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오감도'
산후조리를 하느라 친정에 머물 때의 일이다. 저녁 무렵 잠시 나갔다 온 남편이 툴툴거렸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여자가 4층을 누르더란다. 친정도 4층. 남편은 당연히 아무 버튼도 누르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자꾸만 여자가 자꾸만 남편을 힐끔거렸다고 한다. 마침내 4층에 도착. 그 여자는 내리지 않았고 남편은 당연히 내려서 친정집 문을 열었다. 그제야 여자가 안심한 듯 자기 층을 다시 누르더란다.
그 말을 하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까만 티셔츠에 까만 트레이닝 바지. 까만 모자까지 쓴 덩치 큰 남자. 남편은 기분 나쁘다며 씩씩댔지만 나는 그 여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스물두 살 때 겪은 아찔한 기억 때문이었다.
스물두 살 생애 처음으로 심야영화를 보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각. 같이 영화를 본 친구들을 버스 막차를 태워 보내고 집으로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거리는 한산했고 사람 하나 다니지 않았다. 처음으로 걷는 밤거리. 무서웠지만 처음으로 심야영화를 봤다는 설렘이 더 컸다.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오 분쯤 걸었을까. 내 옆에 까만 차 한 대가 섰다.
“아가씨, 아가씨”
밤거리에 혼자 다니는 여자를 노리는 이상한 놈들이 많다더니 그런 놈들 중 하나구나. 차에서 멀어지려 걸음을 재촉했다.
“아가씨, 뒤에 남자! 뒤에 남자가 아까부터 계속 따라왔는데 몰랐어요? 아니 아가씨가 이렇게 밤늦게 다니면 어떡해!”
큰 목소리에 뒤를 봤다. 정말 모자를 쓴 낯선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차를 쳐다보더니 횡단보도를 건너 달아나는 것이었다.
“내가 아가씨 같은 딸이 있어서 그래. 밤에 혼자 걸어가면 위험해. 집이 어디야? 차로 태워줄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까만 차 아저씨가 자꾸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때였다. 데리러 나오기로 했던 남동생이 나타난 것은.
“누나 왜?”
동생이 왔다고 고마웠노라고 말하니 휙 하고 창문을 올리고 까만 차는 떠났다. 동생에게도 엄마에게도 그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무용담을 펼쳐놓았다.
한 달 뒤였다. 뉴스가 나온 것은. 두 명의 남자가 한 여자를 강간하고 죽인 뒤 야산에 유기했다는 뉴스였다. 그 산이 우리 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라 더 관심이 갔다. 수법은 이러했다. 한 남자가 여자를 뒤따라가면 다른 남자가 차를 타고 가 여자의 옆에 차를 댄다. 그러고는 위험하다며 집에 데려다준다고 여자를 차를 태워 범행을 저지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겪은 일이었다. 친절함을 가장했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에 다시 재생되었다. 그 뒤로 꽤 오랫동안 아홉 시만 지나면 혼자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친절하게 대하는 낯선 남자들도 다 무서웠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세상은 흉흉하기만 하다. 누구나 덜컥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기나 살인과 같은 극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종종 그런 일을 겪곤 한다. 친한 친구가 나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곤란한 일을 당한 나를 외면하는 동료를 봤을 때. 누구 하나를 믿을 수 없어 두려워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두려움에 평생을 시달린 시인이 있다. 바로 이상이다. 그는 가족도, 연인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의 첫 공포의 기억은 어머니의 포근한 품에서 떨어져 나와 낯선 곳에서 생활해야 했던 두 살 무렵의 기억일 것이다. 그의 본명은 김해경. 아버지는 궁내부 인쇄소에서 일하다 두 번의 사고로 손가락 세 개를 잃은 장애인이었고, 어머니는 결혼 전까지 이름 한 번 가져본 적이 없는 얽금뱅이 고아였다. 장애인인 아버지와 고아인 어머니. 그 사이에 태어난 그에게 물질적 가난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으리라.
하지만 그에게는 더한 정신적 가난이 예정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젖을 떼자마자 큰아버지 댁에 양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큰아버지, 큰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 두 번째 부인의 자식인 아들로 구성된 그 가족 사이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큰아버지 댁도, 자신의 집도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처지가 된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두려움은 그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로 오래 남아있게 된다.
그는 연인도 믿을 수가 없었다. 결핵 요양차 떠난 온천 여행에서 만난 기생 금홍은 그보다 나이가 두 살 어렸다. 나이는 두 살 어렸지만 이미 아들을 낳아 입양 보낸 적이 있던 금홍은 이상과 동거하면서도 여러 남자들 품을 전전한다. 이상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지낸다. 금홍이 그렇게 벌어온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만 했으므로. 결국 금홍은 그를 남겨둔 채 다른 남자의 품으로 완전히 떠나버린다. 그 후 그의 소설 종생기에 따르면 부인 변동림과의 사이에도 사랑보다는 불신의 기억이 짙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시를 발표할 때마다 연이어 날아드는 악평과 독자들의 항의에 시달린다. 그의 시를 연재해준 이태준은 그의 시가 발표되는 날이면 주머니에 사표를 넣어두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그의 시 연재는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되고 만다. 이상은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들 역시 두려웠으리라.
13인의아해가 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13명의 아이가 모두 무섭다고 한다. 무서움에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무서운 아이인 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그 안에 무서운 아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모두 무서워하며 도망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의 사회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 밤에 나의 뒤를 걷고 있으면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선생님으로서 모두를 믿는 아름다운 세상만을 가르치고 싶지만 현실은 누군가 호의를 보이면 먼저 의심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내 아이에게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더라도 다른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라고 가르쳐야만 안심이 된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두려워해야만 하는 시 속의 상황이 지금도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지만 누가 나쁜 사람인지 알 수가 없어 두려운 세상이다. 희망과 꿈을 심어줘야 하는 교단에서 두려움을 가르쳐야만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