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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아 놓고 후려치기?

생색내기용 선물은 그만했으면.

by 책하마

#1.

- 생일 축하해. 이거 요즘 인기 많은 케이크라는데, 한 번 먹어봐^^

(%%님이 선물을 보냈어요)하겐** 프리미엄 수제 아이스크림 케이크 리얼블랑...배송지를 입력하세요

'앗. 나는 케이크는 양도 많고 너무 달아서 잘 안 사먹는데 ㅠㅠ'

- 에고, 안챙겨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답장 멘트를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마음에도 없는 감사한 척을 너무 하면 다음 생일에 또 보내실 것 같아 패스. 그리고 아예 부담스럽다고 솔직히 말하면 마음상해하실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이렇게 적당히 심플하게 답장을 보내고, 배송지를 입력하고 며칠이 지나 그 일을 잊고 있었는데- 메시지 알림음 소리.

-하겐** 아이스크림케이크 배송중. 오늘 15시 도착 예정입니다. 냉동식품이니 빠른 보관 부탁드립니다.

헉. 나 수업만 마치고 집에 가도 17시가 넘는데.. 비싼 케이크 먹지도 못하고 다 녹이면 죄송해서 어떻게 해. 아.. 그리고 어찌저찌 보관을 잘 한다고 해도 언제 저걸 다 먹어..

무한 고민하다가 부랴부랴 인근에 계신 지인께 케이크 보관을 부탁해야 했다. 우여곡절 번거로움 끝에 받은 케이크는 그 가격과 수고에 비해 마음으로 그닥 좋은 대접을 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같은 날.

- 생일이라 니가 좋아할만한 화분 샀어. 와서 가져가.

- 아...네 감사합니다.. 시간 조정해서 가 볼게요....(나 화분 많아지는거 싫어서 안 주시면 좋겠는데..그리고 휴일이라고 왔다갔다가 쉬운 줄 아나, 나같은 워킹맘이. 여유시간 생기면 집에 조용이 쳐박혀있고 싶단 말야;;;;)

.... 그래서 난 받는 과정이 번거로울 것 같은 선물은 남에게 절대 하지 않는다.



#2.

- 이거 홈쇼핑 채널 보다가 산 로션이랑 쿠션 세트야. 주문할 때 네 것도 주문했어. 가져가~

- 아..;;; 응 잘 쓸게요.

작은 집으로 이사해 미니멀라이프를 즐기게 된 뒤로는 물건을 양껏 사서 쟁여놓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디워시나 로션, 치약과 칫솔, 수세미나 행주 등 묶음으로 사면 저렴한 물건들도 절대 묶음으로 사지 않는다. 필요할 때 낱개로 하나씩 구매해 그때그때 사용하는 편이다. 집 근처에 편의점이나 다이소에서 사면 낱개로 10분 이내에 살 수 있다. 물건을 양껏 사서 쟁여둔다고 할 때 '보관의 불편함'이 '바로바로 꺼내 쓰는 편안함'을 훨씬 능가하는 요즘이다. 화장품도 마찬가지.. 올리브영에 가도 1+1인 화장품은 절대 사지 않는다. 내가 쓰는 한 가지 제품을 딱 한개만 화장품 파우치에 가지고 있다. 작은 우리 집에 '여분 화장품을 보관할 공간'따위는 없다. 화장품 샘플도 남겨두지 않고 그때그때 다 써버린다. 식재료도 마찬가지. 쿠팡프레시로 소량 2-3일 먹을 만큼만 구매해 냉장고에 넣고 그야말로 '냉파'를 한다. 이런 나와 반대로 물건을 많이 사서 쟁여두기를 좋아하는 친정부모님은 내게 종종 반갑지 않은 선물을 한다. 화장품, 로션, 냉동 떡갈비 묶음, 밑반찬 한가득... 내가 이런 것으로 번거로움을 느끼기에 나는 절대 남들에게 '생필품'이나 '식재료'선물을 하지 않는다.


#3.

