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개여울'
누구나 삶의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나에게도 있다. 그 우여곡절 속에서 내가 감내해야 했던 아픔들은 내 안에 한으로 아로새겨져 있으리라. 한국어에만 있다는 말 ‘한’. 어디 표출해내지 못하고 안으로 새겨야 하는 상처 자국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게 한이 새겨질 때도 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열대여섯, 고작 열대여섯이 된 아이들에게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한이 새겨질 때는 신에게 따져 묻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매일 지각을 하는 저 아이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다. 더럽고 냄새난다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된 아이는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차릴까 봐 더 웅크리고 웅크렸다. 왕따가 끝난 지금도 거울 앞에서 이를 열 번 닦는다. 세수도 하고 또 한다. 다시 왕따가 될까 봐.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도 씻고 또 씻느라 매번 지각을 한다.
수업시간에 잠만 자는 저 아이는 올해 아버지가 스스로 생을 마치셨다. 새벽에 걸려온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 “어머니와 동생을 잘 보살펴라.” 아이는 그 전화에 자신이 어떻게 말했으면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실까라는 생각에 어젯밤도 꼬박 새웠다.
자꾸 엉뚱한 짓을 하는 저 아이는 어젯밤에도 엄마에게 쫓겨났다. 술에 취한 엄마는 이혼한 아빠에게 양육비를 받아오라며 한밤중 아이를 쫓아냈다. 이번 달 양육비를 어느새 다 쓴 모양이다. 아이는 안다. 그 양육비로 겨우겨우 자신과 엄마가 먹고 산다는 것을. 그리고 술이 깨면 엄마는 “너 없으면 죽어버릴 것”이라고 미안하다고 울 것임을. 그래서 아빠한테 가지도 못한다. 엄마가 진짜 죽어버릴까 봐.
조용한 저 아이는 얼마 전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갓난아기 때 아빠와 자신을 떠났다는 엄마. 학교에 가져가기 위해 발급받은 가족관계 증명서 위에 사망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척집에서 살아가던 아이는 그 글자 하나로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항상 웃는 저 아이는 엄마 품에 매달려서는 매일 울었다. 반신불수인 아버지, 게임중독자인 오빠, 그리고 생계를 책임지는 병든 어머니. 어머니가 한 움큼 집어먹는 약을 보고 아이는 엄마에게 매달려 울었다. 얼마 뒤 그 아이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사고로. 그 아이에게는 오빠와 아버지만 남았다.
기구한 사연으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시인이 있다. 한의 정서라고 하면 제일 먼저 손꼽히는 김소월이다.
소월이라는 호가 더 잘 알려진 그의 이름은 김정식이다. 그는 광산업을 하는 조부 덕분에 부잣집 도련님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도 잠시 소월의 외가에 다녀오던 아버지가 철도 공사를 하던 일본인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사건으로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돌보아야만 하는 어머니 밑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에게 찾아온 첫사랑. 같은 학교를 다니는 세 살 많은 누나 오순. 하지만 14살에 조혼을 했던 김소월과 그녀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오순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나 남편의 의부증으로 삼 년을 채 살지 못하고 차가운 주검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조부의 광산업마저 망해버리고 처가의 도움을 받아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던 소월은 그 마저 망해버리자 극도의 빈곤 속에서 술에 의지해 살아간다. 크리스마스이브, 그는 아내에게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라는 말을 남긴 채 뇌일혈로 삶을 마감한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 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개여울 속의 김소월은 무엇은 그리 떠나보내기가 힘들었을까. 혼자 개울에 앉아 물줄기를 보고 있다. 그것도 물살을 따라 편히 흐르는 물이 아니라 방해를 받아 개울이 토해내듯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임이 떠난지는 오래되어 떠난 자리에 새파란 풀이 돋아나 왔고 봄바람이 불어온다.
하지만 임이 떠난 자리에 있는 그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는 건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는 그 사람의 약속 때문은 아니었을까. 떠나버렸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완전히 가지 않은 그를 떠올리며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는 그 말의 뜻이 자신을 잊지는 말아달라는 부탁임을 깨닫는다. 결코 떠나보낼 수 없는 그 사람이 그의 마음속에 하나의 상처 자국으로 아문 것이다. 그 상처 자국은 김소월에 의해 아름다운 시 한 편으로 다시 태어난다.
부모도 사랑도 사업도. 무엇하나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김소월에게 세상살이는 한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의 삶이 너무 아파서 차마 그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말조차 할 수가 없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늪 속에서 그는 시를 지었다.
아이들의 상처 속에서 길어 올린 한이 너무 깊을 때면 김소월의 시를 꺼내 읽는다. 그의 시는 너무 아름다워서 더 슬프다. 그의 삶과 시를 실컷 아파하고 다시 찬찬히 아이들을 바라본다. 저 아이들의 상처도 아름다운 꽃자리로 변하기를 바라면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잠만 자던 아이가 지은 시 한 편을 덧붙인다. 그 아이 역시 잘 이겨나갈 것 같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여행을 갔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아무 짐도 챙기지 않고
급하게 떠나버렸다
언제쯤 돌아올까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괜찮았다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 같았으니까
1주일,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갈 때쯤
그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쯤
난 깨달았다
그는 내가 볼 수 없고
갈 수 없는 곳까지
멀리 떠나버렸다는 것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
그의 끝나지 않을 여행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작가는 굳이 밝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