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울방주 소설] 뽀삐의 일기 45화

뽀삐는 여전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조용히 찾고 있어요!

by 겨울방주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은행강아지 뽀삐!


이번 주 뽀삐의 일상은......


은행 창구의 바쁨과 진상, 눈밭 쓸기, 서울 집회와 헌정 논쟁, 그리고 토끼 할머니와 시각장애인 친구까지… 분노와 다정함을 오가며, ‘법과 양심’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용히 찾아나간 한 주였습니다!











2025년 2월 3일 월요일 구름 ☁


아침에 씻고 밥·약 챙긴 뒤 잠깐 쉬었다가 말씀 읽고 글을 쓰고, 아버지 차를 타고 은행으로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었고, 오늘도 손님들이 꽤 많이 들어와 하루 종일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해 오후까지 계속 고객을 맞이하다 16시에 문을 닫았고, 16시 50분에는 우편물을 부치러 우체국에 들르며 퇴근했다. 이후 병원 진료를 받고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으며 와인 한 잔도 곁들이고, 동영상을 잠깐 보다가 일기를 썼다. “오늘처럼 평온한 하루, 평범한 일상을 계속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12.3 비상계엄이 그 일상을 한순간에 깨뜨릴 뻔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헌정질서를 파괴한 원흉은 반드시 단죄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2025년 2월 4일 화요일 맑음 ☀


오늘도 아침 루틴은 그대로, 씻고 밥·약, 잠시 쉼, 말씀과 글쓰기 후 아버지 차 타고 은행으로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자 손님이 또 많이 들어와 바쁜 하루였고, 점심 후 13시에 복귀했을 때도 손님은 계속 이어졌다. 지난 금요일만큼은 아니어도 “겁나게 많다” 싶은 손님들 틈에서, 어떤 손님이 “너무 늦는다”며 짜증을 내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속으로 꽤 화가 났다. 대꾸 대신 업무 파악한 종이를 약간 신경질 섞인 손길로 뽑아 팀장님께 드렸더니, 그 손님이 “거봐, 뭐라고 해야 움직이지”라는 말을 던져 내 안의 분노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잠시 가스분사기 안전장치를 풀고 발포 준비까지 했지만, 곧 다시 안전에 놓고 잠갔다. “그래도 굳이 싸워서 뭐 하나, 저 사람도 그냥 그런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43분경 토끼 팀장님 지시로 퇴근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동영상 보며 더빙 작업도 조금 해 보고, 오늘도 와인 한 잔 곁들인 평범한 저녁. 그래도 헌정질서를 짓밟은 그 코뿔소만큼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이 끝내 남아 있었다.



2025년 2월 5일 수요일 맑음 ☀


아침 루틴(씻고 밥·약, 쉬고 말씀·글쓰기)을 마치고 아버지 차를 타고 은행으로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었는데, 아침부터 새로 온 다람쥐 신입직원이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있었다. 무언가를 안 가져와서 토끼 팀장님이 농담 반 잔소리 반으로 한마디 하신 것 같은데, 그동안 쌓였던 힘듦이 터진 듯했다. 토끼 팀장님은 곧바로 달래느라 애를 쓰셨고, “누구든 힘들면 울 수 있는 거지, 나도 그랬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입 직원이 짠하게 느껴졌다. 점심은 자주 가는 식당에서 혼자 먹게 되어 살짝 어색했지만, 13시에 복귀해 근무를 이어가고 16시에 문을 닫은 뒤 16시 35분경 팀장님 지시로 퇴근했다. 퇴근길에 우편물을 우체국에 부치고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부모님과 매일 주고받는 “싸움 아닌 싸움 같은 투닥거림”을 구경하며 웃었다. 저녁에는 빠띠 온라인 줌에서 내란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외국인·남녀·성소수자 차별이 더 심해졌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 이렇게 서로를 차별하고 폭행하고 테러를 일삼는가, 이 시대에 법치주의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깊은 질문을 안고 하루를 마쳤다.



2025년 2월 6일 목요일 맑음 ☀


아침에 씻고 밥·약을 챙기고, 잠깐 쉰 뒤 말씀 읽고 글을 쓰고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9시 문을 열었는데 아침 공기가 제법 추웠다. 한 “황소 아줌마” 손님이 통장 좀 봐달라길래 통장정리인 줄 알고 안내했더니, 실제로는 “인쇄가 흐릿하게 찍힌다”는 뜻이었다며 “말귀를 못 알아듣냐”는 식으로 내게 말을 해서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도 크게 받아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기분 나쁘다” 하고 삼켰다.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해 근무를 이어가다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50분에 퇴근해 박구용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러 갔다. 강의를 열심히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엔 머리가 지끈거리면서도, 그래도 오늘도 하나 배웠다는 작은 만족감이 남았다.



