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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아버지와 F어머니, F에서 T가 된 딸

우리 친정 부모님과 나의 이야기

by 책하마

"글쎄 **아줌마 있지. 그 아줌마가 결국 남편이랑 이혼하기로 결심했대."


"왜?"


"남편이 요즘 너무 지쳐있길래 며칠 자유롭게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나봐. 그 아줌마 딴에는 배려한거지. 여행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이 얼굴이 한결 편해졌길래 아줌만 자기한테 '고맙다'라고 할 줄 알았대.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자기한테 인사는커녕 집안만 휘 둘러보더니 주방으로 곧장 가서 설거지부터 하더래 글쎄. 한 마디 말도 없이."


"..아저씨는 본인 여행간 사이 밀린 집안일이 미안해서 나름 신경쓴 것 같은데? 그 아저씨 원래 과묵하잖아.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거 같은데."


"그래도 그렇지 얘 어떻게 따뜻한 말 한마디 없어, 고맙다는 말도 한 마디 없이 그러니. 서운할 만 하지. 그런게 한 두번도 아니라잖니. 집안일따위 안 해줘도 말만 부드럽게 하면 좀 좋아. 미안하다, 고맙다, 속상했겠다, 이런 마음 알아주는 말 하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돈 드는것도 아니잖아. 그러고 보면 니네 아빠도 똑같다 얘. 니네 아빤 내가 무슨 말하면 핀잔 주고 퉁명스럽게 대꾸해. 저녁에 밥 차려주고 나들이만 데려가주면 뭐하니? 말 한마디 한마디가 퉁퉁 어휴.. 방금 여기 오는데도 무슨일이 있었냐하면 말야..."


그렇게 또 시작되는 엄마의 서운함 릴레이.

한 때 엄마처럼 F(감정형 성향)였던 착한 딸인 나는 일단 엄마의 릴레이 한탄과 그에 파생되는 자기연민의 스토리를 듣(는 척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마음속으로는 딴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난.. 말 이쁘게 하는것보다 실제로 일손을 덜어주고,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주는 아빠가 참 현명하고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자기 남편은 물론 딸, 손녀딸까지 함께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카페에서 서운함이 폭발해버렸고, 자주 보이는 그 모습이 못마땅한 아빠는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슬그머니 우리 딸을 데리고 일어나 카페 내부 화분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보이는 친정부모님의 투닥거림은 늘 그런 패턴이다.


유년기 '스티븐존슨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내내 안과 통원치료를 받던 첫째 딸,

자폐성장애인으로 태어나 몸은 자라도 2살 아기같은 행동만 하던 둘째 아들.

어느 가정보다 빡센 육아 난이도를 함께 감당하며 우리 부모님은 서로 많이 의지했다.


'너희 자랄 땐 부부싸움을 할 겨를도 없었다. 서로가 너무 절실한 상황이었어.'


엄마는 힘들 때 여과없이 본인의 감정을 말로, 눈물로 쏟아내셨던 것에 비해, 아빠는 그저 묵묵히 엄마와 우리 남매의 곁에 있곤 했다.

요즘 속상하지, 힘들었겠다, 힘내자. 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대신

더 일찍 퇴근해 치킨을 사오시고, 주말에 드라이브를 제안하시곤 했다. 아빠는 수고로운 행동들보다 따뜻하게 툭 던질 수 있는 말을 하는 게 더 어려운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아이였다.

눈이 아플 때, 공부가 안 될 때, 생각보다 성적이 잘 안 나올 때, 친구관계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학교에서는 억지로 꾹꾹 참았다가 집에 와서 엄마를 보자마자 폭포처럼 절망하며 울곤 했다. 엄마는 이런 나를 늘 받아주었다. 아니 받아주다못해 본인이 더 슬퍼하고 더 절망했다. 그리고 한없이 공감하고 위로해주셨다. 정말 철없이 어릴 땐 나처럼 슬퍼하는 엄마를 보고, 위로의 말을 들으며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징징거리며 자기 연민에 빠졌다. 하지만 조금씩 철이 들어갈수록 엄마한테 미안해졌다. 그리고.. 감정적인 공감과 위로만으로는 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에 비해 아빠는, 참 과묵했다.


각막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우는 나를 안과에 데려다주는 길에

"울면 각막에 더 안 좋아. 그냥 좀 차에서 자다가 의사선생님을 만나는게 어떠니?"


시험공부를 하는데 양도 많고 잘 외워지지도 않고 너무 어렵다고 징징거려도

"어려워도 계속 어렵다는 생각에 빠져있기보다는 그럴 시간에 그냥 외우지 그래?"


친구들이 날 피하는 것 같고 안좋아하는 것 같아서 너무 걱정된다는 말에도

"친구들의 마음은 니가 직접 알 수도 없는데 그런 지 아닌지 뭐하러 걱정해. 그냥 직접 친구한테 물어봐. 만약 너 피하는게 맞다고 하면 다른 친구를 찾아봐"


심지어 수능시험이 끝나고 시험을 망친 것 같다며 엉엉 우는 나에게도

"일단 채점부터 해보고 점수에 맞게 가야지. 어느 대학교에 가든 거기서 열심히 해. 그게 니 실력이니까 재수해도 소용 없다. 그러니 재수는 하지 마라."