- 지나가는데 이거 귀걸이(혹은 목걸이,티셔츠 등 의류나 악세서리 등) 예뻐서 샀어. 너 줄게

- 아.....응 고마워;;;

나같은 경우 악세서리는 모든 헤메코에 어울리는 콩알만한 진주귀걸이만 유일하게 착용한다. 목도 손가락도 짧아 목걸이도 반지도 안 하고(하면 아무리 이쁜 디자인이어도 목이나 손가락이 더 짧아 보임), 거추장스러워 시계나 팔찌도 차지 않는다. 작은 집에 옷장 없이 행거 몇 개만 두고 초미니 드레스룸만 갖췄으므로 옷도 많이 사지 못한다. 만약 가디건이 필요해지면 며칠동안 인터넷 쇼핑몰과 후기를 뒤져 고민하다가 몇 가지를 추리고, 직접 그 매장에 방문해 입어 보고 한 개를 겨우 산다. 비싼 옷이 아니라 나한테 어울리면서도 관리하기 편한 옷으로 한 번에 딱 한 가지만 산다. 그리고 1년 이상 안 입은 옷은 미련 없이 비운다. 옷이나 악세서리는 정말 마음에 쏙 들고 나한테 어울리는 것을 내가 직접 골라 사야 후회가 없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이런 물건은 나도 절대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지 않는다.


#4.

- 쌤~ 요즘 기운없어보인다. 기운차리는데는 홍삼이 최고야!

- (헉 이 많은걸 언제 다 먹어. 홍삼맛 싫어하는데;;;)아.. 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나 먹을 수 있고 의료인의 처방도 필요 없는 건강기능식품이라지만, 요즘 정말 흔하게 많이 먹는 건강식품이라지만.. 이거 은근히 호불호가 갈린다. 모두에게 부작용이 없을 것 같은 홍삼이지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열이 더 많아져 괴롭다. 비타민c는 무조건 좋다고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님께서 증언하셨지만 나같은 경우는 잘못 먹으면 한참동안 구역질이 나서 괴롭다. 내가 필요에 의해 선택해서 챙겨먹는 것(나같은 경우는 유산균)이 아니라면 매일 챙겨 먹기도 정말 번거롭다. 결국 쌓아놓았다가 유통기한이 지나버려 버리는 경험, 많이들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건강기능식품도 선물하지 않는다.


이런 나도 어릴 때는 이런 선물들을 많이 해봤다. 하지만 그 때 선물을 하던 내 마음을 돌아보니 상대방보다는 나의 입장을 더 많이 고려했던 것 같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받는 사람에게 번거롭기만 한 선물이라면 그건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널 이만큼 생각하고 있어. 너는 내게 고마워해야 돼.'라는 생색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이 이걸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할지보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일지 고민했다.


이제 나는 선물해야 할 일이 생기면 카페나 마트 기프티콘같은 현금성 선물을 주로 활용한다. 호불호를 타지 않고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액수를 드려도 되는 가족이라면 진짜 현금을 드린다. 현금은 상대방이 '진짜로 유용한'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가 말했다. 현금성 선물은 너무 성의없는 것 아니냐고. 선물을 고를 때는 상대방이 뭘 좋아할까. 이 물건을 사면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지 않냐고. 그 고민까지도 선물에 정성으로 담기는 거라고. 정성이 없는 현금 선물은 너무 정 없어 보인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를 20년 길러 주신 우리 친정부모님조차 내 취향과 필요를 알지 못해서 그닥 반갑지 않은 선물을 종종 하시는데, 어느 누가 아무리 정성껏 고민한다고 해도 상대방의 취향과 필요를 온전히 알 수 있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넌 이게 필요하잖아. 넌 이걸 고마워해야 해. 내가 널 이만큼 생각했다는걸 알아둬'라고 무언가를 들이미는 것은 성의라기 보다는 부담 아닐까.


혹시 내가 지금의 우리 부모님정도로 나이가 들면 뭔가 감성이 더 풍부해져서 다시 선물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려나. 아무튼 지금은 받을 때도, 할 때도 현금 선물을 선호한다. 최근에 나의 생일이었는데, 마음만은 감사하지만 별로 받고 싶지 않은 선물들을 받고 참 번거로웠던 경험 때문인지, 방금도 홈쇼핑에서 내게 어울릴만한..그러나 사진상 색상만 봐도 내 스타일이 아닌 겨울 외투를 샀다며 가져가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친정엄마 때문인지^^ 새삼스럽게 선물에 대한 생각을 끄적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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