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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09. 2021

본능에 충실하기

참을성 부족

당신은 참을성이 많은 편인가요? 아니면 참지 못하는 편인가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화가 나며 참지 못하며, 상사의 잔소리를 참지 못하는 편인가요? 엄마는 본능적인 부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참을성이 부족해졌다.

먹을 것 앞에서는 참을성이나 인내가 부족해진다. 엄마는 푹 삶은 옥수수를 좋아한다. 시장에서 삶은 옥수수를 두 자루를 사 왔다. 엄마 한 개, 나 한 개 사이좋게 나눠 먹을 계획이었다. 엄마는 옥수수알을 배어 문다. 

"달달하니 맛있다."

시장에 파는 건 설탕이나 사카린 같은 단 것을 많이 첨가해서인지 먹기가 수월하다. 엄마는 허겁지겁 먹어댄다. 볼이 미어터진다. 씹는 속도보다 베어 먹는 속도가 빠르다. 입안에 든 양이 많아서 씹지조차 힘들다.

"엄마, 누가 안 뺏어 먹으니깐 천천히 드세요."

엄마가 쥔 옥수수자루를 뺏어 들었다. 엄마는 내 손등을 찰싹 때린다.

"왜 내 것을 뺏어 가노? 이리 내놔라."

엄마는 뺏긴 옥수수자루 때문에 불안하다.

"입안에 있는 거 다 씹을 때까지 안 줄 거야. 빨리 씹어."

 엄마는 자신의 몫인 옥수수를 뺏긴 것이 못내 불안한 눈빛이다.

"정 못 씹겠으면 물과 함께 넘겨."

"알았다."

엄마에게 물컵을 건네자 들이킨다. 입속의 옥수수알을 씹는다. 씹고 씹어도 옥수수알은 남아있다. 다시 한번 물을 마신다. 씹는다. 그래도 입안은 비워지지 않는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안타깝다.

"정 못 씹겠으면 뱉어."

엄마에게 휴지 한 칸을 찢어서 내민다. 엄마는 으깨진 옥수수 알갱이를 뱉어낸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얼른 음식물 쓰레기 통에 넣는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서 다시 먹다 남은 옥수수자루를 집어 든다.

"안 된다니깐. 또 뱉어내려고"

엄마의 옥수수자루를  뺏았았다. 엄마는 거칠게 항의한다.

"달라고. 내 거라고."

"알았다고. 천천히 줄게."

옥수수 세 알을 뜯어서 엄마에게 내민다. 엄마는 아기새처럼 받아먹는다. 이내  손바닥을 내민다.
"오메, 맛있다. 조그만 더 주라."

세 알을 더 주었다. 얼른 입안에 털어 넣은 엄마는 또 손바닥을 내민다.


엄마는 먹은 이외는 관심이 없다. 먹는 것 중에서 단 음식을 좋아한다. 사탕이나 과자, 빵, 단 음료들을 좋아한다. 스스로 먹는 것이 조절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간식거리가 집에 있으면 숨긴다. 더구나 엄마는 당뇨병과 고혈압 약을 먹고 있어서 이런 것들을 먹으면 좋지 않다.

여동생과 토요일 점심을 먹은 후에 고산골을 산책하기로 했다. 엄마는 주간보호센터에 일 년 정도 다니는 동안 몸무게가 10kg 정도 불어났다. 특히 배 둘레가 많이 늘어났다. 먹는 것에 비해 운동은 끔찍이도 싫어한다. 엉덩이 한 번 떼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행동들이 둔해지고 귀찮아지는 것 같다.

고산골 주차장에서 내렸으니 고산골 입구까지는 십 분 정도면 이동할 수 있다. 난항이 예상됐다. 예외 없이 한 걸음 가서 벤치에 앉고 한 걸음 걸어서 벤치에 앉는다. 벤치에 앉더라도 그늘진 곳에 앉으면 땀이라도 덜 흐를 텐데 무턱대고 눈에 보이는 곳에 앉아 버리니 햇볕을 그대로 받아 온몸에 땀을 줄줄 흐른다.

