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삐가 드디어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학사 졸업장을 취득했어요!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은행강아지 뽀삐!
이번 주 뽀삐의 일상은......
한산한 은행 창구와 분주한 서울 광장, 졸업식의 뿌듯함과 개헌·전쟁·파시즘에 대한 고민까지… 뽀삐는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글쓰기’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한 걸음을 걷던 한 주였습니다!
아침에 밥·약을 챙겨 먹고 글을 쓴 뒤, 씻고 아버지 차를 타고 은행으로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잠시 책을 읽다 보니 영업 시작 3분 전,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9시에 문을 열었다. 고객맞이를 하는 틈틈이 빠띠에 올라온 뉴스와 브런치스토리 글들을 읽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해 다시 고객을 맞이하다 16시에 문을 닫았는데, 5분쯤 지나 누군가 문을 두드려 가슴이 철렁했다. 직장에서 늦게 끝났다며 은행 업무를 부탁했지만, 마감 이후 직원 피로도와 규정을 생각해 정중히 “오늘은 어렵다”라고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16시 50분에 우편물을 들고 퇴근하면서 우체국에 들러 부치고,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으며 시민단체 활동 이야기도 나누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나니 배가 부르면서도, “이제 대학원 학기가 시작됐으니 정말 공부에 시동을 걸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밥·약을 먹고 잠시 누워 쉬다가 씻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책을 읽으며 ‘악의 평범성’에 대해, 특히 이번 비상계엄 내란과 연결해 다시 생각해 봤다. 9시에 문을 열었을 때 아침은 정말 한가했다. 손님이 거의 안 들어와 숨 고르기 좋은 시간이었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한 뒤 오후엔 손님이 조금 늘었지만, 큰일 없이 무난하게 하루가 흘러갔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 같지만, 사실 가장 어렵고 소중한 게 바로 이런 무난한 하루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고,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함께 존재하는 게 삶이라면,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날이야말로 감사해야 할 선물 같은 시간인지도 모른다.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50분에 우편물을 부치러 우체국에 들른 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밥을 먹고 가족들과 유튜브를 보다 일기를 쓰고, 이후엔 대학원 공부를 조금 더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배우는 내용이 적성에 잘 맞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고, “이제야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찾은 것 같다”는 설렘을 느끼며, 공부한 내용은 혹시 모르니 블로그에도 백업해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침에 밥·약을 먹고 잠시 누워 쉬다가 씻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가는 길에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질문을 던져야 할까?”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정리했다. 은행에 도착해 환복하고 근무 준비를 마친 뒤 9시에 문을 열었는데, 오늘도 아침은 한가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까지 손님이 거의 없었고, 13시에 복귀한 뒤 오후에도 손님은 조금만 들어왔다.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50분에 우편물을 부치러 우체국으로 가며 퇴근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밥을 먹은 뒤 가족과 함께 있다가 일기를 쓰고, 곧바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뒤, 이어서 시민들과의 온라인 대화도 이어갈 계획을 세웠다.
아침에 밥·약을 먹고 잠시 누워 있다가 씻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은행에 도착해 환복하고 9시에 문을 열었는데, 오늘도 오전은 놀라울 만큼 한가했다. 점심 전까지 손님이 거의 없었고,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한 뒤 오후에 조금 손님이 늘어났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용한 날이었다.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50분에 우편물을 부치러 우체국으로 가며 퇴근했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밥을 먹은 뒤 가족들과 함께 있다가 일기를 썼다. 오늘 저녁에는 참여연대 숙의토론(시민대화)이 예정되어 있었고, 한편으로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개헌 요구”가 아직 수습되지 않은 내란 상황 속에서 너무 성급하게 느껴져 걱정도 되었다. “헌정질서를 먼저 제대로 회복하고 그다음에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침에 밥·약을 먹고 잠시 누웠다가 씻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환복을 하고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었는데, 오전은 며칠째 계속되는 것처럼 한가했다. 점심 전까지는 손님이 뜸했지만,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하자마자 오후에 손님이 “몰려드는 수준”으로 확 늘어났다. 16시에 문을 닫았지만 손님들은 계속 남아 있었고, 모두 나간 뒤에는 광고용 배너를 교체하는 작업까지 했다. 퇴근 후 우체국에 들러 우편물을 부치고 집에 돌아와 씻고 밥·약을 챙긴 뒤 동영상을 보다 일기를 썼다. 국제정세를 보다 보니 우크라이나 전쟁도 단순한 “피해자-가해자” 구도로만 보기엔 복잡한 구석이 많다는 이야기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만약 윤석환이 계엄을 성공시켰다면, 우크라이나나 한반도 어느 쪽에서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하게 되는, 조금 무거운 밤이었다.
2025년 3월 1일 토요일 비 �
새벽에 일어나 씻고 집을 나섰다.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향했고, 역 앞에서 떡볶이와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을 때운 뒤 기차에 올라 약을 먹었다. 서울역에 도착해 편의점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약 한 번 더 챙겨 먹은 후, 함석현기념관으로 가기 전 인근 호텔 카페에서 아는 동생을 기다렸다. 전맹 시각장애인인 그 친구와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뒤, 손을 잡고 함석현기념관까지 함께 이동했다. 기념관에서 사람들과 북한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고, 의견 공유가 끝난 뒤 나는 곧바로 전철을 타고 안국동 사거리로 이동해 민주연대당 깃발을 찾아 집회 대열에 합류했다. 구호를 함께 외치다 국회의원님께 인사를 드렸지만,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신 것 같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웃어넘겼다. 집회를 마친 뒤 버스를 얻어 타고 인근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인사를 나눈 뒤 집에 돌아와 씻고 푹 쉬었다. 오늘도 꽤 괜찮은 하루였지만, “이 미친놈들의 발악은 대체 언제 끝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특히 이재현 대표의 연설 중 “반동”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공산권에서 주로 쓰던 말이라 “왜 굳이 그 단어를 선택했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르며, 나는 그들을 차라리 ‘반헌법·반민주 세력’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남았다.
아침에 일어나 밥·약을 먹고 잠시 쉬다가 씻고 교회에 가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 버스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는데, 오늘은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2023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에 편입해, 2025년에 드디어 졸업을 맞이한 것이다. “혹시 중간에 흐지부지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좋은 인연들을 만나 끝까지 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법학과 졸업을 발판 삼아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대학원 수업은 아직 감이 잘 잡히지 않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걱정도 살짝 들었다. 학사 가운을 입고 사진도 찍고, 졸업식 행사를 마친 뒤엔 학과 임원인 신임 회장님(학교생활을 잘 도와주신 분)과 같이 졸업하는 학우님(임원이자 성적우수상 수상자)과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 돌아와 씻고 쉬다가 밥을 먹고 약을 먹은 뒤, 놀다가 늦게서야 일기를 쓰며 “이제 슬슬 글도 다시 써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았다. 주말엔 쉬고 평일에 글을 쓰는 루틴도 괜찮겠지만, 가능하면 주말에도 연재를 이어가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요즘 느끼는 건, 글을 많이 올린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고 “퀄리티”가 중요하다는 것.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아직 수익은 없지만,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언젠가 답이 나오겠거니 생각하며, 지금은 일단 꾸준히 쓰고 쌓아 나가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다들 힘내서 다음 주도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