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햇살이 따사로운 일요일 오후 운문사행 버스에 몸을 기대었다. 남부정류장에서 1시간 30분쯤 걸리는 시외버스에는 스님 한분과 친구, 나 달랑 세 명만이 남아 있다.
창 밖으로 운문댐이 보이는데 가뭄의 영향인지 물이 말라 있다. 댐인지 실개천인지 모르겠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농부를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 없는 노릇이다. 따가운 햇빛 아래 밀짚모자를 쓰고 모내기를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버스 안은 에어컨을 켜 놓았는데도 턱턱 숨이 막히고 기절할 정도로 덥다.
친구는 운문사행을 고집한다. 예전에 동화사에 놀러 갔다 어느 스님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모양이다. 그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오래된 묵은 감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회생활에서 남자들을 많이 접하고 남자들의 안 좋은 점을 많이 보게 된 친구는 문학이나 다기 등 여러모로 박식하고 신비감이 있는 스님한테 끌렸다. 자주 절을 찾고 암자를 오르내리며 돌아오는 길, 그녀에게는 마음의 상처만 안고 돌아온다. 속세의 사람이 아닌 것을 어찌 하겠는가? 한 사람을 좋아하고 한 사람을 잊어버리는 과정이 친구에게 익숙하지 않다. 묵은 감정의 찌꺼기를 오월의 하늘 아래 떠나보내기 위해 오늘도 절을 찾는다. 친구도 비구니들이 많은 운문사에서 머리를 깎고 싶었는지도...
우선 사리암부터 찾았다. 운문사 주위에 작은 암자들이 많다고 한다. 사리암도 그 중의 하나이다. 바람이 오후의 갈증을 풀어주듯 시원하게 분다. 산 속의 작은 암자거니 생각하고 갔는데 주차장에 많은 자가용과 관광버스가 서 있다. 사리암 입구부터 경사가 높다. 나무들 옆 계곡속엔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목청을 뽐낸다. 꽤 많은 사람들이 오고 내린다. 길은 돌계단길인데 폭이 넓지 않아 겨우 두서너 명이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이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바위와 나무 속에 가려진 절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 사람들은 어떻게 산 중턱에 암자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 바위에 나무에 둘러싸인 암자를 빨리 보고 싶다. 산정상 위로 해맑은 구름이 평화롭게 흘러간다.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하고 걸었는데 30분정도 시간이 걸린다. 산 속의 작은 암자 일 것이란 추측과 다르게 절 규모가 크고 건물도 깨끗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지 않을 걸 보니 최근에 건물을 새로 짓고 다듬은 것 같다.
사리굴은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의 쌀이 나오고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의 쌀이 나오고 열 사람이 사면 열 사람의 쌀이 나온다고 하는데, 사람이 욕심이 부려 구멍을 크게 파서 쌀이 아니라 물이 나왔다는 전설이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사람이 물욕(物慾) 앞에 눈이 어두어지는 것을 경계한 뜻일까? 안내판 뒤로 작약이 새색시의 수줍은 모습마냥 붉게 우리를 반긴다.
< 나반존자>상의 해맑은 모습 아래엔 시주로 놓고 간 사탕봉지와 과자 봉지, 찹쌀과 쌀 봉지가 눈에 띈다. 아버지와 사탕봉지를 내려놓는 어린 불자는 두 손 모아 정성껏 기도를 한다. 조그마하게 모은 두 손은 무엇을 간절히 빌고 있을까? 친구도 어린 불자처럼 무엇인가를 간절히 소망했을 것이다. 산 속의 더위를 식혀 주듯 바람 한 점이 <나반존자>상을 스쳐 지나간다. <나반존자>상은 바람의 손길에 간지러운 듯 천연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다.
짠 김치에 무 무침이 전부인 저녁 공양을 진수성찬인냥 배를 채우고 내려오는 하산길, 발걸음엔 힘이 들어가 있다.
운문사의 범종루에서는 저녁 예불을 알리는 북소리, 목고, 운판, 범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대웅보전 뜨락에는 햐얀 고무신이 가지런하다. ^^,慧,如,숫자 등의 고무신 위의 적힌 검은 글씨에 웃음이 절로 난다. 비구니승의 불경이 대웅보전 경내에 울려 퍼지고 목탁소리도 함께 한다. 대웅보전에 피워 놓은 향이 꽃내음보다 더 아름답게 가슴에 와 닿는다. 15분간의 예불이 끝나고 다른 거처로 이동하는 20대 초반의 앳된 비구니승에게서 모래 감추어 둔 쪽지가 보인다. 미처 불경을 다 외우지 못한 앳된 스님은 손바닥에 코팅한 하얀 종이를 부지런히 훔쳐보고 있다.
봄에 12말의 막걸리를 준다는 처진 소나무와 후박나무, 보리수 나무도 보인다.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비로전은 돈냄새, 사람냄새가 나지 않아 정이 간다. 비로전 뒤편으로 물이 흐른다. 자갈이 흔히 보이는 물 속에 나무 그림자가 비친다. 맑은 물 속에 때가 잔득 끼인 내 마음이 보일까 오래 서 있기가 불안하다. 친구는 오래도록 나무 그림자를 바라고 서 있다.
제법 찬바람이 부는 저녁 무렵, 벗나무는 단풍이 들어도 예뻐 가을에 와도 좋다는 친구 이야기 뒤로 해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오늘 하루 서로의 사연을 달리 한 채, 누구에게는 운문사를 찾는 것이 여유로움과 즐거움이겠지만 또 누구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는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