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살면서 이런 풍성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여름이라는 계절 때문일 것이다. 무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고 이마와 목 멀미에 땀이 줄줄 흐른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여름이 좋다. 여름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텃밭에서 자란 깻잎과 고추.깻잎전과 고추전을 부쳐 먹어도 된다.
보랏빛 가지. 전 중에선 가지전이 으뜸이다.
오이. 오이 털은 따가워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딸 때도 가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가지도 마찬가지다.
구석에 있어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대빵 오이와 가지를 땄다.
오이는 도마 길이보다 길었으며 안에 씨도 많다.
고춧가루와 소금, 매실액을 조금 넣은 오이무침은 더위를 날려 보내는 으뜸 반찬이다.
고추는 된장에다 푹푹 찍어먹어야 제격이다. 싱싱함이 고스란히 입안에 전달된다.
가지와 이오를 가지고 비빔국수를 만들어 봤다. 고추씨가 씹히고 마늘의 알싸한 맛이 씹혀서 더위를 잠시 잊게 해 준다.
깻잎을 넣어서 김밥을 만들어 보았다. 진한 깻잎 향이 좋다.
엄마는 재래시장에서 밥장사를 하셨다. 식당이 아니라 밥장사이다. 시장 상인들에게 점심을 파는 것이다. 점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가 한쪽 귀퉁이에서 리어카에 싣고 온 밥과 반찬을 담아서 좁은 시장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팔았다. 엄마는 모퉁이 옷가게 주인의 눈치를 봤다. 음식 냄새가 밴다고 장사를 못하게 민원을 넣기도 했다. 리어카를 몇 번 압수당해 경찰서를 방문하기도 했다. 리어카의 상실은 엄마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았다. 며칠 후에 리어카를 찾아온 엄마의 모습은 초췌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밥장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줄줄이 딸린 자식들 때문에 엄마는 생활력은 점점 강해졌다.
엄마는 오징어무침, 추어탕을 많이 팔았고 여름에는 콩국수였다. 팔십 그릇씩 팔았다. 콩은 국산콩을 사용했다. 콩을 불리고, 껍질을 벗겨냈다. 고소하라고 땅콩도 갈아 넣었다. 걸쭉한 콩 반죽에다 소금과 물을 타서 간 조절을 했다. 고명으로 오이채와 달걀 반 조각을 올렸다. 달걀 반 조각이 들어가지 않으면 왠지 서운하다. 달걀 반 조각으로 인해 사람들은 대접받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마무리로 허연 콩국물에 깨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름에 입맛 없을 때는 콩국수 한 그릇이면 그만이었다.
엄마가 아프고부터는 음식 만드는 일이 중단됐다. 칠십 대 중반까지 우리들을 거둬먹였으니 이젠 앉아서 밥상을 받을 만도 하다. 자식들은 엄마의 솜씨를 따라가지 못했다. 엄마가 배추 100포기로 김장을 담을 때도 옆에서 지켜만 봤다.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 엄마는 딸이 자신 같은 팔자는 되지 말라고, 힘이 들어도 나를 시키지 않았다. 그런 탓에 지금은 김치를 시장에서 사서 먹는다. 진미채, 우엉조림, 마늘종 조림도 사서 먹었다. 콩국물도 시장에서 사서 먹을 수 있다. 우뭇가사리가 들어간 콩국물을 들이켠다. 그런데 엄마가 해주던 그런 맛을 느끼지 못하겠다. 중국산 가루에다 물만 탄 것일까.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