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주 소설] 뽀삐의 일기 49화

작은 오해와 격한 감정이 때로는 큰 싸움을 일으킬 수 있고, 감정의 골도

by 겨울방주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은행강아지 뽀삐!


이번 주 뽀삐의 일상은......


한가한 은행, 글과 연재 준비, 날카로운 법·정치 고민, 짜증 나는 판결과 후보 사무소 개소식, 집회, 강연, 그리고 아버지와의 작은 오해까지… ‘민주주의 시민’과 ‘가족의 한 사람’ 사이에서, 단단하지만 조금은 지친 마음으로 자기 길을 조심스레 이어간 한 주였습니다!











2025년 3월 3일 월요일 맑음 ☀


아침에 밥·약 챙겨 먹고 하루 종일 거의 누워서 쉬었다. 점심엔 만두를 먹고 또 쉬다가, 오후에 백화점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바람이 세게 불어 꽤 추웠고, 버스를 타고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백화점 상품권 키오스크에서 그동안 모은 포인트 교환권 바코드를 찍어 상품권으로 바꾸었다. 엄마 드실 아몬드, 주방세제, 세탁세제를 사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밥·약을 챙겼다. 다시 누워 동영상을 보다 일기를 쓰며,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이제 글만 조금 쓰고 하루를 마무리하자. 그런데 이 내란은 언제 끝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2025년 3월 4일 화요일 맑음 ☀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차가 좀 막혀 도착이 살짝 늦었지만, 근무 준비를 마치고 9시에 문을 열었다. 아침엔 비 때문인지 손님이 거의 없어 한가했고, 순찰을 도는 동안 길에 넘어져 있던 공유 전동킥보드와 자전거를 세워 인도 가장자리로 옮겨 놓기도 했다. “행인들이 발에 차여 넘어지지 않도록, 은행 주변에서 안전사고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밖에는 특이사항 없이, 고객 업무를 파악해 팀장님께 메모로 전달하는 평소 역할을 수행했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한 뒤엔 잠깐 손님이 몰렸다가 다시 한가해졌고, 16시에 문을 닫은 뒤엔 예약된 서류 제출 고객 두 명을 들여보냈다. 16시 50분 퇴근길에는 우체국에 들러 우편물을 부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밥을 먹었다. 글을 쓰는 도중 전맹 시각장애인 동생에게서 전화가 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글 작업을 이어갔다. 지난 주말 토론 때의 속기 정리본을 담당자 개인톡으로 보내고, 오늘 일기까지 적은 뒤에는 시사 이슈 정리글을 내일 아침 연재용으로, 내 일기는 오후 연재용으로 준비할 계획을 세웠다. 연재일기 1차가 거의 끝이 나고, 이젠 2차 연재를 준비 중이다. “비상계엄이 아니었다면 그냥 일기와 생각만 쓸 텐데, 지금은 내란에 대한 논평까지 함께 써야 하는 상황이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2025년 3월 5일 수요일 흐림 �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을 읽고 글을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근무 준비를 마치고 9시에 문을 열어 고객을 맞았는데, 오늘도 전반적으로 특이사항이 없는 조용한 날이었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13시에 복귀해 근무를 이어가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렸다. 그 책은 “공무원이 사유 없이 계산만 할 때 무슨 참사가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아이히만은 “나치 법이 시키니까 따랐을 뿐”이라 변명했지만, 그 법 자체가 인간의 보편 가치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기에, 따라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법은 단순히 규범과 국가 강제력을 정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인간에게 이로운지, 인간의 본질에 맞는지,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못했던 나치 법을 그대로 집행한 결과, 아이히만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지고 처형당했다. 16시에 문을 닫고 16시 57분에 퇴근, 집에 와서 씻고 김치찌개를 먹고 약을 먹은 뒤 동영상을 보며 쉰 후 논문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근무 중에 우연히 같은 당원분을 만나 너무 반가웠던 것도 오늘의 작은 포인트였다.



