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자화상'
모든 수업의 시작은 자기소개로 시작된다. 낯선 사람들로 들어찬 공간. 그곳에 우뚝 서서 나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부담인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 그리고 교사로서 8년. 그다지 다를 것 없는 교실에서 매년 자기소개를 하고 있지만 매번 떨리고 식은땀이 난다. 나는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부끄러움의 역사는 사춘기부터 시작된다. 그 무렵 나는 보고 싶지 않았던 나 자신을 마주하였다. 학원에서 친 영어 단어 시험. 분명 같은 영어 단어를 같은 시간 동안 외워서 치는 시험이었는데, 나를 제외한 아이들은 너무 빨리, 너무 정확하게 외워냈다. 아, 머리 좋은 사람은 따로 있구나. 나는 부족한 나를 발견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 이후 어떤 시험을 치더라도, 어떤 결과를 받아도 부끄러웠다. 성적을 잘 받으면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잘 받았지만 다음에는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메웠다. 누군가의 기대를 받아도 기쁘지 않았다. ‘머리 나쁜 나의 진짜 알맹이가 드러나면 어떡하지’하고 매번 겁부터 한 움큼 집어먹었다.
나의 외양도 부끄럽기 마찬가지였다. 또래보다 작은 키와 왜소한 몸집, 그리고 두꺼운 안경을 쓴 전형적인 모범생의 외모. 사춘기 무렵에는 거울을 거의 보지 않았다. 거울을 우연히 마주쳐도 흠칫 놀랄 만큼 내 모습이 싫었다. 누군가 내가 예쁘다고 하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알맹이도, 껍데기도 모두 부끄럽기만 했다. 그런 나에게 실컷 부끄러워해도 된다고 알려준 시인이 바로 윤동주이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던 시인이 있다. 자신의 말과 글로 시를 쓰는 것이 금지당한 나라에서 사는 일이 부끄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 시를 쓰는 일밖에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시인 윤동주. 자신의 시가 쉽게 쓰이는 것조차 부끄러워했다.
그의 부끄러움의 역사는 가만가만 더듬어본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매번 글을 쓰던 윤동주. 하지만 고종사촌 송몽규가 먼저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그는 자신의 습작시가 부끄러웠을 것이다. 광명학교 편입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 문익환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5학년이지만 자신은 4학년으로 다녀야만 했음도 그의 부끄러움에 한몫을 더했을 것이다. 교토 제대 입학시험을 치렀으나 사촌 몽규만 입학하고 자신만 낙방하였음도 부끄러웠으리라.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부끄러움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시인이라는 신분이었을 것이다. 숭실학교를 함께 다니던 동기들이 독립군으로 중국에서 싸우다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시만 쓰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했고, 일본으로 유학하기 위해 ‘히라누마 도주’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음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은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에 가 닿지 못하는 현실적 자아를 알아차렸을 때 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세워놓은 예쁘고 똑똑한 아이라는 이상에 맞지 않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윤동주는 어떤 자신의 모습을 이상으로 그렸을까. 되었음직한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현실의 모습에 자신을 미워하다가 그런 자신을 안쓰러워하는 모습이 지금의 우리와도 다르지 않아서 이 시가 더 와닿는 것이리라.
「자화상」 속의 윤동주는 해가 거의 사라진 저녁, 매일 하듯 산책을 나선다. 대식구가 시끌벅적한 집에서 나와 찾은 자신만의 시간. 그는 자두나무 울타리가 있는 집에서 나와 쪽문으로 돌아 나간다. 그리고 가만가만 거기에 있는 혼자 우물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 자신의 모습이 있다. 무엇하나 이루어놓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그 모습이 미워 쳐다보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그 자신은 안다. 무엇하나 이루지 못했지만 그 안에 어떤 고뇌와 괴로움이 들어차 있는지를. 그래서 그냥 돌아서 버리지 못한다. 안쓰럽고 그리워서. 신춘문예에 한 번 당선되지 못했지만 많은 밤 자신 안의 시를 풀어내며 고뇌했던 시간이 그 속에 있다. 주권을 잃은 나라를 위해 총, 칼을 들고 뛰어들지는 못하였으나 나라를 위해 무얼 해야 하나 고민했던 시간들이 늘 그의 곁에 있었다.
모두가 결과를 볼 때 자기 자신만은 그 과정에서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좌절이 도사리고 있었는지를 안다. 그는 지금은 무엇 하나 이루어 놓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밉지만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라 말한다. 윤동주는 부끄러웠기에 시를 썼고, 오래도록 남는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부끄러워해도 된다고 그 사실이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말해주었다. 덕분에 그 시절 내가 바랐던 대로 교단에 서게 되었다. 그의 말처럼 여전히 부끄럽지만 이런 내 모습이 예전처럼 밉진 않다. 그 시절이 추억이 된 것이다.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차디찬 감옥에서 죽은 그의 나이를 앞질러 나간 지 오래다. ‘부끄러워해도 된다. 그 모두 추억이 된다’는 그의 조언은 늘 내게 용기를 준다. 돌아오는 새 학기. 윤동주 시인 덕분에 교단 앞에서 만날 아이들 앞에서도 부끄럽지만 자기소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