2025년 2월 7일 금요일 눈 ❄


아침 루틴을 마치고 아버지 차로 출근해 근무 준비를 하고, 9시에 문을 열었다. 전에 들어왔던 신입사원이 사직하고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럴 수 있지, 누구도 뭐라 할 자격은 없다”라고 조용히 받아들였다. 근무 중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함박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고, 은행 입구 쪽 길이 경사가 져 있어 낙상 사고가 걱정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내가 근무하는 동안만큼은 안전사고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싸리비를 들고 경사로 쪽 눈을 열심히 쓸어냈다. 눈이 계속 와서 두 번, 세 번 다시 쓸었고, 덕분에 나중에 얼음이 되는 구간이 줄어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스스로도 잘했다고 느껴졌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 사회생활하면서 회사 주소로 내 개인 택배를 처음 받아보는 경험도 했다. 이후 근무를 마치고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50분 우편물 부치며 퇴근해 집에 와서 씻고 밥과 주전부리를 먹으며 동영상을 보다가 일기를 썼다. 내란 세력이 우리의 제도와 성과를 송두리째 부수려 했던 만큼, “그 후손들까지 숨 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분노까지 치밀어 오르는 날이기도 했다.



2025년 2월 8일 토요일 맑음 ☀


아침 일찍 밥과 약을 먹고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공항 보안검색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뒤 공항에서 약 두 시간 정도 머물다가 점심을 먹고, 함석현 기념관으로 향했다. 일찍 도착해 주최 측 담당자에게 연락하니 “지금 식사 중이니 호텔 카페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라고 해서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연락을 받고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식량·물 관련 토론회에 참여했지만, 전문 분야가 아니라 조용히 듣는 쪽에 집중했다. 모임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광화문 동십자각으로 향하는 길, 기사님이 “무슨 마음으로 집회에 가냐”라고 물어봐서 진영논리와 무관한 헌정질서 문제라고 답했다. 그러자 기사님은 “왜 하필 이재현이냐”라고 묻고, 내가 당원이라고 하자 “아까는 진영 떠나서라더니 왜 또 당원이냐”라고 따져 묻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이재현 대표 관련 인터뷰 논란에 대해 서로 다른 정보와 해석을 주고받았지만, 결국 평행선으로 끝났고, 지금 돌아보니 계엄 문제를 정치 팬덤 싸움으로 희석시키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도 “불찰이었다”라고 느꼈다. “앞으로는 상대의 질문에 바로 답하기보다, 한 번 더 숨 고르고 생각하고 답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집회장에 도착해서는 참여연대와 합류해 퇴진 구호를 외치고, 저녁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어느 한 인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교훈을 되새기며, 나 자신도 앞으로 더 잘 살펴야겠다고 다짐했다.



2025년 2월 9일 일요일 맑음 ☀


새벽에 일어나 씻고 아침과 약을 챙겨 먹은 뒤 바로 숙소를 나와 공항으로 갔다. 보안검색대가 꽤 혼잡해 애를 먹었지만, 간신히 출발 시간 전에 탑승구에 도착해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교회로 가 예배를 드리고, 어댑터를 사러 컴퓨터 가게로 가는 길에 펜을 파는 토끼 할머니를 만났다. 현금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가 마음에 남아 빵과 물을 사서 다시 찾아가 드렸고, 할머니는 빵만 받아 들고 물은 사양하신 뒤 내게 펜을 선물로 건네주셨다. 생수는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싶다”는 사람에게 전해 주며 마음속으로 응원의 마음을 담았다. 컴퓨터 가게에 갔더니 어댑터는 서비스센터에서만 살 수 있다 해서, 서비스센터까지 갔다가 주말에는 영업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귀가했다. 집에서 밥을 먹고 잠시 쉬는 사이 부모님도 돌아오셨고, 저녁을 먹은 뒤 약을 먹고 쉬다가 참여연대에서 알게 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전맹 시각장애인인 그 친구가 “산행에 함께 가서 케어해 줄 수 있느냐”라고 물어왔고, 서로 일정을 조율해 보기로 했다. 장애인 케어는 처음이라 긴장되지만, “함께 산에 오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설렘도 함께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들 힘내서 다음 주도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보자고요!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4화[겨울방주 소설] 뽀삐의 일기 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