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그리울 때는 이용악을

이용악의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by 오리ON

생각하면 꼭 눈물이 나는 사람이 있다. 유독 나에게만은 약한 사람. 자다가도 뭐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눈곱도 떼지 않고 신발부터 신고 나가는 사람. 세상에서 딸이 가장 무섭다고 하던 사람. 내가 울면 세상이 무너진다고 생각한 사람.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는 생전에도 나를 잘 울리곤 했다. 스물다섯. 건강검진에 이상소견이 보인다며 병원을 다시 방문하라는 전화를 받은 건 저녁 다섯 시 무렵이었다. 첫해 낙방하고 겨우 붙은 교사 임용, 그 마지막 관문인 신체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걱정에 저녁을 통 먹지 못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네가 신장이 안 좋으면 아빠 신장이 두 개니까 하나 떼어줄게. 네가 간이 안 좋으면 아빠 간 떼어줄 수 있어. 네가 심장이 안 좋아도 아빤 살만큼 살았으니까 아빠 심장 너 줄게. 그러니까 넌 아무 걱정하지 마.”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울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간도 신장도, 심지어 심장까지 다 떼어 줄 사람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 울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추가 검사에서 다행히 채용신체검사에 합격도장을 받았고 이듬해 교사가 되었다.


동생의 전화가 걸려온 건 학생들을 인솔해 간 수련회에서였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했다. 일하다가 쓰러져 있는 것을 직장동료가 발견했단다. 119로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아버지는 계속 의식이 없다 했다. 전화를 받고 황급히 택시를 타고 도착한 병원. 수술 중이지만 가망은 거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열 시간 넘는 수술. 뇌사판정. 중환자실에 호스와 기계를 잔뜩 단 아버지. 모든 게 갑작스러웠고 현실감이 없었다. 뇌사란 뇌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깨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말이었다. 우리 가족은 희망도 없이 아버지의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나를 계속 울렸다. 하루에 두 번 면회시간. 어머니, 나, 동생이 들어가면 누워있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그 의식 없는 와중에도 딸 바보 우리 아버지는 내가 “아빠”라고 부르면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다른 사람 목소리에는 반응이 없다가 딸 목소리에만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옆에서 나는 간도 신장도, 심장도 떼어드릴 수 없어 울기만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닷새를 버티시다가 떠나셨다.


부모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한으로 남지만 특히 아버지의 죽음을 울음으로 기억하는 시인이 있다. 바로 이용악이다. 우리나라의 최북단이 함경북도, 그중에서도 국경지대인 경성. 대대로 밀수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이용악은 1940년대 서정주, 오장환과 함께 조선의 삼대 시인으로 꼽힌다. 할아버지도, 큰아버지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목숨을 걸고 밀수업 하는 집안. 그곳에서 그는 젖먹이 무렵부터 밀수를 하는 어머니 등에 업혀 눈보라 속에 몸을 감추고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그에게도 예기치 않은 아버지의 죽음이 찾아온다. 러시아로 만주로 목숨을 걸고 밀수업을 하는 처지였지만 가족들도, 아버지 본인에게도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죽음은 늘 그렇게 갑작스럽게 문을 왈칵 열어젖히고 목숨줄을 쥐고 떠나버린다.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우리 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이 아무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차가운 땅바닥. 침대는커녕 이부자리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은 그곳에 누운 아버지를 본다. 이미 손발은 차갑고, 심장이 멈추었다. 때늦은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건 ‘임종하셨습니다.’ 한마디뿐.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앞에 두고 피붙이들이 할 수 있는 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울어 내는 일밖에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자리에는 아무을만과 니코리스크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남아 있지 않다. 서러운 풀벌레 소리만 가득할 뿐이다. 이제부터 그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면 아버지의 서러운 죽음을 떠올릴 터이다.


이용악의 시를 읽으며 집도 병원도 아닌 곳에서 쓰러지신 아버지.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없어 부검까지 해야만 했던,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이별의 순간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닥쳐버렸고 누구 하나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아마 아버지도 가족을 두고 떠나야 하는 발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으리라.


시간은 흐르고 흘러 우리 가족은 아버지 제사 때 울지 않고도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산소에도 새파랗게 잔디가 올라왔고, 비석을 덮은 하얀 흙먼지 위에는 작은 동물 발자국도 몇 개 찍혀 있곤 하다. 그곳에서도 작고 어린것을 돌보시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나를 울리신다. 꿈속에 강도가 나타나 어딘가를 칼로 찌르면 나는 꼭 거기에 탈이 나곤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 꿈속에 자꾸만 아버지가 나타나 내 앞을 막아서서는 대신 칼에 찔리는 것이다.


꿈속에서라도 덜 아프라고 딸 대신 칼에 찔리는 아버지. 그 꿈에서 깨어나면 꼭 나는 울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딸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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