.... 엄마에게서 얻을 수 있는 공감과 위로는 1도 없었다.

아빠와의 대화는 문제 직면과 해결이었다.


지방 국립대학교에 진학한 나는 4년 내내 기숙사에서 살았다. 덕분에 스무살이 되자 마자 엄마랑도, 아빠랑도 떨어져 지내게 됐다.

부모님의 극과 극인 성향을 반반 닮아 나에게는 T의 성향도, F의 성향도 내재돼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정체성을 형성하던 사춘기 시기 엄마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하다 보니 한동안은 나도 엄마 못지 않은 F성향이었다. 좋은 일이 생기면 방방 뛰며 기뻐했지만 안 좋은 일이라면 바닥을 모르고 침잠했다. 안 좋은 일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비관, 절망, 슬픔에 몰두하다 보면 정말 크게 느껴졌다. 눈에 염증이 나서 눈이 부셔도 그냥 평소처럼 안과 몇 번 다니면 호전될 일인데 '나는 왜 남들은 안해도 되는 염증 치료를 수시로 해야 할까, 이러다가 임용시험이나 결혼식 날 눈 상태가 안좋아 그날을 망치면 어쩌나, 노안이 남들보다 더 빨리 와서 힘이 들면 어쩌나, 나만 왜 이렇게 힘들까' 슬픔을 키워 속상해하며 혼자 울었다. 시험을 잘 못 봐도, 과제 발표를 망쳐도 그랬다. 좀 더 지나 교사가 되어 학생 지도나 학교 업무에 어려움을 겪어도 그랬다. 결혼 준비를 하다가도, 결혼 후 신혼에 남편과 가볍게 투닥거려도,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도 그냥 시간이 지나거나 조금 수고하면 해결될 일인데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나만 왜 이럴까, 내 마음은 이렇게 힘든데 주변에 말할 사람도 없네...' 이미 일어난 일에 쓸 데 없이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나쁜 감정에 매몰되기 일쑤였다. 이십년 가까이 오롯이 혼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깨달았다. 이런 게 나한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힘든 일이 생기면 감정을 오롯이 느끼기보다 그냥 차분히 견디거나, 견뎌서 되는 일이 아니면 얼른 해결해야 했다.

점점 징징거림을 멈추고, 괴로워도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고자 했다.

특히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니 내 감정에 매몰돼 속상해 할 여유가 없었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아기 돌보느라 얼마나 힘드니'라는 마음 위로보다는 새벽수유에 잠 설친 내가 눈을 붙일 수 있도록 나 대신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고 놀아 줄 남편의 '행동'이 절실했다. 흔히들 육아의 고충에 공감해주지 않는 남편이 밉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고충을 공감해주지 않아도 내가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읽고 올 수 있도록 아이랑 둘이 외출해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게다가 남편도 우리 친정아빠 못지 않게 '문제 해결파'였다. 감정적인 공감에는 매우 서툴고 과묵했다. 어린 시절부터 비슷한 아빠를 보고, 비슷한 남편과 살다 보니 내 안의 T성향이 더 많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T성향의 엄마가 됐다. 방 정리해라, 숙제해라, 씻어라와 같은 지시에 찡찡대는 딸아이의 푸념은 무시하거나 철벽을 쳐 버린다. 그러면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하는데, "꼭 해야 할 일은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그냥 하는 거야"라고 말해버린다. 가끔 "엄마 나 속상한 일이 있었어"라고 하면 한없이 공감해주기보다는 그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애쓰며 긍정적인 말로 유도한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배우는 거야."따위의 자기계발서 클리셰 같은 뻔한 말로..


하지만 어린 시절 엄마의 한없는 공감이 날 나약하게만 만든 건 아니었다. 아빠의 직면과 조언이 날 점점 단단하게 만들었다면 엄마의 공감은 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난 절세미인이 아님에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편이다. 이는 특수교사인 나에게 큰 강점이다. 학기 초 상담을 하면 "선생님을 만나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편안함에서 은근히 신뢰가 생기고 이게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잘 유지되는 편이다.


부모님의 정 반대 성향. 몇 년 MBTI가 유행하면서 이걸 극 F성향과 극 T성향으로 부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부모님이 서로 반대였지만 공통점은 서로를, 그리고 우리 남매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것. 그 덕에 우리 남매는 그럭저럭 잘 자랐다. 우리 부부도 과하지 않은 공감과 동시에 너무 뼈아프지 않은 직면을 하며 그럭저럭 딸아이 양육을 잘 하면 좋겠다.




PS........ 얼마 전 내가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느라 딸아이가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과 한창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딸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딸아이는 수화기에 대고 아빠가 자신의 마음을 너무 몰라줘서 속상하다고 엉엉 울었다. 몇 마디 말로 조금 달래고 전화를 끊은 후 남편에게, 혹시 딸아이를 혼냈냐고 카톡을 했다. 남편에게 돌아온 카톡 답을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친구들이 박장대소하며 "야, 니남편이 그 유명한 T발C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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