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m에서 놀다
주차장에서 15분 걷는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가기 전날 전화를 했다. 남자분이 전화를 받으셨고 템플스테이 담당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지 스님이셨다.
"급하게 말하지 말고, 천천히 산길을 조심해서 오세요."
전화 통화만으로 나의 급한 성격이 들켰다.
그렇게 여동생, 여든 하나의 치매 엄마, 나, 셋이서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게 됐다.
그런데, 희방 2 주차장까지 도착하니 비포장도로에 경사가 심해 여동생이 도저히 못 가겠다고 했다. 결국 주차장에서 기다려 스님이 픽업해 주어 이동하게 됐다. 희방사는 스님이 두 분 계셨는데, 템플 담당 스님은 네팔 스님이셨다. 네팔에서 경찰 공무원을 하셨고, 한국에 온 지 14년 정도 됐다고 하셨다. 이동할 때 운전을 해 주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희방사는 부석사 근처에 희방사 명상관, 콩 박물관, 부석태 휴게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희방사 명상관에는 배우 정은표 아들 정지웅 닮은 자원봉사자가 있어서 안내를 도왔다. 일단 날씨도 덥고 해서 명상관에 들러 홍차를 마시고 스님과의 차담을 했다. 앞, 뒤 폴딩도어를 여니 맞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차담 후에 저녁 무렵 부석사에 도착했다. 부석사의 배롱나무가 예뻤고, 여전히 더웠다.
부석태 휴게소에서 저녁 공양을 했는데 반찬이 10가지가 넘고 맛있었다. 저녁 먹고 주지스님이 노모 때문에 명상관에서 머물라고 했으나 희방사가 처음이라 희방사에서 머물겠다고 했다. 명상관은 한옥 호텔처럼 냉장고, 전자레인지, 드라이기 등 시설이 좋다고 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에 희방사로 향했다. 경사가 심해서 여자들은 운전하기 힘들 것 같았다. 800m 희방사에 도착하니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왔다. 숙소는 경사가 심한 50m를 더 가야 했다. 주지 스님이 명상관에서 머물라고 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네팔 스님 차로 숙소까지 도착했다. 동생이 귀곡 산장 같다고 했다. 숙소 앞에 계곡 물소리가 들려 시원했으나 산 속이라 불빛에 각종 벌레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8시 넘어 숙소에 도착했고, 스님들이 이불과 베개, 매트 등을 챙겨 주셨다. 2층에 머무르는 세종에서 온 아이들의 변기가 막히자, 주지 스님이 뚫어뻥을 사 와 뚫어 주셨다. 자기 전에 옥수수도 하나씩 먹었다.
다음 날, 6시에 새벽 예불을 하고 명상도 했다.
아침 공양을 하기 위해 짐을 다 챙겨 내려왔다. 경사진 길을 다시 오르기는 무리였다. 공양 후에 주지 스님이 커피도 내려 먹으라고 하고, 복숭아도 깎아 먹으라며 한 박스를 주셨다. 황도는 향긋한 향이 나며 너무 맛있었다. 절에서 먹은 음식 중에 으뜸이었다.
10시에 신도 부회장이 주차된 희방 2 주자창에 데려다 주어 개인차로 소수서원으로 이동했다. 더웠지만 문화해설사가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 줘서 귀 기울였다.
소수서원 관람 후에 부석태 휴게소에서 점심 공양으로 콩국수를 먹고 템플스테이가 마무리 됐다.
더운 여름날 템플스테이 하루 밤은 더없이 좋았다.
희방사에 가면 아낌없이 내주는 주지 스님이 계시고 운전, 방 청소, 차담, 템플스테이 안내 등 이것저것 다하는 네팔 스님이 계시고 명상관 안내, 음식 서빙, 청소 등 이것저것 다하는 좋은 대학 나온 자원봉자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