2025년 3월 6일 목요일 맑음 ☀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과 글을 읽고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근무 준비를 마치고 9시에 문을 열었는데, 자동화 기기 하나와 공과금 납부 기기가 말썽을 부려 공과금 기기는 아예 사용 불가 상태였다. 그래도 고객맞이는 평소처럼 이어졌다. 중간에 빠띠에서 개헌 관련 글 공모를 보고, ‘지금의 개헌안은 공화국 시민에게 빚 좋은 개살구’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는데, 조금 격한 표현이 있었던 탓인지 다른 활동가에게서 텔레그램으로 “행동강령에 어긋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잘못했다면 고치면 된다”는 마음으로 즉시 수정하겠다고 답했고, 행동강령을 지키는 것 또한 민주연대당 당원이자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마땅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쉬다가 13시에 복귀해 고객을 맞이했는데, 오늘은 16시 이전에 손님들이 대부분 빠져나갔다. 16시에 문을 닫고 대기하던 중 대부계 은행원 두 분이 표창장을 받는 자리도 있었다. 토끼 팀장님 지시로 16시 40분쯤 퇴근해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부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밥을 먹은 뒤 부모님과 드라마를 보고 일기를 썼다. 이후에는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방송통신대 대학원은 인권법 특화지만, 나는 그 과정을 통해 ‘정치’를 공부하고 싶다. 민주연대당·참여연대 가입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이 생겼고, 비상계엄 이후에는 공화국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며 빠띠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 주말마다 서울을 왕복하는 일이 잦아진 탓에 체력과 지갑이 꽤나 고생하고 있지만 말이다.



2025년 3월 7일 금요일 맑음 ☀


아침에 밥·약을 먹고 말씀과 글을 읽고 쓴 뒤, 아버지 차를 타고 출근했다. 근무 준비 후 9시에 문을 열었고, 저녁에는 당에서 김용문 국회의원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 퇴근 후 바로 강연장으로 가야 하기에, 오늘 일기는 미리 써 두기로 했다. 하루 일정은 늘 그렇듯 9시에 문 열고 고객맞이, 12시에 점심, 13시 복귀, 16시 마감 후 우편물이 있으면 우체국 들러 퇴근하는 루틴일 것이다. 은행에서 들은 소식 하나가 크게 마음을 뒤흔들었다. 서울중앙지법 지귀철 판사가 윤석환 구속취소를 인용했다는 것이다. “오, 이런 미친…!”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강연장에 도착해 딸기 스무디 한 잔으로 짜증 난 마음을 달래고, 김용문 의원의 특강을 듣고 나니 술이 당기기도 했지만, 오늘은 참기로 했다. 강의가 끝난 뒤 바로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고 잠자리에 들며,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2025년 3월 8일 토요일 맑음 ☀


아침에 밥·약을 먹고 조금 쉰 뒤, 민주연대당 소속 시장 후보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했다. 당원분 차를 얻어 타고 행사장에 가서 근처 식당에서 소내장국밥으로 든든히 점심을 먹고, 개소식장에 가서 같은 지역구 당원들과 인사하며 사진도 찍었다. 행사를 마친 뒤 집 근처 동네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고, 이어 박주헌 국회의원 특강까지 참석한 뒤, 근처 맥주집에서 맥주도 한 잔 했다. 왜냐하면, 오늘 윤석환이 석방되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즉시항고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바로 석방 지휘를 했다는 소식에 “이제 검찰까지 내란에 연루된 건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문제만 잘 풀어 공무원이 되는 관료제 시스템은, 결국 아이히만 같은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기계’를 키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지선다형 시험도, 서술형 사법시험도 ‘주어진 문제만 잘 푸는 사람’을 길러낼 뿐이라면, 그건 또 다른 위험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기계형 인간이 못 되어 공무원이 되진 못했지만, 오늘 윤석환 석방 소식에 짜증이 나서 맥주 한 잔을 비운 뒤, “내란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정말 화난다”라고 일기에 남기며 “서울에 가면 또 뭘 해야 할까?”를 떠올렸다.



2025년 3월 9일 일요일 맑음 ☀


아침에 밥과 약을 먹고 쉬다가, 서울에 갈 계획을 세우고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아버지가 “오늘 예배 같이 안 갈 거냐”라고 물으셨고, 문득 지난주에 “함께 새 교회에 가자”라고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당황한 나는 “부산에 바람 쐬러 간다”라고 얼버무렸고, 엄마는 “갔다 오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많이 서운해하시는 얼굴이었다. 집을 나섰다가, 아무래도 이렇게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정을 취소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 분위기는 싸했고, 아버지는 별말 없이 조용히 계셨다. “경솔했다”는 생각에 아버지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괜찮다”라고 하셨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하루 종일 집에 머물며 점심을 먹고, 아버지 차에 시동도 걸어 드리고, 저녁을 먹고 약을 먹고, 별다른 일 없이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마음속은 조금 무거운 채로, 오늘의 일기를 적어 내려갔다.











다들 힘내서 다음 주도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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