 비울 수 있었다. 그 유아칠판보다 훨씬 커다랗고 깔끔한 칠판이 생기자 아이도 정말 좋아했다. 지금 우리의 냉장고칠판은, 아이의 요일별 과제를 써놓기도 하고,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설명하며 선생님 놀이를 할 때 쓰기도 한다. 가끔 아이보다 저녁 늦게 들어와야 하는 날에는 '엄마가 오늘 ~에 가느라 저녁 7시에 올게, 사랑해'라는 편지를 써 놓기도 한다. 아이도 등교할 때 '엄마 나 오늘은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고 5시에 들어올게, 사랑해'라고 귀여운 편지를 써 놓는다. 정말 훌륭한 냉장고 칠판이다.
안방의 모습도 33평일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33평에서는 TV와 쇼파만 넣는 홈씨어터방을 만들었었는데 24평에는 방에 쇼파와 TV를 함께 넣을 수 없었다. 아쉽게도 홈씨어터방은 포기했지만, 안방에 생긴 TV덕분에 자기 전 심야영화 보듯 TV를 볼 수 있다. 운동도 TV화면으로 유튜브 운동영상을 보기 때문에 안방에 운동 도구들과 매트가 있다.
욕실도 화장대의 기능까지 추가하여 간소하게 꾸몄다.
욕실이 하나인 데다가 넓지 않고, 욕실 수납장 안에 거의 모든 물건을 넣다보니 밖에 나와 있는 것이 없다. 욕조가 없어서 아쉽지만, 그만큼 욕실청소도 금방 할 수 있어 깔끔하고 실용적이다. 요즈음은 욕실청소를 마음 먹고 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한다.
33평때와 비슷하게 TV없는 거실로 꾸몄으나 식탁과 쇼파를 함께 놓았다.
33평에서는 홈시어터 방에 쇼파를 놓았는데, 이제 쇼파는 거실에 뒀다. 대신 식탁에 세트로 있던 의자 두 개는 안방에 작은 탁자와 함께 뒀다.
구축인 이 곳은 확장형인 33평아파트와 다르게 베란다가 있어서 베란다에 화분을 많이 놓았다.
거실이 넓고 베란다가 없던 33평에서는 오히려 화분을 키우기가 불편했다. 물을 줄 때마다 욕실에나 세탁실에 옮겨 물을 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4평으로 오자 거실이 좁아진 대신 베란다가 있어서, 커다란 나무화분도 키울 수 있다. 33평 아파트보다 창밖 전망이 좋지 않다. 33평에서는 푸른 산이 창을 꽉 채우도록 잘 보였는데 이곳은 다른 동 건물들이 보였다. 그래서 전망은 포기하고, 전망 대신 초록 잎이 무성한 나무화분을 베란다에 두었다. 베란다라 화분을 옮기지 않고 바로 물을 줘도 되니 키우기도 쉽다. 화분은 친정부모님의 집들이 선물이다. 화분을 선물받을 때마다 33평 아파트에서는 골치가 아팠는데, 이제 화분을 선물받으면 반갑다. 베란다에 놓기만 하면 그 자체로 훌륭한 자연 전망이 되기 때문이다.
33평 신축 아파트에서 24평으로 이사오면서, 쾌적함과 근사한 전망, 여유 있는 수납공간은 포기했다.
대신 우리에게 월세 수익이 생기고, 좁아진 평수만큼 매 달 관리비를 절감한다.
어느 곳이든 동선이 짧아 편리하다.
청소를 더 빨리 자주 할 수 있게 되어 가사도우미를 쓰지 않아도 깔끔하다. 그래서 가사도우미 비용도 아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물건은 절대 둘 수 없기에 끊임없이 미니멀라이프를 따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인테리어와 정리에 전혀 소질이 없는, 정신 없는 워킹맘이지만
매일 어설프게라도 미니멀라이프를 따라하며 산다.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