"저 위 정자에 가면 바람도 불고 시원해. 조그만 더 올라 가자."

"알았다. 너 먼저 올라가. 내가 따라갈 테니."

엄마는 따라가겠다고는 하고 절대로 한 번만에 움직이는 법이 없다. 재촉을 대여섯 번은 해야 엉덩이를 드는 것이다.

"가자니깐"

"알았다고 너 먼저 가. 자꾸 잔소리하지 말고."

날씨도 더운데 엄마까지 말을 안 들으니 짜증이 밀려온다. 떼쓰는 아이 다루기보다 더 힘들다.

"아, 모르겠어. 나 먼저 정자로 간다."

그렇게 혼자 정자로 올라왔다.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는 올라오지 않는다.  절대로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옆에서 다그쳐야만 움직인다. 땡볕에 앉아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좌불안석이다. 자판기에서 시원한 음료를 뽑아 들고 다시 내려간다. 엄마는 이마와 코에 땀이 송공 송골 맺혀있다. 엄마는 음료수를 시원하게 들이켠다. 그리고 땅바닥을 가리킨다.

"저거 좀 주워 주라."

등산객이 버리고 간 사탕이다. 

"엄마, 그거 독약이 들어서 누가 놓고 간 거야."

"딴 말 말고 주워 주라."

난 줍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가 느린 몸을 움직여 땅바닥의 노란 사탕을 한 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포장지를 벗긴다. 내가 손으로 뺏으려고 하자 엄마는 손목으로 가로막는다. 한번 더 뺏었다가는 펄쩍 뛰면서 난리를 칠 것 같아서 그대로 둔다. 더운 날씨 탓에 포장지는 사탕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는 안간힘을 쓰며 벗긴다. 노력의 결과 끝에 포장지를 벗겨내고 입안에 쏙 사탕을 넣는다. 더없이 행복한 얼굴이다.

평상시에는 모든 일에 무감동하거나 무관심을 보인다.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다. 그러나 먹은 것에는 집착을 보이며 참을성이 부족해진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며 성화고, 해물탕 집에 가서도 끓는 동안을 참지 못한다. 익지도 않은 것을 달라고 난리다. 뿐만 아니라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까지를 못 참는다. 

"빨리 바뀌어야 건너가지."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원래 성격이 급하기는 했으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치매등급을 받고 폭력성이 인정돼 요양 4등급을 받고 나서는 더 심해진 것 같다.

낯선 장소에 가면 두려워해서 목욕탕도 늘 다니는데만 가야 하고 식당도 낯익을 곳을 좋아한다. 


오래간만에 여동생과 함께 용연사 근처에 한옥카페에 갔다. 내리자마자 나무가 우거지고 흐르는 물소리가 좋았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니 그동안 스트레스가 다 날아나는 것 같다. 홍시 주스와 배도라지차를 주문하고 서비스로 미니약과가 나왔다. 약과를 엄마는 입속으로 집어넣는다. 말릴 틈조차 없었다. 약과와 주스를 5분 만에 해치우고 가자고 보챈다. 

차도 맛있고 주변 풍광이 좋다

카페는 분위기와 주변 풍경을 보면서 즐기는 곳인데, 엄마는 속수무책으로 집에 가자는 말만 수십 번 반복한다. 마음이 편치 않다. 트렁크에 실린 돗자리를 주차장 나무 그늘 아래 펼치고 엄마의 주위를 환기시키려 한 다. 휴대폰 폴더 속에 저장된 당신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집중한다. 대충 사진들을 훑어보아도 예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는 또 달라진 모습으로 지내겠지. 푹푹 찌는 날씨에  냇가의 물소리가 나의 마음을 쓰다듬는다.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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