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경청이나 공감이 상대를 더 나약하게 만들 수 있다.
상담 기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아마 경청과 공감 아닐까.
누가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고.
큰 위안이 되긴 한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하루 동안에는. 아니, 짧으면 몇 시간 정도는.
그런데.. 딱 거기까지이다.
일시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는데 그게 오래 가진 않는다. 근본적으로 내 내면이 단단해 진 것이 아니므로. 그러면 다시 찾는다.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공감해 줄 그 누군가를.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수면제처럼. 알코올처럼, 담배처럼. 일시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만 결국 현실을 마주하면 다시 괴로워진다.
경청과 공감. 교육과 심리상담 분야에서 너무나 성스러워진 개념을 내가 수면제라고, 담배라고, 알코올이라고 심하게 폄하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긴 하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비슷했다.
2022년도에 우리 반이었던 B는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아이였다. 17살 여자아이답게 아이돌 덕질을 하고, 친구들이랑 놀 때 가장 즐거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B의 손목에 여러 개의 붉은 스크래치가 나기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위클래스에서, 상담 센터에서, 그리고 나랑도 상담을 자주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은 너무 불행해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해요."
"친구들이 나를 보고 키득거려요."
"인*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악플만 달려요"
이런 말을 반복했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자꾸만 언급해서 부모님과 상담해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게 하고, B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자 했다. 내가 수업 없는 시간마다 B를 불러 오늘은 좀 어떤지 물었고, 그 때마다 B는 나에게 많은 우울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는 최대한 공감해줘야겠다는 책임감으로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속상했겠다."하면서 진심으로 걱정했다. 섣부른 훈계나 조언을 하지 말라고,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는 각종 상담이론가들의 말을 믿었다. 한편으론 우울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답답하기도 했다. 'B가 물론 가정환경이 아주 넉넉하진 않아도 밥을 굶거나 생계를 걱정하진 않잖아.그보다 더 어려운 환경인 친구들도 있는데.', 'B야 친구들은 너한테 관심 없어.. 요즘 애들이 얼마나 바쁜데.. ' '인*그램을 안 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섣부른 훈계가 될까 봐. 좋은 상담가 역할을 하지 못할까봐 꾹꾹 참았다. 우울한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 나도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그런데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경청하려고 노력할수록 우울감도 푸념도 심해지고 길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1년 후 나는 학교를 옮기게 됐다. B와 자연스럽게 멀어지면서 뒤늦게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B야, 쓸데 없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별로 바쁘지 않아서야.
너가 왜 불행해? 니가 가정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밥 굶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 그러고 사는 사람들도 불행하다고 생각 안해. 오히려 생계를 해결하느라 바쁘게 살지.
학폭 수준으로 대놓고 괴롭히는거 아닌 이상(만약 학폭이면 신고하고) 친구들이 뭐라 하든 신경쓰지 말고.
인*그램같은거 다 지워버리고, 그거 보니까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정신과 상담은 꾸준히 받고 약도 잘 챙겨먹되, 그거에서 끝나지 말고.
공부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니가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하루 종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라. 그러면 쓸데없는 생각 안할 수 있어.'
.. 차라리 이런 식으로 B에게 냉정하게 말해줄 걸 그랬나.
그리고 올해 나는 J라는 아이의 담임이 됐다.
B와 비슷한 아이였다.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하지만 걱정이 많고 여린 아이.
하지만 B에게와는 다르게 J에게는 내가 다르게 말하고 있다.
"선생님, 학교는 너무 시끄러워서 힘이 들어요. 떠드는 애들 너무싫고 그래서 학교에 오고 싶지 않아요."
-> "그래, 학교가 시끄러운 건 맞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를 가든, 회사를 가든. 거기도 시끄러워. 학교에서 시끄러운 것을 잘 견디고 적응하며 살아야 어른이 돼서도 잘 지내겠지? 너무 많이 시끄러워서 힘들 땐 잠시 복도에 나와 있거나, 귀마개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될거야. 그렇게 하면서 견뎌 보자. 그런 이유로 조퇴나 결석을 습관적으로 해서는 안 돼."
"선생님, 저는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어요. 저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나봐요."
-> "J야, 니가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아~행복해! 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어. 그건 드라마나 만화에만 나오는 거지. 보통은 별 생각 없이 그냥 산단다. 인*그램에 자기가 행복한 척 사진 올리는 사람들도 실제 어떤지 모르는거고. 지금 니가 몸이 엄청 아파 견딜 수 없니? 아니면 가난 때문에 밥을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릴 지경이니?"
...."아니요"
-> "그래. 그럼 넌 불행한 게 아니야. 너 정도면 행복한 편인거야. 생각보다 행복은 대단하지 않단다. 그리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 건 없어. 태어나야 되는 것도 없고. 그냥 우리 모두는 별 뜻 없이 태어난 거고, 태어난 김에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거야. 그러다보면 웃는 날도 가끔 있는 거고. 원래 그렇게 살아. 그리고 니가 뭐 얼마나 오래살았다고 불행과 행복을 논해? 그건 한 90세까지 열심히살아본 분들이나 감히 할 수 있는 말이야. 그런 생각도 말도 안 하면 좋겠다."
"친한 친구가 없어서 속상해요."
-> "J야, 너는 니가 먼저 말도 안 걸면서 무슨 친구를 사귀길 바라니? 먼저 말 못 걸 만큼 편치 않은 친구는 애초에 너랑 친구가 될 수 없는 아이니까 포기하고. 너처럼 얌전하고 순한 아이들 중에서 니가 먼저 용기를 내서 인사를 하거나, 하다못해 편지라도 써서 주는 건 어때? 아무 노력도 안하고 뭔가를 얻을 순 없어. 하나씩 해보고 이야기하렴."
.. 이런 식으로 J에게는, J의 이야기를 잘 듣지만 공감하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공감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말, 해결책을 제시하는 말들을 주로 한다. 이렇게 하면서 처음에는 걱정이 됐다. 아. 무작정 "그랬구나~" 할 때보다는 내가 좀 후련하다. 그런데 나 후련하자고 나한테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을 속상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어쩌지.
하지만 생각보다 J는 나의 '공감 1도 없는 충고'를 들으면서도 나랑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오히려 B가 나의 공감어린 대화를 듣고 감동해서 갔다가도 다시 우울해져서 돌아와 똑같은 고민을 말하는 것과 다르게, J는 똑같은 고민을 계속 말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의 반복된 충고를 들으며 씩 웃기도 하고, "네 해볼게요"라는 말도 가끔 했다. B와의 대화 끝에는 "그래도 다 말하고 나니 조금 편해졌어요"까지였는데, J와의 대화 끝에는 "앞으로 열심히 해볼게요"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시적인 도피가 아니라 당장 뼈아프더라도 조금이나마 성장하고자 하는 대견한 모습.
물론 경청과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게 다가 돼서는 안 된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극단적인 상황(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부모의 극심한 폭력과 학대 속에서 자라거나, 밥을 굷을 정도로 생계가 어려워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거나 등)에 놓였던 아이들라이면 경청과 공감받는 경험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요즘 아이들에게는 경청과 공감보다 중요한 것이 '직면'아닐까. 나의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고, 속상하다고 주저앉아만 있지 말고,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해 주는 것. 그런 힘을 주는 것이 진정한 상담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