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때는 백석을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by 오리ON

살면서 외로움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지구의 한 구석에서 웅크리고 살아가다 보면 이유가 있어서, 또는 이유가 없이 외로워지는 때가 있다. 외로움의 역치 값은 사람마다 달라서 너의 외로움이 더 크니, 나의 외로움이 더 크니 하는 식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그저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라서 보편적으로 외로운 것이다.


외로움 하면 떠오르는 시가 여러 편 있지만 나는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 하는 것’이 주로 내가 외로울 때 하는 일이기 때문일까. 나에게 외로움은 항상 자기 모멸감과 함께 왔다. 내가 못나서,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외롭지 않았을 텐데 하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백석처럼. 백석이 찬탄해 마지않았던 고장, 통영에 처음으로 뿌리내렸을 때가 그랬다. 나에게만 엄청난 중력이 작용하는 듯 쪼그라들고 또 쪼그라들고만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통영으로 옮겨온 첫해, 두 명의 제자가 피의자로 재판정에 섰다. 자신만만하던 교사이던 나는 다시 쪼그라들고 있었다.


학기 초부터 가출에 각종 사건에 얽혀 있는 두 명의 아이. 아이들의 방황에도 사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돈 벌어오라는 말에 말대꾸했다가 어머니가 던진 포크가 손등에 꽂히고, 어머니와 어머니 남자 친구가 칼을 들고 싸우면 원룸 한 구석에서 웅크려 있어야만 했던 아이. 그 아이가 마음에 자꾸 걸렸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었기에 가출해도, 사고를 쳐도 자꾸만 마음을 주었다. 자꾸 겉도는 두 명의 아이를 집에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먹였고, 방과 후 상담이라는 명목으로 남아서 그 아이들의 수다를 여러 날 들어주었다. 가출을 해도 선생님을 보러 학교에 온다며 가끔 학교에 얼굴을 비췄다.


이제 잘하겠다는 다짐 뒤 두 아이는 각자 다른 이유로 각자 다른 시점에, 각자 다른 곳으로 가출을 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이유로 경찰에게 붙들려왔다. 교직생활 5년 만에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뉴스에 나올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건만 그 아이들에게는 영웅담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이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교사가 되고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받아 울었다. 아이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믿을 수 없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과 외로움을 털어놓을 사람이 하나 없었다. 남편은 연이은 회식으로 곁에 없었다. 외딴 지역으로 온 탓에 불러 내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었다.


나는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문득 백석의 갈매나무가 나를 위로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경성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할 때는 경성 3대 미남으로 꼽히기도 하고, 함흥에서 영어교사를 할 때는 옆 학교까지 떠들썩했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백석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통영의 그녀, 박경련이 백석의 친구인 신현중과 결혼한 사건이 그를 외롭게 했을 것이고, 기생 자야와의 이룰 수 없었던 사랑도 그를 외롭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외국으로 떠돌아야 했던 그의 운명도 그를 외롭게 했으리라.


백석은 일제의 징집을 피하기 위해 만주 신징으로 간다. 그곳에서 피아니스트 문경옥과 결혼했지만 문경옥이 7달 된 아이를 유산한 뒤 계속되는 시댁과의 갈등에 결국 그를 떠난다. 세관원으로 일하다가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려 그 일마저 그만두고 만다. 조국도, 아내도, 직장도 없어진 백석. 그가 만주에서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버텼을까. 그가 떠돌고 떠돌다 온 남신의주 역시 차갑기 그지없는 곳이었으리라. 문손잡이를 잡을 때면 늘 손수건으로 쥐고 잡았다는 그. 다른 사람과 함께 쓰는 수화기에는 절대 입을 가져다대지 않으려 했을 만큼 결벽증이 있었다는 그가 헌 샅을 깐, 습하고 누긋한 방에 앉아서 자신의 신세를 떠올려보고 있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 그것이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그의 마음에 갈매나무가 들어찬다. 갈매나무는 땔감으로 밖에 쓸모가 없고 그 마저도 뾰족한 가시 때문에 땔감으로 모으기도 어려운 나무다. 거의 대부분이 작고 꾀죄죄한 나무이지만, 사람이 발길이 잘 닫지 않는 곳에서는 크고 곧은 갈매나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외롭고 춥고 힘들지만 정하게 서있는 갈매나무. 외롭고 추운 곳에 있기 때문에 곧고 정할 수 있는 갈매나무를 백석은 떠올렸을 것이다.


그 해 겨울. 나는 따뜻한 통영에서 하이얀 눈을 맞으며 얼마 남지 않은 마른 잎사귀를 떨구는 갈매나무를 떠올리며 겨울을 났다. 다시 새봄이 돌아오고 새로운 아이들과 한 해를 보내면서 다시 아이들을 믿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다만 아이들을 모두 안다는, 또는 아이들을 내가 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린 후 얻은 것이었다.


이듬해 소년 감호시설을 나온 아이들이 스승의 날이라고 꽃을 들고 나를 찾았다. 아직 다 여물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남한에서 백석이 발표한 마지막 시이다. 그는 이 시 한 편으로 먼 시간, 먼 곳을 달려 내 마음속에 갈매나무 한 그루를 심어주었다. 나 역시 아이들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없음을 안다. 다만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갈매나무 묘목 하나 나누어주는 교사로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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