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의 '가정'
한 남자가 있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고, 바라던 선생님이 되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취직도 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아왔고 그럴 것이라 믿었다.
연차에 따라 승진도 착착했고 회계장부가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 회계 장부가 문제였다. 회계장부를 조작하라는 상사의 지시. 상사의 비리. 그는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다. 양심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의 반대와 모두의 만류를 뒤로 한 채 사표를 던졌다.
영업을 한 번도 뛰지 않은 그가, 술을 한 방울도 마실 줄 모르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되면 손도 대지 않는 그가 하는 사업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사람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그가 마구 한 보증도 문제였다. 수많은 문제는 한 번에 터져버렸고 모든 문제는 하나로 귀결되었다. ‘돈’이었다. 지식들의 학비를 제때 챙겨둘 수 없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빚쟁이들의 전화와 초인종 소리를 트라우마로 남겼다.
한 아버지가 있다. 아들 딸에게 한 번 회초리로 때려 본 적이 없는 사람. 아이들 버릇을 고치란 아내의 성화에 회초리를 들었으나 회초리를 든 손만 벌벌 떨고 있을 뿐 자식들에게 모진 소리 한마디 하지 못하였다. 회사와는 정반대로 가야 했으나 단 한 번도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일을 거른 적도, 싫은 티를 낸 적도 없다. 아들과 딸을 데려다주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찰나의 순간이 그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기에.
딸아이가 첫 생리를 한다는 이야기에 꽃다발과 케이크를 사 온 사람. 자식이 “내가 왜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물으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을 닮았으니 사랑할 수밖에 없지’라고 대답할 줄 아는 남자. 스물여섯이나 먹은 딸에게 공주라고 부르던 사람.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게 한 나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어느덧 8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아버지에게 완벽한 딸이 아니었던 것처럼 아버지도 나에게 완벽한 아버지라 할 순 없다. 하지만 나에게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마음 여기저기에 심어두셨다.
여기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다. 시를 쓴다는 핑계로 가계에는 무심했던 한 남자. 다섯 명의 아이들 학비를 제 때 한 번 내보지 못했고 중학생 아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자전거 한 대 사 주지 못했다. 출근하는 첫아들 양복 한 벌 해 입히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무능한 아버지.
하지만 아침상에 둘러앉은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쓸어주고서야 자리에 앉는 아버지였고, 새해가 되면 아이들 하나 씩 무릎에 앉혀 놓고 새해 다짐을 묻고 자신의 수첩에 적어두는 아버지였다.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아들이 다른 집 자전거를 타고 망가트려 놓았을 때도 자신이 죄인인양 여기저기 다니며 사죄하고는, 정작 아들에게 한 마디 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아들 양복 한 벌 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파 자신의 양복은 안감이 다 해져있어도 원고료가 나오자마자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아들을 앞세워 양복을 해 입히고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는 남자. 그가 바로 박목월이었다.
박목월
지상(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1968)
시를 써봤자 손에 들어오는 것은 원고료라 이름 붙은 몇 푼의 돈뿐. 아이들 다섯 학비도 되지 못하는 돈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원고료를 받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밤을 새우고 몇에게 고개를 숙였는지 모른다. 이번에도 아들이 그토록 소원하는 자전거 하나 사줄 수 없겠구나 고개 숙이며 걷다가 어느덧 집 현관에 눈길이 닿는다.
쪼르르 놓인 아이들의 신발. 그 옆에 벗어두는 아비의 신발. 그는 물끄러미 그의 신발을 바라본다. 밑창이 다 해진 지 오래인 그의 신발을. 세 살 난 막내 아이 신발 옆에 벗어놓으니, 그의 신발은 그 곱절이 훨씬 넘는 것 같다. 살아온 날들로 치면 막내둥이 보다 강산이 세 번 바뀔 세월만큼 더 살았으니 내 신발은 그보다 세 갑절은 더 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그래서 박목월은 자신의 신발 크기를 십구 문 반(지금으로 치면 470mm 정도)이라 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다섯 아이와 아내가 고스란히 그 신발 안에 담기려면 신발이 그만큼은 커야 할 테다. 그렇게 커다란 신발을 신고 한 걸음 한 걸음 디뎌야 하니 세상에 한 걸음 디디기가 그토록 힘든 것이었으리라.
세상이라는 이름을 단 길은 살아내면 살아 낼수록 살을 에는 바람이 불고 가팔라지기만 한다. 그 모진 세상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는 들이고 싶지 않은 게 아비의 마음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은 기어이 얇은 봉투의 형태로 집 안으로 기어들어온다.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헤치고 돌아왔으나 가족들 앞에 얇은 봉투만을 내밀 수밖에 없는 어설픈 아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서 사랑만으로는 부모 노릇이 어려울 때가 많다. 박목월의 시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는다. 지금 나의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것은 내 마음속 여기저기에 사랑받은 기억을 아버지가 심어주셨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그토록 커 보이던 아버지의 신발 한 켤레가 자꾸만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